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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열의 촬영 미학] 하나의 렌즈로 포착한 여름의 기억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박홍열(촬영감독) 2025-10-02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탈리아 북부의 눈부신 여름, 그 안에서 피어난 섬세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다. 싱그러운 전원의 풍경, 강렬한 햇살 아래 빛나는 유적과 고즈넉한 마을 안에서 풋풋하고 감각적인 두 사람의 모습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순한 풍경과 인물을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물 사이의 ‘거리감’과 카메라 렌즈와 대상간의 ‘거리감’으로 두 사람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관계성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있다.

이 영화의 부드러운 질감과 자연스럽고 따뜻한 인물 스킨톤은 Cooke S4 렌즈의 힘이다. 이 렌즈는 색수차가 적어 플레어를 깨끗하고 안정적으로 담아내며, 그 빛을 통해 주인공 엘리오와 올리버의 감정을 풍부한 빛의 질감으로 그려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Cooke S4의 여러 렌즈 중에서도 35mm 단렌즈 하나로만 촬영되었다. 초점거리 하나로 영화 전체를 촬영하는 것은 감독과 촬영감독의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다. 기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창작자는 함부로 인물을 카메라 앞으로 당기거나 밀 수 없고, 과도하게 카메라가 인물에게 다가설 수도 없다. 이는 촬영 내내 극 중 인물들 모두에게 언제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처럼 단렌즈 하나만을 사용해 독특한 미학을 구축한 작품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앨프리드 히치콕은 <로프>에서 영화 전체가 하나의 롱테이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35mm 단일렌즈를 사용했다. 기술적 제약으로 영화의 형식미를 완성하며 인물과 사건을 한 프레임 안에 담아냈다. <사이코>는 인물의 시선과 유사한 화각으로 관객에게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 대부분을 50mm 렌즈 하나로 촬영했다. 오즈 야스지로 역시 그의 작품 대부분을 50mm 단렌즈 하나만으로 촬영했다. 그는 이 초점거리가 주는 안정적이고 인위적이지 않은 시선이 인물간의 관계와 일상의 미묘한 감정을 담아내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믿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슈퍼 35mm 필름 포맷으로 촬영되었다. 이 포맷의 35mm 단렌즈는 인간의 시각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넓고 50mm보다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가 클로즈업을 담아낼 수 있다. 카메라가 인물에 더 가까이 다가설수록 관객도 그 인물의 감정에 동화되기 쉽다. 또한 인물의 감정과 공간을 동시에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35mm 단렌즈를 사용한 것은 엘리오가 느끼는 감정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 거리는 관객들이 엘리오의 시점으로 영화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며, 여름 별장 안에서 그의 감정을 함께 느끼게 만든다.

이 영화가 35mm 단초점렌즈를 활용하는 특별한 방식 중 하나는 카메라와 대상간의 일정한 거리 안에서 인물들을 화면의 Z축 위에 배치하고, 심도와 인물들의 동선을 통해 현재의 감정과 변화되는 감정의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엘리오는 카메라 앞에, 올리버는 화면 안 깊숙한 곳에 함께 배치된다. 이때 포커스는 엘리오에게 맞춰 있다. 뒤로 흐릿하게 뭉개져 보이는 올리버 모습은 한 화면 안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엘리오가 올리버를 바라보는 시선을 관객이 그대로 따라가게 한다. 관객들 역시 엘리오처럼 올리버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게 한다. 엘리오의 단독숏을 보여줄 때도 카메라는 35mm 단렌즈로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인물을 카메라 앞으로 당기는 대신, 카메라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며 초점의 대상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이는 엘리오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감정의 실체를 매우 미묘하고 조심스럽게 담아내는 방식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정원에서 기타 연주하는 엘리오에게 올리버가 듣기 좋다고 한다. 엘리오는 올리버를 실내로 불러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고정된 롱테이크 숏 안에서 엘리오는 피아노 앞에, 올리버는 멀리 문 앞에 서 있다. 피아노를 치다 멈추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 포커스가 공간을 유영하듯 말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듯하지만, 초점은 듣는 사람에게 멈춘다.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면 초점은 엘리오에게 고정된다.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대상에게 감정이 고조되고 있음을 초점의 이동을 통해 감정적으로 전달한다. 카메라는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대화의 내용이 아닌 감정의 흐름을 따라 초점을 이동시키며 두 사람 사이의 기류 변화를 담아낸다.

이 영화의 시각적 언어는 단지 거리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빛과 색은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올리버가 엘리오의 집에 처음 도착하는 순간, 올리버는 녹색 차를 타고 등장한다. 이 영화의 전체 색감은 따뜻한 옐로 톤인데, 이 공간에 녹색이 들어오고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엘리오를 만난다. 빛에서는 그린과 마젠타가 보색이지만, 색채에서는 그린과 레드가 보색이다. 이 영화는 색채로서 그린과 레드,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올리버는 주로 옅은 블루 계열의 셔츠를 입고 등장하면서 차분하고 이성적인 동시에 신비롭고 낯선 매력으로 엘리오에게 다가선다. 올리버와 함께 간 파티에서 엘리오는 레드 줄무늬가 있는 저채도의 블루 옷을 입고 있다. 춤을 추는 사람들 틈에서 키아라와 키스를 하는 올리버를 발견한다, 엘리오가 그 사이로 들어가 일부러 올리버 앞에서 보라는 듯, 다른 여인(마르치아)을 유혹하며 춤을 춘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블루를 흉내내지만 아직 같은 블루가 되지 못한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사소한 감정으로 다투고 화해한 후 함께 맞이하는 첫 장면은 고대 청동 유물을 보는 것이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성기를 드러낸 남성 누드 청동상을 두 사람은 함께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이 남성 청동 누드상은 오랜 시간의 흔적으로 산화되어 사이언(청록) 색을 띠고 있다. 이는 올리버가 이 집에 올 때 입고 있던 블루 계열의 색이다. 그리고 엘리오도 이제 올리버와 같은 블루 옷을 입고 이 동상을 맞이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엘리오가 침대 위에 놓인 올리버의 수영복 반바지를 보고 자신의 머리를 올리버의 반바지에 넣는 장면에서는두 사람의 바지 색이 바뀌어 있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카메라는 빛과 두 사람의 거리감으로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담아낸다. 엘리오 집 안 장면에서 밖은 비가 내리고 있다. 실내는 낮인데도 어둡고 블루 빛이 창 안으로 들어와 어둠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거실에서 엄마가 엘리오에게 16세기 프랑스 로맨스 소설을 읽어준다. 소설 속에서 사랑 고백을 고민하는 젊은 기사의 이야기는 엘리오의 내면을 대변한다. “(사랑을) 말하는 게 나을까요? 죽는 게 나을까요?” 엄마가 이 대사를 읽어주는 순간 밖에서 천둥이 치고 집 안은 갑자기 정전으로 어두워진다. 멀리 거실 끝 창밖에서 들어오는 블루 빛이 어둠 속에서 강조된다. 엘리오가 말한다. “저는 그런 질문을 할 용기가 없는 거 같아요.” 곧장 이어지는 신의 첫컷은 물속에 담긴 올리버의 발이다. 어제 엄마에게 들은 소설 이야기를 올리버에게 들려주는 엘리오의 목소리 위로 올리버의 발이 한참 보인 뒤 돌아앉아 있는 올리버의 뒷모습이 이어진다. 그리고 처음으로 올리버의 얼굴이 화면 정면에 가득 담긴다. 그 뒤로 엘리오의 앉아 있는 풀숏이 보인다. 올리버가 말을 시작하지만 화면 앞을 채운 올리버의 초점은 나가 있고, 뒤쪽 엘리오에게 초점이 맞춰 있다. 두 사람 모두 앞만 볼 뿐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기사가 이야기(사랑 고백)했어?”라고 질문하기 전 엘리오에게 고정되어 있던 초점이 올리버에게 이동한다. 두 사람 감정의 전이를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인물의 배치를 바꾸고, 심도와 초점이 맞는 대상을 달리해 엘리오의 고민과 올리버가 느끼는 감정이 연결되도록 표현하고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둘이 함께 1차 세계대전 전적비 앞에서 이어지는 대화 신은 3분30초의 긴 롱테이크 숏이다.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은유적으로 사랑 고백을 하는 장면은 인물의 동선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영화적이면서 아름다운 장면이다. 마을의 전적비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두 사람은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다.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너는 아는 것이 많다”고 말한다. 엘리오는 “중요한 일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말한다. 엘리오는 “아셨으면 해요”라고 읊조리며 서로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전적비 둘레를 걷는 두 사람을 조용히 따르는 카메라. 엘리오는 카메라에 가까워지지만 올리버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다 전적비 사이로 사라진다. 관객은 카메라의 가까운 인물, 엘리오의 감정에 몰입한다. 엘리오과 같은 마음으로 올리버를 보고 싶어 하지만, 올리버는 점점 더 작아지며 엘리오의 애틋한 감정에 동화된다. 카메라가 잠시 전적비를 비추고 내려오면 처음 출발한 반대편에서 다시 둘이 만난다. 엘리오가 카메라 앞쪽으로 다가와 클로즈업이 될 때쯤, 뒤를 돌아 성당 첨탑을 바라본다. 이어서 건물 안에서 나오는 올리버가 엘리오의 오버숄더 숏으로 보이고, 카메라는 다시 뒤로 빠져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올리버는 앞선 엘리오의 고백에 대답하듯 “그럴 수 없다”고 말한 뒤 다시 자전거를 타고 함께 사라진다. 엘리오가 어렵게 전하는 사랑 고백이 올리버에게 가닿지 못하고 맴도는 순간을 인물들의 동선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두 인물 사이의 거리감으로 표현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절정에 달하면서 카메라는 변화를 보인다. 이 영화의 제목이면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침대 위에 둘이 함께 누워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난 네 이름으로 부를게”라고 말할 때 누워 있는 두 사람의 얼굴 프레임은 상하가 뒤집혀 있다. 이는 서로의 존재가 뒤섞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블루 빛이 두 사람을 가득 감싸고 있다. 둘이 함께 밤을 보내고 난 뒤 올리버의 클로즈업이 화면 가득 잡힌다. 영화의 초반과 달리 이제부터 올리버가 화면 앞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올리버의 얼굴이 카메라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잡힌 이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음을 드러낸다. 올리버가 떠나기 전에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둘이 함께 짙은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짙은 파란색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음을 시각적으로 확인시킨다.

둘만의 여행 마지막 날, 블루 빛이 가득한 방 안에서 엘리오는 꿈을 꾼다. 레드의 네거티브필름 이미지가 엘리오의 꿈으로 표현된다. 창밖 블루 빛을 받으며 잠든 엘리오를 바라보는 올리버. 두 사람의 블루를 깨뜨리는 레드. 어디선가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삽입되고, 이어지는 컷은 녹색 열차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온다. 녹색 옷을 입은 올리버가 프레임인하고 엘리오는 올리버가 첫날 입고 온 블루 셔츠를 입고 있다. 올리버는 기차를 타고 떠난다. 마을로 돌아온 엘리오는 짙은 블루 옷을 입은 마르치아를 만난다. 시간이 흐른 후 겨울, 집 안에 전화가 울린다. 올리버가 처음 타고 온 차와 같은 녹색 전화기를 통해 엘리오는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이 영화는 인공광을 최소화하고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해 사춘기 시절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자연의 빛처럼 부드럽게 표현한다. 때로는 비가 오는 장면은 인공광으로 자연의 빛을 재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빛처럼 한 시절 갑작스럽게 다가온 사랑의 감정을 은유한다. 빛은 사라지지만, 우리는 그 순간 내 몸에 닿았던 따스함과 눈부심을 기억한다. 그 기억은 삶의 동력으로 우리 몸 안 어딘가에 새겨진다.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 컷은 3분30초 동안 엘리오가 난로를 바라보는 클로즈업으로 이어진다.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듣고 장작불을 바라보는 이 장면은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첫 고백과 같은 컷의 길이로, 불타오른 사랑이 끝난 뒤 남은 깊은 여운을 오롯이 보여준다. 영화 전체를 관통했던 35mm 단렌즈의 미학이 이 순간 엘리오의 얼굴로 수렴된다. 카메라는 이제 엘리오에게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와 있다. 영화 초반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던 소년이, 한 시기를 통과한 어른이 되었다. 거리감의 변화를 통해 성장의 서사를 완성한다. 영화 전체를 지배했던 이탈리아 여름의 황금빛이 이제 난로의 주황빛으로 전이되었다. 자연의 빛에서 인공의 빛으로 바뀌었지만, 그 온도는 여전히 따뜻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블랙 무지 위로 모닥불 소리는 이어진다. 불꽃은 사라졌지만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내는 소리다. 아직 재가 되지 않 그때의 기억과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엘리오의 얼굴이 담긴 사운드-이미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35mm 단렌즈라는 한정된 시선과 빛, 색, 거리감을 통해 엘리오의 특별한 여름날의 기억을 담아낸다.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닿았지만 잊힌 그 시절의 따뜻하고 눈부신 빛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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