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정신머리> 로 주목받은 박참새 시인이 첫 산문집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으로 2025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았다. 그가 앞서 엮은 대담집 <시인들>(2024)은 심미성, 독창성 등을 두루 갖춘 출판 디자인을 기리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꼽혔고, 올해 도서전을 위한 한정판 앤솔러지에 필진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닷새간 이어진 도서전의 피로가 내려앉기도 전에 출판사 마음산책 사옥에서 박참새 시인을 만났다. 책 속에서 시인은 “내가 나를 너무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39쪽)고 자의식에 골몰하다가도 이내 홀연히 날아가곤 했다. 시인의 상념은 언뜻 그로 분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귀 기울일수록 그 아닌 것들의 아우성이 또렷해진다. 자꾸 문지르고 닦아내 어느새 반질해진 그릇 안쪽엔 지난 세기의 문학적 유령들, 동시대의 역사적 비극이 투명하게 고인다. “내가 놓친 것. 내가 모르는 것이 99%”라고 믿는 박참새의 글은 신속한 진단과 확신에 찬 언어를 찾는 세상을 향한 배격의 날갯짓으로 읽힌다. 쓰는 사람까지 태워버린 불 같았던 시를 지나, 읽는 사람을 향해 물처럼 왈칵 밀려드는 산문이 도착했다. 시와 산문의 경계를 의심하고 나라는 주어를 방류하는 시인. 박참새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적은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을 전한다.
- 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시집 <정신머리> 이후 어떻게 첫 산문집을 쓸 수 있게 된 것일까.
글을 쓰는 동력은 아직 잘 모르겠다. 쓰는 시간과 쓰지 않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비교하면 후자가 당연히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를 그렇게 놓아두면 언제나 마음이 불편하다. 이 책에 한해서만 얘기해보자면, 같은 제목으로 개인 전자우편 연재를 한 것이 계속 쓸 수 있는 장치가 되어주었다. 메일링 연재에는 보통 전송 주기가 있는데 나는 구독자들에게 처음부터 글이 써지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억지로 쓰면 더 못 쓰기 때문에 만약 약속을 지키려다가 후진 걸 쓰느니 그냥 안 보내주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연재 기간도 길게 잡았었는데 결국 그마저도 못 지켰다. 중간에는 모두 없던 일로 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구독자 중 단 한분도 문의 또는 독촉하는 사람이 없었다. 놀랍지 않나. 늦는 작가를 그저 기다려주셨다. 그러다가 내가 힘을 내서 하나 보내면 잘 읽었다는 답장이 왔다. ‘내가 정신 차려야 된다’ 그 생각만 했다.
- 실비아 플라스의 유령과 함께 걷는 산문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첫장 ‘서글픈 자의식’으로 시작해 상념의 미로 속에서 점차 박참새의 목소리가 짙어지는데, 말미에 어느 모퉁이를 돌면 다시 플라스가 서 있다. 책머리에 인용된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이 책 전체를 전망하게 도와주는 실험소설 <파도>도 언급한다. 시집 <정신머리> 역시 여성 작가들의 영혼과 대화하며 쓴 작품들이 있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여자라면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그들이 망령처럼 내 곁에 있다.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내 옆에 있다고 늘 느낀다. 앞선 시집과 이 책까지 실은 염려스러운 마음도 컸다. 그들을 소환해서 어쭙잖게 실루엣을 보여주는 작업이 될까봐. 쓰는 이의 욕심에 우선 커다란 그림자를 불러온 뒤 정확히 다루지 않고 결국 자기 글 속으로 숨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꾸만 그쪽으로 써지는 게 힘들었다.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리는 듯한 느낌에 지배당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 <퍼스널 쇼퍼>를 보다가 평소 내가 하고 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말을 발견하고 고마웠다. (웃음)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신을 그저 영매라고 하지 않나. 그것이 내 태도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그냥 매개, 미디엄(medium)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 손, 파도, 미아와 같이 자신의 바깥의 주어들로 산문을 전개해나갈 때 어떤 작용을 추구하나.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정말 절박하게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사실 좀 부끄러울 때. 지나치게 표현하고 싶은데 너무 스스로에게 달라붙는 위험한 기분이 들 때 다른 주어가 속에서 나온다. 치밀한 구조를 계획하는 방식의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 나의 주어들은 툭 튀어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사후적으로 그 이유를 추적해보자면 내 얘기를 하고 싶은데 너무 숨고 싶어서, 그래서 어떤 장치를 마련해보는 것이다.
- ‘정신’과 ‘머리’에서 이번엔 자의식으로 향했는데, 박참새에게 이들은 어떻게 다른가.
자의식 자체가 그냥 허상 같다. 그 어디에도 있지 않지만 우리 모두가 그냥 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 최근 들어 오염된 단어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자아를 좀 모르면 어떻고 또 알면 어떤가. 오래전에 시는 눈물 흘리며 가슴으로 쓰는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시는 쓰는 사람이 눈물 한 방울도 흘리면 안되고 정신(머리)을 똑바로 차리고 써야 겨우겨우 봐줄 만한 게 나온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정신머리>는 그렇게 나온 제목이다. 시를 쓸 때 결국은 다 필요하다. 정신과 머리가 양쪽에서 팽팽하게 서로를 당겨서 한쪽이 지나치게 초과되지 않게끔. 물론 언제나 결과는 하나의 초과일 테지만. 그런 긴장을 늘 잊지 않고 쓰려고 노력한다.
- 현대 한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통과한 청년세대 작가로서 이를 실시간으로 언어화하거나 투쟁 전선에서 목소리를 보태지 못하는 기질에 대한 부채감, 수치심 등을 힘 있는 떨림으로 써내려갔다. 발산하는 말들 가운데 어떤 날은 “나는 역사를 외면하고 싶다”처럼 불온함을 숨기지 않는 문장도 빛을 낸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나는 시위에도 못 나가고 가자 지구 전쟁 반대 서명도 못했고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나 이태원 참사의 순간에는 자고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지금처럼 많은 것을 잘 알지도 못했다. 세상이 너무나 끔찍하고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데, 자기 목소리가 너무 작고 떨려서 말을 하기 힘든 사람들, 움츠린 사람들. 다 어디 있을까 참 궁금하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문을 두드리고 싶었다. 너무 놀라지 않게, 살짝. 그들의 이야기도 잘 들어보고 싶다.
- 활자의 떨림이 맞은편 페이지에 흔적으로 찍힌 것 같은 편집 디자인이 이 산문집의 내면적인 장을 구분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독특한 형식적 요소에 대해 들려준다면.
처음에 내가 떠올렸던 건 불에 그을려 까맣게 묻어나온 자국 같은 거였다. 결과물은 눈물이 번진 것 같기도 하고, 글자의 떨림이 묻어나온 것 같다는 감상도 기쁘다. 여러 가지로 독자의 체험을 의도한 장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쯤에서 독자가 다시 숨 쉬면서 책을 덮어보아도 좋겠다고, 남은 건 내일 읽어도 되고 혹은 영영 읽지 않아도 되니까 여기서 스르르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점에 넣었다. 소제목이나 꼭지 구성을 취하지 않고 느슨하게 실로 기운 책 같으면서도, 이쯤에서 책갈피를 꽂으면 좋겠다고 자연스럽게 느낄 만한 순간을 마련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