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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베테랑2>까지, 제작사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인터뷰
정재현 사진 오계옥 최성열 2025-06-26

- 외유내강의 시작은 <짝패>였다.

당시만 해도 류승완 감독은 루키였고, 나는 셋째 아이를 임신한 후 도의적인 차원에서 몸담았던 좋은영화사를 떠난 시점이었다. 후다닥 만들어진 프로젝트라 <짝패> 다음의 외유내강은 개점과 동시에 폐업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짝패>가 베니스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고,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시장의 니즈가 크지 않던 시절 해외 세일즈사의 주목을 받았다. 회사 경영에 대한 비전은 오히려 <짝패> 다음의 영화들을 통해 구체화했다.

- 여러 차례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이후 <부당거래>와 <해결사>를 제작한 순간을 외유내강의 주요 분기점으로 꼽았는데.

다시 생각해도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더 밀어붙였어야 했다. 극장에서 다수의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과감해야 하는 여러 시도를 스스로 검열했는데, 이 작품만이 보일 수 있는 재미를 극대화했다면 덜 아쉬웠을 것 같다. 모두가 알다시피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의 흥행 결과가 처참했다.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던 중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의 원안을 받았고 나는 류승완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결사>를 제작했다. 류승완 감독과 따로 또 같이 작품을 만들며 회사의 행보를 본격화했다. 외유내강의 두 번째 분기점은 <군함도>라고 할 수 있다. 제작자와 감독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숙고하게 만든 시기다.

- <군함도>가 여러 의혹과 논란을 낳았던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나.

제작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배웠다. 여론의 질타와 오해 혹은 여론에 의해 작품이 호도될 때 제작자가 자신의 작품, 배우와 스태프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지금이라면 좀더 명민하게 대응했을 텐데, 당시만 해도 <베테랑>으로 외유내강이 많은 칭찬을 받은 직후라 당황한 채 사태에 놀라기만 하다 영화를 극장에서 내렸다. 아직 <군함도>를 선뜻 꺼내기 어렵다. 외유내강의 구성원 모두가 무의식 속에 서로를 향한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군함도>의 역사관을 포함해 작품의 공과(功過) 모두를 재조명할 시간이 오길 바란다.

신인감독이 영화를 계속할 토양

<밀수>

- 외유내강이 제작한 신인감독의 영화가 언제나 화제를 모은다. 지난 20년간 권혁재, 이상근, 필감성, 김성식 감독의 데뷔작과 김태용, 장재현, 최정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을 제작했다. 이들 중엔 기존에 외유내강과 협업한 경험이 있는 감독도 있고, 외유내강과 처음 만나 작업한 감독들도 있다. 신인감독과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치열한 시간을 거치나.

외유내강엔 류승완이라는 대장 감독이 있다. 류승완이라는 기준점이 외유내강 작품의 퀄리티를 이끌어내는 장점인 동시에 모두가 힘겹게 넘어야 할 허들이다. 그리고 그 지점이 외유내강의 가장 큰 자부심인 퀄리티 컨트롤을 이끈다. 관객과 영화는 결국 드라마로 소통한다. 말도 안되는 영화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로부터 온다고 믿고,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는 외유내강에서 기획할 수 없다.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신인감독들에게 늘 강조하는 지점이 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명장면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 하면 생각나는 시그니처 신이 하나만 있어도 성공이다. 결국 외유내강의 치열한 시나리오 개발 과정은 무얼 더할지가 아닌, 얼마나 덜어낼지를 고심하는 시간이다. 제작 과정에서 예상할 수 있는 어려움이 보인대도 프로덕션에 들어간 순간 일단 감독을 무조건 믿는다. 지금까지 연출가의 준비 상황이나 현장의 여건으로 인해 예상치를 끌어내지 못한 경우는 있지만 외유내강의 작품 중엔 최소 하한선 밑으로 떨어지는 작품은 없다고 확신한다.

- 치열한 고투 끝에 세상에 영화를 내놓았을 때, 신인감독만큼 큰 희열을 느낄 것 같은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겐 각자의 취향과 고집이 분명하다.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감독이 디렉터스 체어에 앉기 전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할 때의 행복이 크다. 제작 단계에서 느끼는 희열의 단계는 몇 계단 더 있다. 감독이 원하는 캐스팅을 성사했을 때, 캐스팅과 시나리오의 조합으로 투자자를 설득할 때 등등. 현시점이 신인감독이 입봉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바꿔 말해 현재 업계 전반이 기성 제작사가 신인감독의 입봉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인지, 나 역시 또 다른 신인감독의 탄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다. 간혹 영화인들로부터 ‘넥스트 000’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데, 답하기 어렵다. 일단 신인감독이 영화판 이외의 환경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시리즈를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모든 것이 혼재한 와중에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제작자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인지 걱정이 크다.

<모가디슈>

-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헤드라인 아래 매번 영화인들이 분투했지만 그 속에서 지난 20년간 외유내강이 보여준 가시적인 성과가 크다. 2020년대만 놓고 이야기해도 <모가디슈>와 <인질>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점에 연이어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다. <밀수> 역시 엔데믹 이후 급변한 여름 시장에서 많은 관객의 지지를 받았다. 악재 속에서도 외유내강은 ‘극장을 지키는 제작사’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었고.

본의 아니게 이렇게 흘러왔다. 회사 내부에서 의사 결정을 책임지는 나, 류승완 감독, 조성민 부사장이 지닌 극장 영화를 향한 순정이 크다. 영화는 콘텐츠일까. 만약 콘텐츠가 아니라면 나는 영화를 무엇이라 정의할까. 소비자가 영화를 정의하는 방식에 만족하는 작품을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제작자로서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한 주제다. 지난 20년간 운도 좋았지만 어느 누구도 만들지 않았던 영화를 완성하려 죽기 살기로 노력했다. 아까 류승완 감독이 외유내강의 허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류승완 감독은 물 안으로도 가봤고 아프리카 내전 한가운데로도 들어가봤다. <탑건> 시리즈처럼 공중전만 남았다. (웃음) 프로덕션 차원에서도 완성도를 기한 도전이 많았기 때문에 눈높이가 높아졌고, 이를 제작 지원하는 경험이 누적되며 자사의 영화에 대한 기대 역시 자연히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밀수>는 더 잘되길 바랐던 영화다. 여성 제작자로서 여자들이 주인공인 멋진 영화를 만들어 흥행까지 만들어보겠다는 포부가 컸다. 재평가받을 구석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악마가 이사왔다>와 <휴민트> 미리 보기

<베테랑2>

- <악마가 이사왔다>가 올해 8월 공개될 예정이다.

극장 출구 조사, 인지도와 같은 소위 숫자로 귀결되는 데이터로 시장을 파악하던 지난 관례가 헝클어진 상황이다. 요 몇년 대형 투자배급사들과 개봉 전 논의한 전략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았다. 지금 분석할 수 있는 소비 동향은 관객이 기존 예측보다 훨씬 기민하고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 정도다. 한마디로 유행이 급속도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다행히 외유내강은 투자배급사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다. 최소 본전이었다. 이 기조를 이어가려 한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여태껏 만든 영화 중 단연 마케팅이 까다로운 영화다. 그래도 단언하자면 작품의 엔딩을 포함해 꼭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다. 크랭크업은 2022년에 마쳤는데 이 작품을 극장에서 제대로 선보일 시기를 엄선하다 보니 2025년에 이르렀다. 이제 와 말하지만 지난해 6월에 공개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2> 예고편을 보니 어쩐지 싸하더라. 그때 극장에 안 걸어 천만다행이다. (웃음) 내년엔 <휴민트>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지난해 외유내강 최초의 속편인 <베테랑2>가 개봉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처럼 세계관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외유내강의 작품을 연결해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적 있던데.

현재 <베테랑3>(가제)의 시나리오 작업에 한창이다. 카피도 나왔다. “나 이번에 제대로 돌아왔다.” <베테랑2>가 공개됐을 때 <베테랑>과 비교하던 긍정적, 부정적 반응 모두가 우리에게 귀한 자산이 됐다. 뻔하지 않은 작품을 만드느라 애썼다고 바라보던 쪽도, 나의 서도철은 이렇지 않다고 비난하던 쪽 모두 감사하다. 갈리는 반응을 접하니 <베테랑>이 다시 한번 초심의 통쾌함, 즐거움을 선사해야 맞지 않나 싶더라. 3편까지 이른바 ‘<베테랑> 페이즈1’을 마무리한 이후엔 외유내강의 세계관 안에서 별개의 작품끼리 교직하는 이야기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해치를 가지고 스핀오프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고. 류승완 감독이 자신의 세계를 탐구할 동안 나도 외유내강의 신인감독들을 책임지며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가려 한다.

- 매해 영화계 상황이 요동한다. 매번 개봉작을 공개하는 과정은 달리 말해 영화의 의미를 달리 세우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을 보며 속으로 “톰 오빠 안녕”을 외쳤다. 한 인간이 영화산업에 일생을 갈아넣은 삶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으니까. 1편부터 30년 넘게 관객으로서 에단 헌트와 함께해온 모든 순간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우선 러닝타임이 긴 것이 불만이더라. 이 반응을 접한 순간 소비자와 공급자간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면 나는 한없는 약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논의하기 전에 필름 메이커와 관객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영화는 일정 부분 문화적 허영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상영관에서 어깨를 맞대고 함께 웃고 울며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와중에 내 마음에 남는 무언가를 흔쾌히 즐긴 시간을 전시나 공연처럼 관람한 경험을 ‘인증’하는 현상으로 자리하면 좋겠다. 바라건대 그 영화가 한국영화였으면, 아주 솔직히는 외유내강의 작품이었으면 좋겠고. (웃음) 그래서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 정신 차려야지.

외유내강 출신 감독들이 말하는 ‘외유내강’

이상근 - <엑시트> 연출. <악마가 이사왔다> 개봉예정.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류승완 감독님과 연이 닿은 후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의 연출부로 합류했다. 이후 외유내강을 나와 몇몇 단편영화를 만들다 2015년에 시스템이 갖춰진 제작사에서 장편을 만들고 싶어 재입사했다. 그리고 <엑시트>가 탄생했다. 투자부터 캐스팅까지 외유내강이 가진 에너지가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과정이 모두 수월하게 풀렸다. 매 작업 모든 구성원이 합이 뛰어나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필감성 - <인질> 연출. <좀비딸> 개봉예정.

“외유내강은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 치열한 회의를 거친다. 반면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가면 연출자가 자신의 의도를 최대한 구현할 수 있게 지지해주는, 고마운 제작사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제작사 덕분에 온전히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았다. 창작 이외의 지점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여러 제반 요소를 조율해주는 제작사다. 덕분에 배움의 순간이 많았고 감독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

최정열 - <시동> <비질란테> 등 연출. 차기작 집필 중.

“<시동>을 만들 당시 거의 1년간 매일 외유내강 사무실에 출근해 작업했다. 갈 때마다 류승완 감독님도 신인감독 못지않은 열정으로 창작에 열중하고 계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 <시동>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십편의 영화를 만든 베테랑이 한데 모인 회사임에도 구성원 각자의 작은 아이디어 하나도 모두 경청하고 이를 영화로 발전시킬 여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촬영 기간 내내 제작사가 나를 한 작품의 연출자로서 신뢰하고 있다는 확신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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