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룸>에서 카메라는 벽을 통과하며 어떤 등장인물보다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 영화의 카메라 움직임은 어떤 컨셉으로 이뤄졌나.
이런 유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찍는 것이다. 종군기자가 전쟁상황을 전하는 것처럼 감독의 주관적 시점으로 사건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의 방식은 <블레어 윗치>처럼 사건에 직접 얽혀 있는 공모자의 시점으로 찍는 것이다. 나는 극단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카메라가 어디로도 움직일 수 있고 어떤 시점도 대변할 수 있는 방식이다. 카메라의 이런 움직임과 상반되게 사람들은 벽과 문에 갇혀 있다. 사람은 문을 관통해서 빠져나갈 수 없기에 번번이 벽과 문에 가로막힌다. 나는 진정 카메라가 전지전능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혹했다. 그것은 유령의 관점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며 관객에게 어떤 긴장감을 준다.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 무시무시한 어떤 것을 당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보게 된다.
주인공이 니콜 키드먼이었다가 조디 포스터로 교체됐다. 주연이 바뀌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니콜 키드먼이 주연이었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니콜 키드먼이라면 히치콕이 그레이스 켈리를 기용한 것 같은 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녀의 자태와 육체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식으로. 조디 포스터가 주인공을 맡으면서 그녀의 눈 속에 많은 것이 담기는 영화가 됐다. 좀더 정치적인 느낌도 줄 것이고. 조디 포스터는 35년간 자신을 독립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만들어온 인물이다. 그녀는 누구의 애완동물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닌 여자이다.
촬영감독이 다리우스 콘지에서 콘래드 W. 홀로 교체됐다. 어떤 이유였나.
다리우스 콘지는 ‘필름’을 만들려고 했지만 <패닉 룸>은 ‘무비’였다. 필름과 무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비는 관객을 위해 만드는 영화이고 필름은 관객과 작가 양자를 만족시키는 영화다. <게임>은 무비이고 <파이트 클럽>은 필름이라고 생각한다. <파이트 클럽>은 각 요소를 산술적으로 합쳐놓은 것 이상인 반면 <패닉 룸>은 정확히 각 요소들의 산술적인 합이다. <패닉 룸>을 보면서 “이런, 이 영화가 세상을 들썩거리게 만들겠군” 하고 생각할 순 없다. 이건 죄책감을 동반하는 쾌락을 만드는 영화다. 스릴러다. 여자가 외딴집에서 함정에 빠지는 영화다.
당신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영화보다 겁주는 영화에 관심이 많다던데.
흠, 꼭 그렇진 않다. 그 말을 했던 컨텍스트를 벗어나서 그렇게 말하면 오해를 살 여지가 많다. 그런 말을 했던 컨텍스트는 영화가 관객의 흥미를 끄집어내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러 다른 방식 가운데 나는 사람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것, 쿠키를 제공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영화가 있다. 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다. 예를 들어 <차이나타운>을 좋아한다. 난 전혀 영웅적이지 않은 영웅이 좋다. 그는 보잘것없는 행동을 하지만 난 날것 그대로인 폭력의 그런 측면을 좋아한다. <코미디의 왕>도 좋아한다. 로버트 드 니로가 자기 여자친구를 제리 루이스의 집에 데리고 갈 때, 관객은 그게 그저 나쁜 꿈이길 바라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실제 일어나는 일이고 관객은 당황하게 된다. <썸씽 와일드>에서도 레이 리오타가 등장하면서 영화의 톤이 바뀌는 대목이 좋다. 이 영화는 얼빠진 해피엔딩 영화처럼 진행되지만 그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영화가 달라진다. 폭력적이고 무서운 인물이 나오면서 말이다. 난 관객을 그런 식으로 끌어들이는 영화가 좋다.
이런 유의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다고 생각하나.
꼬마였을 때 히치콕의 영화를 많이 봤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작가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의 영화는 주류영화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히치콕 영화에 대해 조사, 연구해서 <패닉 룸>을 만든 것은 아니다. 난 스튜디오에 <어둠의 표적>과 <이창> 사이쯤에 있는 영화라고 설명하면서 <패닉 룸>을 제작하도록 설득했다. 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다른 영화를 보고 참조한 것은 없다.
<나홀로 집에>의 슬래셔영화 버전이라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웃음)
사람들은 뮤직비디오 감독을 영화감독에 비해 폄하하곤 한다. 그런데 당신은 영화감독이 된 뒤에도 여전히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뮤직비디오는 재미있다. 일단 내러티브에 방해받지 않고 찍을 수 있는 거니까. 어떤 느낌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녹음하고 믹싱해서 그게 제대로 작동하는 걸 보는 즐거움은 다른 일과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관객과 함께 어떤 장면을 보고 관객이 거기 반응하는 걸 보면 놀랍다. 관객을 사로잡고 관객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어떤 영상에 어떤 음악을 넣어서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좀더 추상적인 어떤 일을 하는 셈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조지 루카스도 추상적인 실험영화를 만들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
그랬다고? 음, 그래야 될 텐데. 대체 그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해서 안 그러고 있는 거지?
메이저 영화사에서 만드는 동시대 할리우드영화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튜디오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스튜디오는 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오늘날 스튜디오들은 훌륭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맥도널드를 모델로 삼고 있다. 그들은 대중의 소비성향을 쫓고, 패스트푸드를 추종하며, 마이애미에서 맛보는 빅맥이나 비엔나에서 먹는 빅맥이 똑같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관객에 대한 TV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매주 같은 연속극을 보기 위해 TV 앞에 앉는 것은 그것이 간편하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라는 평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스스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라고? “이 장면을 찍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설명이 좀 필요한 얘기다. 스토리텔러가 하는 일은 관객이 어디서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것이다. 내게 그건 적당한 장소가 있는 일로 보인다. 지금 하는 인터뷰를 찍는다고 한다면 난 카메라를 내 머리 뒤에 놓을 것이다. 그런 다음 내가 말을 계속하면 질문에 답하는 인물에 관한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다. 그것이 영화의 문법이다. 그런 문법이 있고나서 그걸 이용하든, 남용하든, 재정의하든, 비비 꼬든 뭐든 되는 거다. 그런 범위에서 대개 최적의 장소, 최적의 선택이란 게 있는 법이다.
(이 인터뷰는 <퀴어 뷰>, <가디언>, www.davidfincher.net, www.about.com 등에서 발췌, 정리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