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핀처는 암흑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감독이다. <에이리언3>부터 <패닉 룸>에 이르는 핀처의 영화에서 밝고 환한 세상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프랑스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를 불러들여 고감도 촬영의 극단적 가능성을 보여준 <쎄븐>이 대변하듯, 핀처는 어둠이 지배하는 이미지로 작가의 서명이 확연한 세계를 구축한다. <패닉 룸>의 무대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4층 저택이며, 사건은 하룻밤 동안 벌어진다. 핀처가 매력을 느낀 게 당연하다. 그는 데이비드 코엡의 각본이 “일종의 연습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 사람들을 밀어넣고 서스펜스와 스릴을 극대화하는 방법, 핀처 역시 <패닉 룸>을 일종의 연습으로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애초 촬영을 맡은 다리우스 콘지와 이견이 생긴 것도 이런 점이었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핀처가 밝힌 말로 짐작해보면 콘지는 <패닉 룸>을 좀더 심오한 영화로 받아들인 것 같다.
촬영 도중 콘지를 대신해 콘래드 W. 홀이 카메라를 잡았지만 촬영감독과 마찰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패닉 룸>의 카메라 움직임은 대단하다. 특히 초반부에 저택의 내부구조를 보여주는 5분간의 롱테이크는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 조디 포스터를 비추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카메라는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와 창문 밖에 움직이는 괴한들을 보여준 다음 열쇠구멍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들어와 주방의 커피포트를 통과해 위층에서 침입하려는 포레스트 휘태커로 이어진다. 컴퓨터그래픽과 실사촬영이 결합된 이 장면은 영화 속 공간을 해부하듯 보여줌과 동시에 괴한들의 등장을 긴박하게 잡아낸다. 핀처는 이 장면을 9일간 촬영하고 1년간 후반작업해 완성했다고 말한다. 이같은 카메라 움직임은 치밀한 사전계획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핀처는 이를 위해 스토리보드를 3D로 만들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3D 스토리보드를 담당한 론 프랑켈은 “<쉬렉> <쥬라기 공원>에 사용된 같은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동원했다. 촬영 전에 실제 세트와 똑같은 모델을 만든 셈”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미리 설계된 가상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촬영 전에 카메라 위치를 정확히 설정, CG와 실사촬영이 결합될 지점을 포착한다. 당연히 세트 디자인도 완벽해진다. 프랑켈은 “3D 스토리보드의 도움으로 핀처는 촬영을 시작하기 전 영화의 2/3에 해당하는 장면들의 편집본을 갖고 있었다. 제작진은 모두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핀처가 각 장면에서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스튜디오의 입맛에 맞는 장르영화를 만들면서도 핀처는 손해보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핀처의 카메라는 앞으로도 진화의 또 다른 단계를 보여줄 것이다. 남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