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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빛을 부르는 어둠을 입고, <검은 수녀들> 송혜교
김소미 2025-01-21

생애 첫 오컬트물의 주역으로 변신해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약 11년 만에 극장가를 찾은 배우 송혜교를 만났다. <더 글로리>에 이어 <검은 수녀들>로 나타난 그로부터 멜로드라마의 양지에서 장르물의 그늘로 이동한 배우가 내뿜는 빛을 목격하는 요즘이다. 수녀를 향한 차별에 단호히 맞서면서 악령 들린 소년을 살리려는 유니아 수녀로 분한 송혜교는 격렬한 의식을 막 끝낸 것처럼 후련해 보였고, 신작 촬영을 위해 다듬은 쇼트커트를 한 채 또 다른 낯섦을 향해 성큼 다가가는 중이었다. “<더 글로리>를 끝내 놓고는 왜인지 잠시 사랑 이야기로는 돌아가고 싶지가 않더라. <검은 수녀들>과 마침 연이 닿았고 구마 행위를 할 때 그동안 내게서 보지 못했던 표정과 몸짓이 스스로도 궁금해졌다.”

- <더 글로리>와 <검은 수녀들>에서 송혜교는 각각 복수와 구원의 아이콘이다. 공통점을 찾아보게 된다. 언뜻 차가운 외피를 뚫고 들어가면 내면에 맹목적일 정도로 간절한 불꽃을 지닌 일종의 투사들 아닌가.

두 인물이 묵직한 마음을 가졌다는 점이 비슷한 것 같다. 확실히 받아보는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가운데 여성배우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 늘어났음을 느낀다. 배우로서는 다양한 캐릭터를 제안받으니 반가움이 크다. 다만 그렇다고 장르적으로 새로운 캐릭터에 굳이 더 끌린다고 말하긴 어렵다. 대본을 읽을 때 처음 감정을 따라간다. 딱, 느낌이 오는 작품들이 있다.

- 유니아 수녀는 소명에 헌신하지만 겉으로 유난떨지 않고 대범한 베테랑이란 점에서 매력적이다.

표현을 많이 하기보다 자기 안에서 잘 처리하는 캐릭터고 조용한 해결사다. 답답하게 표현하면 약간 꿍하게 있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웃음) 잘 참고 자신 안에 안고 가자는 성격은 나와도 비슷하다. <더 글로리>의 동은도 마찬가지고. 어떤 면이 나와 닮아서 선택한 건 아니지만 분명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마음이 가지 않았을까.

- 유니아는 구마 의식을 행할 때 웬만한 신부들보다도 겁 없이 뛰어들어 우선 기세로 제압하는 스타일이다. 육체적으로는 어떤 작업이었나.

매 신이 힘들진 않았고 악령과 대치하는 신에서 몸을 쓰는 부분들이 어려웠다. 몸을 많이 써야 해서라기보다 액션, 기도, 그리고 부마자인 소년과의 교류를 동시에 소화해야 했다. 계속 몸싸움을 하면서 기도문을 외우고 감정선을 잘 잡는 게 가장 힘들었다. 중간에 끊기면 생생한 감정이 다시 올라오지 않을까봐 욕심 내서 한번에 가고 싶었던 장면들이다.

- 미카엘라(전여빈)가 과거의 트라우마가 중요하게 작동하는 캐릭터라면 유니아는 홀연하다. 캐릭터를 움직이는 논리나 전사를 두고 고민한 부분이 있는지.

악령 들린 부마자 소년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유니아를 보면서 처음엔 스스로 납득할 만한 지점을 찾아보려고 했다. 예를 들어 <검은 사제들>에선 박소담 배우가 연기한 영신이 김 신부의 제자라는 연결고리가 있지 않나. 유니아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이 아이를 왜 이렇게까지 살리려고 할까요?” 감독님에게 묻기도 했다.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종교인이 아닌 인간 송혜교의 관점에선 그런 용기가 쉽사리 상상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작품에 천천히 몰입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수녀로서 살아온 유니아의 희생정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살려야 할 사람을 살리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숭고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고.

- 스승과 제자 같다가 티격태격하는 동료 같고, 어느 순간엔 시나리오 속 묘사처럼 “자기 새끼의 첫 사냥을 지켜보는 어미”의 모습도 담긴 유니아와 미카엘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나.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밀어내는 과정 속에 있는 미카엘라를 보면서 유니아는 자기 과거를 돌아보기도 했을 테고, 조금씩 서로를 인정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고 봤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 중엔 좀더 냉정하게 보자면 일단 생명을 살려야 하니까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라는 걸 인정하려고 했다. 유니아에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엄격히 말해 스승과 제자도 아니다. 그런데 <검은 수녀들>이 다 끝나갈 즈음엔, 둘을 그렇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

- 과거엔 로맨스물에서 상대 남자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하게 언급되곤 했지만 <검은 수녀들>은 넓게 보아 시스터후드가 있는 영화다. 작품 밖에서는 전여빈 배우 외에도 수지, 강민경 등 여성 동료들, 특히 후배들과 돈독한 관계라는 점도 자주 회자되는 요즘이다. 이른 나이에 업계에 진입해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이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로 나아가고 싶나.

멜로드라마, 로맨스물을 너무 좋아하지만 그동안 부지런히 해왔으니 보다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싶다. 그전까지는 기회가 된다면 독특한 장르물, 아주 많은 수의 배우들이 호흡하는 작품의 일원이 되어보고도 싶다. 여성 인물들의 관계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좋겠다. 그 속에서 나는 초심자나 다름없을 것 같다. 이 직업 세계에 들어오기 전까진 어렸을 때부터 낯도 많이 가리고 되게 내성적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외향적으로, 나다움과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용감함이 생겼다. 어느새 누군가에겐 대장부 성격이라는 소리도 들을 정도로. (웃음) 다행인 건 현장에서 또래 친구들을 제법 만날 수 있었고 김혜수, 송윤아, 김희선 선배 등 훌륭한 언니들의 챙김도 받았다. 어쩌면 나도 거기서 배우고 지금 내 식대로 따라해보는 게 아닐까 싶다. 언니들의 좋은 모습을 닮아가고, 내가 받았던 좋은 영향을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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