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사는 아시안 부부 겐지(니시지마 히데토시)와 제인(계륜미)은 <디어 스트레인저>의 두 기둥이다. 부부가 겪는 일상의 균열과 정념의 대치가 영화가 직조한 ‘폐허’의 세계를 완성한다.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보여주는 서늘한 분노의 얼굴은 그 어떤 외적 폭력보다도 강한 긴장을 부른다. 더 넓은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그의 과정을 부산에서 목격했다.
- ‘세계에는 갑자기 불합리할 정도로 일상을 무너뜨리는 사태’가 일어나며, 이에 대해 겐지가 보이는 반응을 집중해서 탐구했다는 말을 남겼다. 이러한 측면에서 겐지는 본인이 <드라이브 마이 카>속의 인물 가후쿠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긴 하지만 유사한 캐릭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가후쿠는 질문에서 언급한 그런 사태들에 대해 눈을 감고 전부 묻어둔 채 조용히 살아가려는 인물이었다. 반면에 겐지는 더 충동적이고 이런 사태들을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그런 노력이 결국 상황을 악화시키며 점차 파멸에 들어서는 사람이다. 두 캐릭터간의 차이는 아마 두 감독이 지닌 본질적인 재질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 마리코 데쓰야 감독이 그간 보여준 충동의 정념, 폭발적인 감정이 <디어 스트레인저>에도 녹아 있다.
그래서 처음 <디어 스트레인저>의 각본을 봤을 때 <디스트럭션 베이비>처럼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싸우는 장면들이 많겠군…’이라고 생각했세계가 나를 부정할 때다. 그런데 육체적인 폭력을 행사할 일이 많진 않더라. (웃음) 마리코 감독님이 기본적인 태도는 유지하되 이제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육체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이 세계가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토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는 생각이었다.
- 대사의 90% 이상이 영어다. 낯선 타지에서 영어 연기에 도전하는 일은 어땠나.
어느 정도 우려했으나 결과적으론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다. 영어 발음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웃음) 우선 제작진의 도움이 컸다. 이번 현장은 적은 규모의 제작진으로 꾸려졌다. 특히 상대역인 계륜미 배우의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연기 덕에 겐지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금 계륜미 배우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언어의 힘은 무척이나 강하고 다양하다. 가능하다면 영어뿐 아니라 한국, 대만, 유럽 등 다른 언어권의 작품에도 도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연기하는 동안 난 무모하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을 정도로 새로운 도전에 임해왔다. 스스로 내 커리어를 붕괴시킬 만한 도전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지금의 시스템에 안주하지 않는 쪽에 더 마음이 간다.
- 계륜미 배우와의 협업에 대해 더 듣고 싶다. 겐지와 제인은 카이의 실종 전에도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일상 속 표정에도 항시 긴장감을 유지하자고 협의했는지.
중요하게 논의했던 지점이다. 대본을 함께 봤을 때부터 긴장감이 높은 사이로 그려져 있었으나 우리 둘은 ‘그래도 둘은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석하고자 했다. 일상을 보내며 여러 문제를 겪고 압박에 시달린다 해도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며, 관계를 유지하려는 바람을 지니고 있단 것이다. 그래서 감독님에게도 둘의 애틋함을 살릴 장면을 꼭 찍고 싶다고 제안했고 촬영하게 됐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그 장면은 편집됐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