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충돌, 충격 혹은 벌레, 벌레, 벌레. 어떻게 읽어도 좋다. <충충충>의 주인공 무리부터가 그 모든 단어 속 함의를 연상시키는 모양새로 엉켜 있다. 혼자 사는 용기(주민형)는 외모 강박이 심한 지숙(백지혜)을 짝사랑하고, 덤보(신준항)는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온라인에서 여자 행세를 하며 남성들을 골린다. 그런대로 균형이 맞던 삼각대는 지숙이 전학생 우주(정수현)에게 반하면서 흔들린다. 한창록 감독은 미국에서 벌어진 어느 범죄 일화를 기사로 접하고 나서 이 고등학생들의 파국을 스케치했다. 그 위로 비감이 서린 팔레트를 쏟자 제법 박력 있는 데뷔작이 탄생했다.
- 초고를 쓰게 한 아이디어는 무엇이었나.
2020년쯤 범죄 관련 기사를 읽다가 2017년 미국 워싱턴주 벤턴 카운티에서 일어난 살인미수 사건을 접했고,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다. 가깝게 지내는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전학생으로 인해 소녀의 삶이 망가졌고, 소년은 소녀의 생일 선물로 전학생을 죽이기로 했다. 친구들과 살해 계획을 세운 소년은 빨간 마스크까지 만들어 썼다. 그가 마스크를 쓴 모습이 CCTV에 찍혔는데 그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했다. 이 아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이런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한국을 배경으로 풀어보고 싶어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한데 모여 우글거리는 곤충들을 보여준다. 관객에게 제목의 ‘충’을 벌레(蟲)로 먼저 인식시키고 싶었나.
제목과 오프닝을 여러 번 바꿨다. 첫 제목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노래인 무키무키만만수의 <안드로메다>가사에서 따온 ‘벌레벌레벌레!’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시나리오 피드백을 받던 중 “이 제목 보고 사람들이 극장에 오겠느냐”라며 한소리를 듣고 ‘벌레’로 바꿔 한참을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벌레’는 뭔가 심심해서 <충충충>을 떠올렸는데, 친구들이 <기생 충>아류 같다더라. (웃음) 고민을 더 해보다가 ‘찌를 충’(衝)이라는 한자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한창 시나리오를 쓸 때 우리나라에서 칼부림 사건들이 이슈였기에 더 눈이 갔다. 그 글자가 충동, 충돌, 충격이라는 단어에도 쓰이더라. ‘충동적인 아이들이 충돌해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킨다’라는 로그라인까지 생각나 제목을 확정할 수 있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 충격적 사건의 결말을 보여주면서 궁금증을 유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초반에 너무 센 이미지를 보여주면 중간에 힘이 빠질 것 같아 가볍게 가기로 했고, ‘충’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혐오의 분위기를 빌려와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외면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나는 보여주겠다고.
- 리비게쉬의 음악이 그 패기를 리드미컬하게 진전시킨다.
다양한 장르를 힙하게 풀어내는 리비게쉬의 오랜 팬이다. 내가 힙한 사람이 아니라 힙한 사람들과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웃음) 단편 <구 경>(2022)에도 그의 음악을 썼다. <충충충>에는 종말론 시대의 Y2K 감성을 불어넣고 싶었는데, 역시나 리비게쉬의 음악이 어울릴 것 같았다. 제작비가 크지 않았기에 이미 발매된 곡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외롭다. 그 중심에 있는 용기는 엄청난 시네필로 보인다. 그의 방 벽면이 고전영화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던데.
나도 <씨네21>을 찢어서 내 방 천장과 벽에 잔뜩 붙여둔 적이 있다. 부모님이 아주 싫어하셨고, 내가 군대에 갔을 때 다 떼버리셨다. (웃음) 용기는 고전에 나올 법한 영웅을 꿈꾸는 아이이길 바랐다. 그러니 방에 제임스 딘 사진 같은 걸 좀 붙여놓자고 미술감독과 논의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뭔가 많이 붙여둬야 그림이 예쁘겠더라. 그래서 준비해온 포스터를 거의 다 붙였다.
- 용기는 배우를 꿈꾸는 건가.
용기는 무얼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발산하고 싶은 에너지는 가졌다. 그래서 혼자 틱톡을 찍고, 콩트나 역할극을 한다. 이 영화가 통속극에 가까운 작법을 가지긴 했지만 소년의 외로움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만큼은 다른 형식을 택하고 싶어 그런 장면들을 여럿 넣었다.
- 숙은 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추구한다. 이 아이의 지향과 그것을 향한 행동을 어디까지 묘사할지도 고민했을 텐데.
지숙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아이다. 몸무게에 집착하는 것도 그래서다. 흥미롭게도 시나리오를 본 사람마다 지숙에 관한 의견이 갈렸다. 지숙이 불쌍하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숙이 너무 싫다고, 너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반응을 기대했던 것 같다. 모든 인물에게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갖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그들의 상황을 보여주려 했으니까.
- 그중 덤보만이 유일하게 별명으로 불린다.
10대들이 나오는 이야기 속 서브 캐릭터들이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일종의 클리셰를 따라 캐릭터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고 어감이 귀여운 별명을 썼다.
- 영화에 학교폭력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사태들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등장하는데, 수위 조절을 위한 나름의 원칙이 있었나.
2023년쯤 교내 딥페이크 사건들이 하나둘 터졌다. 그외에도 그 당시 사회적으로 대두된 청소년 문제들을 수면 위로 올리고 싶었지만, 예민한 이슈를 잘못 다루면 욕먹기 쉽지 않나. 그럼에도 피하면 안될 것 같았다. 관객에게 현실감을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말부 클라이맥스를 CCTV 화면과 휴대전화로 찍은 것 같은 영상들로 대체한 이유도 그래서다. 관객이 초중반까지는 이 영화를 한편의 이야기로 즐기다가도 마지막에는 이 사회를 돌아보기를 원했다.
- 한 소녀가 투신을 앞둔 자신을 생중계하는 장면을 SNS 화면의 레이아웃 그대로 프레임에 구현한 것도 그래서인가.
그렇다. 역시 2023년에 비슷한 사건이 연달아 있었다. 학교에서 장편 제작 지원을 받아 영화를 찍어야 하는 상황에 이토록 심각한 뉴스를 계속해서 접하니 도대체 세상이 왜 이러는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절망스러운 세상의 단면이 자극적으로 소비되지 않게끔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살하는 소녀를 바라보는 용기의 뒷모습만 보여주는 버전도 있었고, 소리를 왜곡해볼까도 싶었다.
- 그래서 세상이 왜 이런지에 대한 답은 구했나.
답을 찾지는 못했다. 오히려 영화를 찍으며 그 질문의 볼륨만 커진 기분이다. 이상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데 우리는 사는 게 힘들어 금방금방 잊는다. 영화로나마 이 저성장시대에 희망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그려주고 싶었다. 물론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영화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받아들이기 나름 아닐까. 나는 이 이야기 속 모든 인물이 안타깝다.
한창록 감독
“중학생 때 <파이트 클럽>(1999)을 봤다. 이게 뭐지 싶을 만큼 멋있었다.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데이비드 핀처도 딸에게 그 영화 좋아하는 남자와 만나지 말라고 했다던데, 괜한 오해를 살까봐 부끄럽다.” 하지만 한창록 감독은 자기 작품에서까지 취향을 숨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넘치게 발산한다.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을 거치며 만든 단편들에서부터 그랬다. 소위 ‘불편한’ 영화를 찍는 감독과 그 팬의 이야기 <구경>은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그 혈기를 인정받았다. <충충충>에 이르러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한 신인은 앞으로도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지 싶은 사람들”을 향한 호기심을 거두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