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널 알아, 너도 날 알고. 내 정체가 안 궁금한가?”
프랑스 파리에서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미국 여자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 영혼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녀는 최근 쌍둥이 오빠의 죽음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그러던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의문의 메시지가 들어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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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 Kristen Stewart’s ESSAYmore
“나, 모린, 그리고 <퍼스널 쇼퍼>에 관하여”
Written by 크리스틴 스튜어트
#1.
진정한 ‘내 팀’을 다시 만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현장에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굳건하게 맺어진 사람들과 일한 적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함께 일할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러길 바랐다. 그리고 2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내가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감독의 연락과 함께 시나리오를 받았다. 엄청났다. 놀라웠다. 얼마나 좋았던지 “안타깝지만 이건 네 배역은 아니야”라는 두려운 상상까지 했다. 물론 감사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쑥스럽지만,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그의 팀을 만난 건 행운이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만난 것 같다.
#2.
‘모린’ 캐릭터를 만나다
‘모린’은 완전히 고립된, 외로운, 슬픔에 빠진 인물이다. 게다가 늘 바쁘다. 이 곳, 저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또 이동한다. 그래서였을까 연기할 때 항상 지쳐 있었다.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소모가 심했기에 실제로 살도 많이 빠졌다. 또한, 다른 배우들과 늘 함께였지만 절대 그들과 함께일 수 없었다. 마치 그들 모두가 귀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 어떤 캐릭터와도 교감할 수 없었다. 이 점이 나를 굉장히 고통스러운 상태로 빠트렸다. 고맙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주변에 있어줘서 견딜 수 있었다. 만약 현장 분위기가 긍정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았다면 아마도 난 무너져서 완전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 같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3.
‘모린’을 준비하다
내가 상상했던 ‘모린’의 이미지는 중성적인 모습이었다. 한편 애증의 감정을 느끼는 패션계도 반영해야 했다. 그래서 의상 선택이 매우 중요했다. 배역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나는 항상 시나리오는 딱 한 번만 읽는다. 다시 읽는 것은 거부한다. 이러한 방식은 현장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끔 해준다. 특별히 작품을 위해 배운 것은 없었다. <퍼스널 쇼퍼> 촬영 후에 나는 철저히 파괴되어 있을 거 같았고, 그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만 했다. 작품을 위해 준비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과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방아쇠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고 당겨야만 했다. 그 점에서는 준비가 된 상태였다.
#4.
‘모린’과 나 자신을 이해하다
‘모린’은 자신이 증오하는 것에서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다. 정체성의 혼란과 내부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매력을 느껴서 일을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도 느끼는… 나 역시 같은 느낌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영화는 현대 패션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193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다. 그때보다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반짝이는 것에 매료되는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다. 지금까지 내 삶의 좋았던 시간들은 항상 재난을 몰고 왔다. 평안과 성취의 순간에 비극적 사건들이 따라온 것이다. 영화의 끝에서 비록 ‘모린’은 그녀가 찾았던 것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궁극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5.
프랑스영화, 그리고 첫 단독 주연작
미국 배우가 프랑스영화의 한 부분에 속한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올리비에와 제작진으로 인해 나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이건 무척 소중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그간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할리우드에서는 모두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다면, 프랑스에서는 모든 것이 다양하고 굉장히 치열하다. 미국에서는 마치 돈을 위해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면 프랑스에서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그것이 욕심이든 무엇이든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검증하려는 열망이 크다. 이것은 산업의 차이일 수 있고, 예산의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방식은 프랑스와 유럽에 가깝다. 영화를 만드는 동기가,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6.
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가 일어나기 48시간 전
파리에서 큰 테러가 발생했다. 48시간 전, 나는 그곳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잠깐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테러가 일어난 후, 파리에서 촬영이 남아 있었지만 연기하기 어려웠다. 아니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가짜처럼 보였다. 모든 것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다른 세계’에 있다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모린’은 자신의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주변 사람들과 사물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파리에 있지만,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동시에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았다. 이후,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심각하게 상처 입은 파리 주변을 뛰어다니는 ‘모린’의 감정이 느껴져서 슬펐다. 그녀는 도시에서 어떠한 기쁨도 느끼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했다.
#7.
새로운 차원의 영화 <퍼스널 쇼퍼>를 만나다
<퍼스널 쇼퍼>는 대부분의 프랑스 작가주의 영화와는 다른 장르영화다. 귀신이나 괴물, 외계인으로 관객을 무섭게 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투영한 장르영화라는 점에서 무척 독특하다. 개인적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완벽히 혼자인가? 혹은, 다른 누군가와 정말 교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런 점에서 <퍼스널 쇼퍼>는 매우 사색적인 영화다. 동시에 무척 개인적이고, 감정적이고 완전히 인간적인 영화다. 사적인 감정, 보이지 않는 세계를 완벽히 표현해낸 지적인 영화이자, 그간의 작업들에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으로 나를 발전시킨 영화다.
PART.2 --- Olivier Assayas’s ESSAY
“보이지 않지만, 매우 실제적인 우리의 두려움에 관하여”
Written by 올리비에 아사야스
#1.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다는 것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는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하고 신호를 기다리며 꿈속에서 그들을 만난다. 죽은 자의 존재가 ‘진짜’일지 모르기에 혼란스럽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우리 내면에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의심한다. ‘모린’의 갈망은 이런 양면성을 반영한 것이다. 상상력은 현실이며, 두려운 것이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지 않나. 우리는 매일 우리의 환상과 꿈, 두려움과 씨름한다. 이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매우 실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유령’은 우리의 기억, 잠재의식과의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모두와 관련될 수 있다.
#2.
나의 뮤즈, 크리스틴 스튜어트
그녀는 솔직하고 소박하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동시에 단독으로 영화의 대부분을 책임질 수 있는 훌륭한 배우다. 그녀의 실제 모습에서 ‘모린’ 캐릭터가 탄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 함께 한 경험을 통해서 ‘모린’ 캐릭터가 탄생한 것은 맞다. 그녀가 할 수 있을지, 시간이 가능할지, 흥미로워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정반대였다. 그녀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모린’을 승낙했다. 결국 ‘모린’ 캐릭터는 그녀가 재창조하고 변형시키고 조화시킨 결과다. 이는 매우 독특한 공헌이다. 나는 공간을 주고 격려했을 뿐, 영화의 방향을 설정한 사람은 온전히 그녀였다. 이러한 점에서 크리스틴은 ‘그녀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배우’다.
#3.
‘모린’ 캐릭터를 창조하다
생계를 위해 자신과 상관 없는 일을 하면서도 다른 것을 열망하는 인물을 창조하고 싶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 일상적인 일을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상상, 희망 등 우리의 존재보다 더 큰 생각들을 한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긴장이 생기게 되는데 물질주의사회에서의 이런 긴장감은 폭력적으로 변한다. 이것이 현대 사회와 우리의 핵심이다. 나는 ‘모린’이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이 있었다. 중요한 점은 결국 그녀가 자신의 절반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오빠가 아니라 다시 찾아야만 하는 자신의 절반임을 점점 깨닫게 된다.
#4.
15분간의 문자메시지 시퀀스에 대하여
타이밍, 뉘앙스, 답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 답장 받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설정했다. 두 개의 이야기가 평행하는 구조가 좋았다. 굉장히 다큐멘터리적인 구조와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문자를 하는 구조. 보이지 않는 존재와 소통한다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실제로 있는 사람인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19세기 중반 탄생한 심령주의와 관련이 있다. 심령주의는 항상 마법 세계의 일부로 간주되던 것들을 가능케 했다. 멀리 있는 무언가를 보고 그 곳에 없는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 것 말이다. 그것은 유령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 개념과 매우 강력한 수단이자 매혹적인 매체인 문자를 연결시켰다.
#5.
독립영화, 작가주의영화, 예술영화… 모든 틀을 거부하다
내 영화가 특정 유형의 영화로 표현되는 것이 싫다. 예술이란 복잡하고 신비한, 불확실한 것이 많고 그것이 곧 예술이라 생각한다. 그중 영화는 여러 색 중 하나만을 선택해 그리는 그림 같다. 내가 색을 선택해서, 어떠한 그림을 그릴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관객들과 육체적인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영화를 좋아한다. 흔히들 예술영화와 장르영화는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 두 가지를 반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주인공과 육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란다. 즉 주인공이 겪는 두려움, 불안에 함께 반응하길 바란다. 이것이 중요할 뿐, 내 영화가 어떠한 카테고리에 속할지 고민하는 것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6.
찬사와 야유 그 한 가운데에 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내 영화를 좋아하길 바라지만 절대 만장일치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 영화는 질문에 관한 것이지 대답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영화가 어떤 종류의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그것을 즐기려고 노력한다. 나아가 그것이 궁극적으로 영화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항상 영화적으로 시도하고 실험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퍼스널 쇼퍼>는 우리의 인식 혹은 상상과 현실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영화다. 나는 유령을 보여주기만 했을 뿐, 그 누구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완전히 열어 놓았다. 이는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당신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좋다. 함께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7.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이유
“왜 당신이 만든 대부분의 영화에서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인가?”라는 질문을 그간 수없이 받아왔다. 사실 크게 의식하지 못했기에, 한동안 그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다. 그에 대한 답은 나는 약간 페미니스트 같다. 물론 내가 그간 여성에 관한 이야기만 해온 것은 아니다. 남성에 관한 이야기도 했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를 자극시키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그 방식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것이 20세기를 정의하는 것이고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언컨대 남성 우월주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악한 측면이고 많은 폭력의 원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