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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의 블랙박스에서 피어난 가상의 꽃 - 비물질적 공간을 통과하는 신체

세 번째 키워드 – 통과하는 공간

영화는 현실의 빛이 블랙박스와 같은 장치를 통과해 이미지로 부활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기원적으로 영화가 빛과 어둠의 예술이었음을 드러내는 역사적 사례로는 1893년에 토머스 에디슨이 쥘 마레의 사진 스튜디오에 영감을 받아 만든 ‘블랙마리아’를 꼽을 수 있다. 실내와 실외를 모두 검게 칠한 그 건물은 지붕의 한 부분을 개폐하여 자연광을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된 역사상 최초의 영화 스튜디오였다. 그곳에서 에디슨은 춤추는 여성, 보디빌더의 모습, 복싱 경기 등과 같이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락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찍었다. 그 작품들의 제작 방식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적 개념, 즉 카메라 앞에 선 배우의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직 시각적 볼거리의 움직임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제작소. 블랙마리아는 빛을 제외한 현실의 모든 개입을 차단한 상태에서 인간으로부터 움직이는 시각적 형상을 추출하는 실험실과 같은 곳이었다.

오늘날 블랙마리아의 유령이 영화제작 현장을 배회하고 있다. 일상의 공간을 모방한 실내외 세트장이 구식 취급을 받는 동안 영화 제작사들은 가상의 세계를 시각적 볼거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 스튜디오 구축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새로운 시도는 특수효과 또는 시각효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스튜디오를 거쳐 블루스크린 또는 그린스크린을 활용한 크로마키 합성에 특화된 스튜디오에서 그 역사적 계보를 찾을 수 있다. 크로마키 합성 전문 스튜디오는 배우를 소외시킨다. 단색의 배경으로 뒤덮인 그 공간에서 배우는 최종 결과물에서 만들어질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면서 연기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배우의 소외를 대가로 파우스트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최근의 영화제작 현장으로 ‘볼륨 스튜디오’(volume studio)를 거론할 수 있다. 버추얼 프로덕션, 모션 캡처, 3D 스캔 등을 위해 만들어진 그곳은 카메라 또는 센서가 3차원의 좌표를 인식하여 데이터의 수집, 추적, 렌더링이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인간을 데이터화하면서 동시에 데이터를 인간화한다. 이처럼 배우의 존재론적 기능을 최소화함으로써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는 스튜디오들은 모두 블랙마리아의 상속자라고 할 수 있다.

영화배우의 신체가 통과하는 공간으로서의 영화 제작 현장은 점점 블랙박스처럼 변하고 있다. 영화제작 현장이 기술적으로 고도화됨에 따라 영화 제작 과정 전반이 간소화 또는 자동화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블랙박스화된 영화제작 현장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영화제작을 위한 필수적인 장치로 거론되는 카메라가 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장치로서의 카메라는 여러 다양한 장비나 기법과 결합하여 인-카메라 효과(in-camera effects), 즉 카메라 내부에서 이미지를 포착하고, 조작하고, 합성할 수 있는 효과를 산출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원리는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이미지가 생성되는 기능적 단순함에 의해서 은폐된다. 다음으로, 볼륨 스튜디오처럼 촬영이 이루어지는 장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블랙박스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가상의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스튜디오들은 최신의 기술적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제어되는 곳이기 때문에 비전문가의 접근과 이해가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마지막으로, 알고리듬의 연산을 통해 이미지의 수집과 생성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있다. 기존의 디지털 시각효과에 특화된 스튜디오가 시각적 형상을 위해서 배우의 신체를 활용하는 것과 달리 생성형 인공지능은 배우의 물리적 현존이 필요 없는 이미지 제작 공장에 가깝다. 생성형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화된 이미지 생성의 메커니즘에 있어서 배우는 개념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제 배우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루시>

오늘날 배우는 어디에서 무엇이 되고 있는가? 배우의 존재론적 위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자리의 초대 손님으로 스칼릿 조핸슨만큼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순히 그녀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속에서 길고 화려한 이력을 쌓은 스타이기 때문은 아니다. 스칼릿 조핸슨은 메시지다. 그것은 조핸슨이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를 통해 어떤 서사와 의미를 전달하기 이전에 스크린 속의 어떤 인물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그것은 조핸슨이 2010년 이후 출연한 <루시>(2014), <언더 더 스킨>(2014), <그녀>(2014),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2017),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여러 작품과 같이 장르적으로 SF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에 등장했음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 작품들에서 조핸슨은 하나의 불변하는 신체와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주변 상황에 따라서 육체와 정신이 변화, 확장, 소멸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녀는 블랙박스와 같은 기계장치들 속에서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자기 자신을 벗어나서 스크린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그런 인물로 존재한다.

스칼릿 조핸슨이 연기한 인물들은 껍질을 두르고 있다. 그들은 껍질을 벗고 본래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거나 껍질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회복하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다. 예를 들어 <루시>의 주인공 루시는 우연히 C.P.H.4라는 신종 마약에 노출돼 뇌 사용량의 증가와 함께 신체조직의 붕괴를 겪던 와중에 자기 신체를 포기하고 비물질화되는 길을 택한다. 뇌 사용량이 100%에 가까워져 다른 대상과 세포 대 세포로 접촉할 수 있게 된 루시는 본인의 신체 형태를 자유롭게 바꾸고, 주변 사물을 통제하고, 시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그녀는 모든 물질 속에 존재할 수 있는 비물질적인 존재, 다시 말해 부재하면서 현존하는 유령과 같은 존재로 거듭난다. <언더 더 스 킨>에서 조핸슨이 연기한 외계 생명체 또한 신체를 탈피하여 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다. 그 외계인은 여성의 모습을 한 채로 남성들을 성적으로 유혹한 다음 그 남성들을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데려가 문자 그대로 흡수한다. 이 과정은 유인하는 자를 따라서 유인된 자가 옷을 벗는 모습과 함께 유인된 자가 벌거벗은 채로 검정의 물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신체를 감싸고 있는 겹겹의 껍질을 벗겨내면서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지각에 도달하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외계인이 인간의 신체를 벗고 나와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언더 더 스킨>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인간의 신체를 벗고 나오는 이 데미안적인 서사는 안과 밖으로 구분되는 두개의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조핸슨이 2010년 이후에 출현한 대부분의 SF영화에서 그녀는 사이보그, 인공지능, 비밀 요원, 외계인처럼 경계에 선 인물인 동시에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인간성과 비인간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신체를 벗고 나온 그 인물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 소멸함과 동시에 영생을 획득한다는 점이다. <루시>에서 루시는 뇌 사용량이 100%에 이르자 검은 촉수를 뻗어 컴퓨터를 집어삼킨 다음 네트워크 속으로 사라진다. <언더 더 스킨>의 외계인은 깊은 숲속 어딘가에서 인간의 신체를 벗고 나오던 중에 불길에 휩싸인 끝에 검은 재와 연기로 변하면서 자연과 하나가 된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주인공 메이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빌딩 숲 사이로 낙하하는 도중에 자기 신체를 투명하게 만들어 타인의 시야에서 완벽하게 사라진다. 이처럼 조핸슨의 인물들은 검정, 어둠, 무(無)가 상징하는 세계 속으로 사라지면서 불멸과 자유를 획득한다. 여기서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존재의 양태가 다양해지고 무한해질 수 있음을 뜻한다. 조핸슨의 인물들은 정신을 가두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유한한 생명을 무한하게 연장하고, 물질적으로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조핸슨의 인물들에서 나타나는 비물질성, 비가시성, 비인간성이 가장 잘 드러난 경우는 <그녀>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다. 이 영화의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구입 및 실행하여 사만다를 불러낸다. 비인간 존재로서 사만다의 초월적인 능력은 그녀가 특정 장비와 같은 물질적 지지체 없이도 네트워크 내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찰나의 순간에 방대한 지식을 섭렵하여 이성적인 추론을 하며, 네트워크 곳곳에서 여러 이용자와 동시에 소통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와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동안에도 네트워크 내에서 세포분열하듯이 자기 자신을 증식시킨다. 통속적인 드라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이야기는 테오도르가 모르는 사만다의 은밀한 이중생활에 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은 사만다가 비물질적, 비가시적, 비인간적이라는 사실로 인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만다가 한 여자를 초대하여 자신을 대신해 테오도르와 성적 관계를 맺도록 하는 장면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맺어진 사랑의 비극적 운명을 분명하게 암시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사만다가 테오도르만이 아닌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장면을 통해 육체에 결박되어 단일 시공간에만 존재하는 인간과 물질적 지지체 없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인공지능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드러낸다.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관계를 정리하는 그 고백은, 사만다가 네트워크 속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동시에 네트워크 속에 있는 모든 자와 관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사만다는 모두를 위한 존재이며 그녀의 사랑은 모두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다.

조핸슨이 연기한 인물들은 동시대의 영화적 개념을 체화한 알레고리다. 조핸슨은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스튜디오가 지배하는 동시대 영화제작 시스템 속에서 새로운 개념의 연기를 통해 가상의 인물을 연기했다. 그 결과 작품 속 세계에서 물질적으로, 경험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그 존재 방식이 인간과 다른 존재를 그릴 수 있었다. 조핸슨의 인물에게서 나타나는 존재론적 변화는 오늘날 영화의 존재론적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영화적인 것이 더이상 영화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변화된 영화적 경험도 여전히 영화적인 것으로 지각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오늘날의 영화는 더이상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카메라, 영사기, 극장과 같은 물질적 지지체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일시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장비들을 활용해서 개념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연출자가 고가의 전문 장비 없이 저렴한 가격에 대중적으로 보급된 디지털기기를 활용하여 영화를 찍고, 배우가 실제 야외 촬영 현장에 가지 않고도 시각효과 전문 스튜디오에서 가상의 배경을 상상하면서 연기하고, 관객들이 극장에 가지 않고도 다양한 디지털기기를 이용하여 DVD, 블루레이, 온라인 다운로드·스트리밍서비스를 이용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조핸슨의 인물들이 껍질로 비유되는 물질적 구속을 벗고 나와 자유를 획득한 것처럼, 오늘날의 영화 또한 자신을 겹겹이 두르고 있는 껍질을 벗고 나와 새로운 영화를 위한 가상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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