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후회, 비탄이 깃들었다. 그러나 잔인하지 않다. 영화 <빅 볼드 뷰티풀>이 타고난 성정을, 배우 콜린 패럴은 그리 요약했다. “인생이 잔인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는 거기에 기대지 않고 빛으로 나아간다.” 그 발자국을 함께 찍은 배우 마고 로비가 전한 속내까지 여기에 옮긴다.
- <빅 볼드 뷰티풀>이 제시하는 은유적인 세계관의 첫인상은 어땠나.
마고 로비 스토리텔링을 위한 아름다운 장치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다소 아이러니했다. 보통 어떤 배역을 맡으면 그 캐릭터가 어린 시절에 쌓았을 기억들을 내가 직접 만들어내는 편이다. 그가 겪었을 경험을 상상해서 글로 써보고 그걸 좀더 확장한 다음, 인물의 과거가 시나리오에 드러난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준 건지 설명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과거의 이야기가 이미 시나리오에 다 들어가 있어서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웃음) ‘아, 이번에는 내가 사라의 어렸을 적 기억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네. 우리가 그걸 실제로 연기하겠구나’ 싶었다. 그건 이 시나리오의 핵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당신이 지나온 순간들을 보세요. 그리고 그 순간들이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줬는지 생각해보세요’라고 제안한다. 그래서 문을 열고 과거로 간다는 설정이 정말 영리해 보였고, 그동안 해오던 작업의 연장선에 있기도 하니 내게 도움이 되겠다고 느꼈다.
콜린 패럴 우리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그 상징들은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괴롭히기도, 도와주기도, 건강하거나 파괴적인 관계로 이끌기도 한다. 과거의 기억이 평생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평범한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의미라고 느꼈다. 데이비드와 사라는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보다 훨씬 더 충만하게 살 수 있으나 그러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있지도 않다. 많은 어른이 그러하듯, 자신의 유년기를 외면하거나 그 시기를 지나치게 가혹하게 판단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연기한 데이비드는 무기력하며, 경미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하루하루를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지만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인물들 앞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문이 주어지는 게 정말 멋졌다. 그 문들은 마치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유령들처럼 지나온 세월로 인물을 안내한다. 환상적으로 설계된 동시에 인간적인 경험에 기반을 둔 이 영화를 코고나다 감독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풀어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미적 감각이 이야기의 정수를 압도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 사라와 데이비드는 문을 열고 어렸던 자기 자신, 젊었던 부모를 마주한다. 두 사람은 초반에는 당황하지만 점차 이 상황을 매우 대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성숙하게 문제를 대면한다. 이들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줄곧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져온 인물이라고 해석했는지도 궁금하다.
콜린 패럴 두 사람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삶의 단조로움, 그러니까 반복되는 지루함 속에 갇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일상은 개인이 가진 좋은 면을 살려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과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대인관계를 맺을 때도,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타인과 진실로 깊이 있게 이어지지 못한다. 바로 그 상태가 이 이야기에서 중요하다. 두 사람이 길을 잃었기에 그 앞에 판타지가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사라와 데이비드가 만족스럽게 살고 있었다면 그들 앞에 주어진 기회를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내면의 절망감을 공유한다. 데이비드는 과거로의 여정을 나서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나. “잃을 게 없어.” 곧이어 사라도 말한다. “나도 없어.” 나는 그게 과거로 가는 문을 맞닥뜨린 이들이 할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충격적이고 슬프지만, 흔히 보일 수 있는 반응 아닐까.
마고 로비 나도 앞서 콜린이 이야기한 것과 비슷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직감하고 있을 때 그 대상의 원리를 굳이 의심하거나 따져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게 인터넷이 필요할 때, 와이파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부터 먼저 이해하고 써야겠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와이파이가 여기에 연결되어 있으니까 쓸 뿐이다. 사라와 데이비드가 과거로 향하는 문을 열기로 한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 ‘퍼포먼스를 하다보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가상의 상황을 통해 진실된 자아를 마주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배우로서 <빅 볼드 뷰티풀>이라는 허구의 이야기를 통과하며 어떤 깨달음에 도달했는지 묻고 싶다.
콜린 패럴 마고와 한번 더 일하고 싶다는 것? 마고와 완전히 다른 맥락의 영화에서도 합을 맞춰보고 싶다. 그리고 빤한 소리일지 몰라도 내가 아주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깨달음이 있다. (웃음) 이야기가 준 통찰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자주 한다. ‘뒤돌아보지 마. 앞만 보고 가. 미래를 향해 전진해.’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도 가치가 있다. 과거에 머무르거나 집착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를 지금의 세상으로 밀어넣은, 여기까지 오게 만든 그 ‘지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러니 뒤돌아보는 일도 꽤 건강한 일이라 말해주고 싶다.
마고 로비 나도 콜린과 작업한 것이 큰 의미로 남았다. 또한 과거에 일어난 사건 중 아직 놓지 못한 것들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용서하라는 이 작품의 주제가 개인적으로도 강렬하게 와닿았다. 지금 이 나이의 내게 깊은 울림을 줬다.
코고나다가 말하는 콜린 패럴과 마고 로비
“콜린 패럴은 눈빛으로 역사를 전하는 배우다. 그에게는 그냥 카메라를 가져다대면 된다. 그럼, 우리에게 해줄 말이 아주 많은 캐릭터 한명이 바로 나타날 테니까. <애프터 양>에서 콜린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연기했는데, 언젠가 그와 다른 식의 작업도 해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는 뮤지컬 무대에 선 콜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마고 로비에 대해서는 내가 콜린에게 느껴온 것만큼의 좋은 이야기를 여럿에게 전해 들었다. 세계적인 스타가 현장에서 모두와 친하게 지내서 다들 마고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콜린과 마고는 비슷한 영혼의 소유자 같았다. 우리 셋만 텅 빈 무대에 모여 리허설한 일주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