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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 점검하기, 책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펴낸 권성민 PD 인터뷰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5-07-04

이제 커뮤니티(community)라는 낱말은 온라인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인터넷 공간을 연상시킨다. 드물게 생산적인 논쟁이 이뤄지지만 주로 모욕과 조롱, 소위 ‘아무 말’이 오가는 장소 말이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가면을 벗은 채 대면하고도 그럴 수 있을까. 2024년 1월부터 3월까지 웨이브에서 방영된 11부작 예능프로그램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의 단초가 된 의문이다. 권성민 PD는 이 아이디어가 “미시적인 다툼에 집중하기보다 현실 정치에 대한 이해를 담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해 상이한 정치 성향, 젠더 인식, 계급, 개방성을 지닌 12인을 불러 모아 사회 실험 성격의 서바이벌을 기획했다. 오프라인에서 물리적 실체를 확보한 ‘커뮤니티’는 유기적 공동체로 작동하며 대화다운 대화들을 이끌어냈다. 참가자들이 하나의 가상 국가를 건설해가는 과정처럼도 보인 이 리얼리티쇼는 제3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예능·교양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이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비상계엄과 조기 대선을 통과할 줄은 시청자도, 권성민 PD도 몰랐을 것이다. 권성민 PD의 네 번째 저서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는 그 시간을 견뎌낸 기록이기도 하다. “<더 커뮤니티>는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괴물은 아니라고 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시국에 그런 이야기를 책에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시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예능 PD가 사회과학 서적을 쓸 자격이 되는지도 걱정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과하게 부각하는 자의식 과잉을 멈추고 출판사의 전문가들을 믿기로 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더 커뮤니티>에 거론된 담론들의 맥이라도 짚어줄 수 있다면, 내가 탐독해온 훌륭한 사회과학 서적들로의 진입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고 여겼다.”

예능, 냉소와 거리 두는 방법

공존의 기술을 탐색하는 대중 교양서답게 이 책은 친근한 화법을 구사한다. 권성민 PD가 “실제로 인생에서 굉장히 중대한 경험이라, 언젠가 꺼내려고 했는데 그동안 한번도 안 써먹은” 군 생활 일화로 서문을 열거나 MBTI를 예시로 <더 커뮤니티>의 ‘사상검증 테스트’ 탄생 계기를 소개하는 식이다. 영화도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작가는 <인어공주> 실사화에 따라붙은 불만을 돌이키며 “흑인 에리얼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자인가?”라고 묻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통해 성찰 없는 관료주의가 뿌리내린 환경을 반추한다. 이따금 SNS에도 개봉작 감상을 나누는 권성민 PD를 자극한 근작은 <올파의 딸들>. 튀니지에서 온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장녀와 차녀가 IS에 가담하며 집을 나간 뒤 셋째, 넷째 딸과 함께 남겨진 어머니다. 영화는 그가 실제와 연극을 오가며 사건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다뤘다. “예능에서도 비슷한 형식을 활용해보고 싶어 이런저런 기획안을 써본 적이 있다. 다만 영화의 소재가 된 현실을 생각하면 무력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냉소와 거리 두기 위해 예능을 만들면서 우리 사회 언저리의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것도 같다.”

<가시나들>로 할머니들에게 학교를 내어주고, <톡이나 할까?>에서 연예인들에게 스마트폰만으로 소통하게 한 데 이어 <더 커뮤니티>를 찍으며 “유희적 공론장”으로서의 예능을 궁리해온 그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과 즐겁게 하는 것 사이에서 흔들리며 자랐다”고 고백했다. 전자는 계급이고 후자는 책, 만화, 영화다. “비디오 가게 아들로서 유년기를 보냈기에 더더욱 그랬다. 10대 시절에는 만화를 그렸다. 20대에 나를 추동한 것은 절대빈곤 문제였다. 탄자니아에 우물을 파고 부르키나파소에 도서관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과 좋아하고 잘하는 일 중 어떤 진로를 택할지 고심하다 MBC 채용 공고를 봤다. 당시 MBC는 사회적 메시지와 오락적 요소를 잘 엮어낸 프로그램들이 돋보이는 방송국이었다. 여기서는 내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MBC를 떠났지만 예능은 결코 떠나지 않은 권성민 PD가 덧붙였다. “결론을 내놓고 제작하는 드라마타이즈 장르와 달리 인위적 조건을 세팅하고, 출연자를 선별해 그들의 상호작용을 포착할 수 있는 장르라는 점에서 예능이 흥미롭다. 학문적 실험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유사하게 매력적이라 느낀다.”

수용자로서 받은 영향을 창작의 재료로 전환해온 그에게 다시 영화를 들어 질문했다. <해피엔드>의 유타와 코우, <위키드>의 글린다와 엘파바처럼 정치색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는 계엄 이후 정국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내적 갈등이기도 하다. 권성민 PD는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혹은 없다고 답을 내리지 않는 태도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까. 확고한 답을 내려버리면 답안에 포함되지 않는 여러 가능성이 사라져버린다. 만약 정치색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그가 서 있는 맥락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우정을 맺을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우문현답을 들려준 데 이어 근본적 차원의 고민을 꺼냈다. “그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토양이 필요한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계엄과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이 끼어들면서 더는 친구가 되기 어려운 순 간이 생겨버린 게 아닌가.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우선 논해야 한다.”

그 대답은 책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에 달린 부제와 닿아 있다. ‘각자의 현실 너머, 서로를 잇는 정치를 향하여.’ 권성민 PD 또한 이 책을 집필하며 자신의 연출작을 제대로 소화한 기분이라고 한다. “나는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디까지 모르는지 정직하게 점검해본 듯하다. 내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보다 그 가치관의 저변을 곱씹으면서 썼다. 내가 독서한 것들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촘촘하게 언어화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방송인의 성실한 업무 보고서인 동시에 어느 시민의 민주사회 표류기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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