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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변화와 기회의 시기, ‘딥 포커스’ 창작자 토크, 인더스트리 토크 현장
이우빈 2025-10-31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는 ‘딥 포커스’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한국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폭넓게 조명하고 이야기할 포럼과 토크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엔 ‘딥 포커스: <극장의 시간들>& 창작자 토크’와 ‘딥 포커스: What's Next?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이 치러졌다.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영화를 상영하는 자리를 넘어 한국 영화산업의 중추적인 플랫폼이 되겠단 포부가 돋보인 대목이었다. ‘딥 포커스: <극장의 시간들>& 창작자 토크’는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된 옴니버스영화 <극장의 시간들>을 상영한 뒤에, <극장의 시간들>속 단편영화를 연출한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창작자 토크를 진행했다. 사회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집행위원인 이상근 감독이 맡았다.

“사실 오늘도 제 영화를 보고 막 울었어요.” 단편 <침팬지>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관객 모두가 폭소했다. 감독은 “상업영화를 만들 땐 직업인의 책임감을 지니고 관객의 반응을 고려하는 데 재미를 느끼지만, 단편은 개인적인 작업으로서 아주 뜬금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더하여 “<침팬지>는 예전에 내가 어느 침팬지와 겪었던 일을 토대로 해서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찍은 영화다. 극장에서 보니 나만 아는 과거의 편린이 떠오르고 울컥하게 되더라”라는 단편영화의 특징과 개인적 소회를 펼쳤다.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아역배우들을 데리고 영화를 촬영하는 한 감독(고아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윤가은 감독은 “영화를 준비할 땐 늘 A부터 Z까지의 안을 다 계획하고 촬영하는 편이었기에 이번엔 현장에서의 판단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전”했지만, “이런 작업 방식이 훨씬 고생스럽고 너무 많은 변수를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독과 배우들만 신나고, 제작진은 너무 고생한 작품”이었다며 단편영화의 새로운 제작 방식을 도모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내가 한창 극장에 다니던 시절엔 극장에서 담배를 피워도 괜찮았다…. 극장과 목욕탕 정도가 1만원으로 시간을 잘 때울 수 있는 곳”이었다는 장건재 감독의 말에 패널들은 각자가 지닌 극장의 추억을 마구 내뱉기 시작했다. 이상근 감독은 “장건재 감독과 내가 비슷한 세대인데, 무슨 1950년대 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라는 농담을 건넸다. 이어서 한국영화에 대한 위기론이 주제로 떠오르자 장건재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1차 생산자로서 여러 변화가 있어도 결국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가은 감독 역시 “오늘도 극장에서 함께 <극장의 시간들>을 봤다는 공동의 경험이 마법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이런 경험의 귀중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딥 포커스: What's Next?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언’ 시간엔 한국 영화산업의 흐름을 이끄는 창작자, 산업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김성수·장재현 감독,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 이영주 CJ ENM 영화 사업전략팀장, 이현정 쇼박스 영화사업본부장이 패널로 참석했고, 장영엽 <씨네21>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김성수 감독은 “지금의 한국 영화산업은 ‘붕괴’했다. 허진호 감독의 < 암살자(들)>말고는 촬영에 들어간 상업영화를 듣지 못한 상황”이라고 현황을 진단했다. 이어 장재현 감독은 “붕괴한 것은 맞으나, 한편으론 ‘진통기’라고 표현하고 싶다”며 “여러 요인으로 인해 영화산업의 규모, 형식, 내부 구조의 변화가 도래한 지금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따라 더 무너질지 다른 길을 찾을지 갈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업영화의 제작 편수가 줄고, 개봉작이 감소함에 따라 투자배급사 관계자들은 “낡은 흥행 공식은 버리고, 영화의 규모나 패키징을 신경 쓰기보단 이 작품이 공략할 수 있는 확실한 타깃이 있는지”를 중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장재현 감독은 “연출자로서 ‘어떤 타깃에게 이 영화를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놀이공원에 가서 결국 가장 재미있는 기구만 타게 되듯이 장르적으로나, 작가주의적으로나, 웃음으로나, 공포로나 어떤 측면으로든 재미있는 작품을 연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언을 남겼다. 김성수 감독 역시 “1~2년 전만 해도 스트리밍 플랫폼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의 산업적 지표를 보면 여전히 영화산업의 가능성은 유효”하다며 “한국의 로컬 영화산업을 지키기 위해선 지금 여기 있는 신진 플레이어, 창작자, 스토리텔러들이 자기만의 언어로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산업 관계자들은 지금이 무척 중요한 ‘변화’의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김원국 대표는 “제작비와 극장 푯값이 올랐지만, 극장 수익과 부가 판권 시장의 소비액 등이 오르지 않으면서 시장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다. 올해와 내년을 기점으로 영화산업의 구조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영주 사업전략팀장은 “영화산업의 체질이 바뀌는 기점이며, 체질을 개선할 것인지 혹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인지 결정되는 시기가 바로 올해”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본부장은 “위기라는 말보단 변화의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영화가 OTT뿐 아니라 프로야구, 팝업 스토어, 맛집과 경쟁하는 때이며 2~3년 내엔 전반적인 시장의 구도가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영엽 대표는 “붕괴라는 말로 시작했으나 끝에는 희망을 말하게 되었다”라며 행사의 흐름을 갈무리했다. 토론자들이 말하는 희망이란 신진 창작자들에게 걸려 있었다. 장재현 감독은 “예전부터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신인감독들이 상업영화에 진출하는 등용문이란 인식이 은근슬쩍 있었는데, 이제는 대놓고 이 전략을 밀고 나가면서 최대한 많은 관계자를 모아 창작자들과 산업을 중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주 팀장은 “입봉 프로젝트를 많이 검토하고 있으며 그런 영화들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란 상황을 전했다. 이현정 본부장도 “100억~200억원 단위의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지금이야말로 신인감독들이 자기의 색깔을 지닌 작품을 들고 제작사, 투자배급사와 접촉하기 가장 좋은 시점”이라며 “이번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본 작품들도 굉장히 재밌었고 여러 영감을 줬다”라는 경험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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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미쟝센단편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