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은 보통 천재 예술가 혼자만의 재능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그 재능을 배양하는 문화적인 토양과 여러 조력자의 도움으로 싹트기 마련이다.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받는 지브리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6월6일부터 내년 2월22일까지 용산아이파크몰 6층 대원뮤지엄에서 열리는 전시 <아니메쥬와 지브리展>은 지브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문화적인 토양을 환기한다. 우선 1300점 이상의 방대한 자료를 통해 19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을 이끈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아니메주>의 역사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이어서 <아니메주>의 창간인 스즈키 도시오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하며 전시회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Q1. <아니메주>는 어떤 잡지인가.
<아니메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가 한창이던 70년대 중반, 도쿠마 쇼텐 출판사의 투자로 1978년에 창간됐다. 이 잡지의 창간인이자 훗날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가 되는 스즈키 도시오는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작가주의 성향을 염두에 두고 잡지를 창간했다. “영화는 본래 움직이는 것이다. 좋은 장면은 한컷씩 보고 분석해야 한다.” 그의 견고한 철학에 따라 잡지의 구성도 정해졌다. 스즈키 도시오는 <은하철도 999> <기동전사 건담> <천사의 알> 등 작품성 있는 애니메이션을 조명하는 특집을 기획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이에 따라 <기동전사 건담>은 <아니메주> 덕에 극장판으로 부활했다. 해마다 열리는 인기 투표 ‘아니메 그랑프리’는 팬덤 문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Q2. <아니메주>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둘의 인연은 <아니메주> 창간호부터 시작된다. 스즈키 도시오는 숨겨진 명작을 알리는 코너에서 다카하타 이사오가 연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장면 설정을 담당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조명했다. 이후 스즈키는 당시 시류를 거스르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주목했다. 미야자키의 첫 극장애니메이션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개봉 당시 이 작품을 <아니메주>의 커버로 선택했고, 1981년 8월호에는 31페이지에 걸쳐 미야자키의 작품을 심층 분석했다. 스즈키가 미야자키에게 1983년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연재를 제안하면서 둘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특집, 원화와 셀화 TV시리즈의 레이아웃 등 미야자키의 손때가 묻은 자료를 볼 수 있다. 거기에 <빨간머리 앤>과 <꼬마숙녀 지에> 등 다카하타 이사오 특집호도 볼 수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 탄생!’ 코너에서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흥행 이후 지브리의 탄생 비화와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원화, CF를 위한 원더십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Q3.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어떻게 영화화되었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아니메주> 연재 직후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에 따라 <아니메주> 내부에서는 만화를 영상화하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아니메주>의 편집장 오가타 히데오는 미야자키에게 5분짜리 파일럿 제작을 제안했으나 한달이 지난 뒤 규모가 커지자 영화화를 논의했다. 6개월 후 애니메이션을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자 미야자키는 다카하타 이사오를 프로듀서로, 제작 스튜디오를 톱크래프트로 결정한 뒤 빠르게 진행해나간다. 전시에는 코마츠바라 카즈오의 캐릭터 스케치부터 21점의 레이아웃, 14점의 배경화, 6점의 셀화 등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기원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가 걸려 있다. 특히 디자이너 다케야 다카유키의 디자인을 전시해둔 ‘바람술사의 부해복장’ 코너의 디오라마는 이 전시의 백미다. 이뿐만 아니라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 현장을 담은 <아니메주> 1983년 11월호 특집, 개봉 당시의 포스터, 굿즈, 부록 등 보기 힘든 영화 관련 상품도 있다.
Q4. 전시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포토존이 인상적이다. 입장 시에는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버스 포토존이 있고 퇴장 시에는 <아니메주> 부록을 모티프로 한 포토존이 있다. 이곳엔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마녀 배달부 키키> <이웃집 토토로> 등 영화 속 명장면을 당장 스크린 바깥으로 꺼낸 듯한 섬세한 세트 구현이 감동을 준다. 내가 바로 그 작품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MD 상품도 눈에 띈다. 미야자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개봉 당시 트럼프 카드, 부채, 배지, 엽서 등 지금 우리에게도 익숙한 굿즈를 발매했다.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했을 때는 컬래버 음료수와 소책자 등 여러 굿즈가 나온다. 이처럼 굿즈 문화의 발전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야자키가 원화 스태프에게 한 지시가 그대로 실린 원화에서는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Q5. <아니메주>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면.
<아니메주>와 <기동전사 건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전시에서는 <기동전사 건담>을 조명한 특집기사와 잡지에 수록된 원화와 건프라(건담 프라모델), 명장면을 구현한 디오라마를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방’ 코너는 가정용 비디오 붐과 애니메이션 소비문화의 발전을 한 공간에 압축해 보여준다. 로봇과 SF 장르를 중심으로 했던 <아니메주>가 여성향의 BL과 <요술 공주 밍키> 등 마법소녀 장르의 부상에 주목해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던 혁신적 시도를 주목한 코너도 흥미로웠다. <천사의 알>의 오시이 마모루 등 <아니메주> 가 조명한 작가를 소개한 코너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니메주>의 커버를 모아둔 코너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스펙트럼처럼 펼쳐둔 듯한 감흥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