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에 참여한 국가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곳이 하나 있으니, 바로 홍콩관이다. 홍콩무역발전국에서는 매년 3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 영상마켓인 홍콩국제영화TV마켓(이하 홍콩필마트)을 개최해왔다. 올해는 그 흐름의 파도가 이어져 홍콩 기관들의 공동주최로 부산에서 ‘홍콩 시네마 @ 부산 2025’ 캠페인을 진행했다. 한동안 한국 관객들로부터 멀어졌던 홍콩영화의 파도가 다시 찬찬히 밀려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을 방문한 조니 왕, 테런스 최 프로듀서를 만나 홍콩영화의 오늘과 함께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 코로나19 이후 아시아 영화산업의 지형도는 실시간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테런스 최 한국 영화시장은 언제나 관심 대상이 다. <기생충>(2019)이 나 <파묘>(2024)처럼 주목 할 만한 성공 사례들이 꾸준히 나온다.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할 만한 영화들이다. 전주 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까지 시야를 넓히면 지역, 독립영화로서 특색 있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조니 왕 한국 영화시장은 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던 이유는 PGK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공동제작 등 협업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였다. 공동제작은 현재 아시아 영화시장의 중요한 돌파구 중 하나다. 그동안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현지 로케이션을 개발하는 쪽에 공을 들였다. 좋은 기회 지만 거리와 비용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하다. 한국 등 여러 국가와 공동제작 논의는 이를 타개할 만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리라 기대한다.
- 올해 홍콩 기관들이 ACFM에 홍콩전시관을 마련 하고 ‘홍콩 시네마@부산’ 캠페인을 열었다. 홍콩의 밤 행사도 준비하는 등 저변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조니 왕 감사하고, 필요한 일이다. 방금 언급했던 협업의 일환으로 자카르타 로케이션을 하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연락이 원활하지 않았다. 새로운 연결 포인트를 물색하던 중에 ACFM에 인도네시아가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덕분에 이번에 연락이 닿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아까 말했다시피 홍콩의 프로듀서들이나 제작사들은 홍콩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많지 않다.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나가서 최신 트렌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홍콩 안에만 머물면 같은 사람, 같은 도시, 같은 상상력에 익숙해져 좋은 기회를 찾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기회는 언제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생겨난다.
- 말씀하신 부분이 중요하다. 해외에서 K콘텐츠의 위상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데 반해 국내 영화시장은 난관에 봉착했다. 위기를 타개하고자 일어난 주요한 변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보다 다양한 중저예산 프로젝트를 개발 중이다. 다른 하나가 해외와의 합작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ACFM 등 행사에서 서로 교류하는 시간이 더욱 의미 있다.
조니 왕 맞다. 모든 나라는 다 각각의 장점과 문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홍콩은 독창성 있는 이야기들이 장점이다. 한국영화를 보면 액션의 수준이 정말 높아서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다. 로케이션을 한다면 볼거리가 다양하다는 것도 강점이다. 홍콩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엄격한 탓에 도심에서의 야외촬영이 쉽지 않는데 이런 부분에서 합작 영화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미 익숙하게 알려진 로케이션 외에 더 많은 개발이 필요하다. 이번에 내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무대로 시도해보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의 이야 기와 기획, 한국의 기술력,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 떠오르는 영화 신흥강국을 무대로 한 로케이션이 어우러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풍성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테런스 최 공동제작은 홍콩,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퍼지는 트렌드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을 주목해야 한다. 공동 제작을 하면 최소 2, 3개 나라에 기회가 열리는 셈이라 단순한 시장 확장에도 용이하다. 무엇보다 자국에서 진행이 쉽지 않았던 프로젝트들의 여러 난제를 해결할 돌파구가 될 수 있다.
- 홍콩영화 역시 최근 많은 변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령 유덕화 배우 주연의 <하이포스>를 보면 중국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가 눈에 띄는 한편, 동시에 코미디와 리메이크가 강세라고 들었다. 어찌보면 올해의 한국영화와 무척 닮았는데, 2025년의 홍콩영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설명한다면.
조니 왕 한마디로 정리하면 창의적인 제작자가 기획한 잘 만든 대중영화가 늘었다. 전체적인 박스오피스도 괜찮은 편이다. 장르적으로는 액션과 로맨스, 코미디는 여전히 강세이고 한국에서 인기 있는 호러는 내부적인 이유로 잘나오지 않는다. 큰 틀에선 80년대 홍콩영화가 가졌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길, 그러니까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홍콩영화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도전했고, 덕분에 다양한 색깔의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80년대에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2024년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한 <라스트 댄스: 안식의 의식>은 좋은 사례다. 코로나19로 빚더미에 앉게 된 남자가 평생 직장으로 여겼던 웨딩플래너를 그만 두고 장례지도사가 되는 과정을 다룬 이 영화 는 웃음과 전통이 모두 담겨 있다. 이런 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테런스 최 또 하나 덧붙이면 젊은 세대들이 극장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겐 이미 좋은 리메이크를 할 만한 IP들이 많이 있다. 최근 <천공의 눈>(2007)을 리메이크한 래리 양 감독의 <포풍추영>(2025)이 좋은 예시다.
-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국과 홍콩 영화계의 적극적인 교류가 필요한 시기다.
테런스 최 중국과 공동제작을 하는 경우 큰시장이 장점이지만 반대로 해외로 진출하기 어려운 난점이 있다. 홍콩의 기성 유명 배우들에게 기회가 더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콩의 젊은 배우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한 경험들이 있고, 강력한 IP도 보유하고 있다.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할 상황에서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조니 왕
중국 및 미국 스튜디오 제작에서 35년의 경험을 가진 영화제작 베테랑 프로듀서.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2008), <컨테이젼>(2011) 프로덕션 매니저, <퍼시릭 림>(2013) 로케이션 매니지먼트 등을 진행했다.
테런스 최
홍콩의 위 디스트리뷰션 리미티드에서 배급 관리자로 근무하며 아시아영화의 범위를 확장 중이다. 2022년 홍콩영화 제작자들에게 아시아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뉴 시네마 컬렉티브: 아시아 시네마의 신흥 파워’를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