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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과 400만
2002-06-19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가 판가름나는 포르투갈과의 경기가 시작될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저 심재명인데요…. 어려운 부탁 하나…(어쩌구저쩌구).” 이번주 칼럼은 심재명 대표가 써야 할 차례인데, “을 촬영하고 있는 지방에 와 있어서 뭘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어떻게든 수습해보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내가 대신 쓰는 것말고 다른 해결 방법이 없었다. 부득이 2주 연속 출연하게 된 사연이다.

그건 그렇고, 옆에 있던 누군가가 프로듀서는 그놈의 촬영 때문에 이런 큰 경기도 못 보는 거냐고 의아해하기에, “심재명 대표는 베켄바워와 차범근이 은퇴한 이후로 축구에 관심을 끊었다고 <씨네21>에 났더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우리 회사가 있는 여의도 일대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사무실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63빌딩에서 LG트윈타워에 이르는 길에는 붉은 티셔츠에 태극기를 칭칭 휘감은 젊은이들과 자동차가 뒤엉켜 파도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 “대∼한민국” 구호와 “짜아악짝 짝짝” 박수소리에 호응하는 “빠밤빠 빰빰” 자동차 클랙슨 소리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축구경기에 이어 터무니없이 길었던 TV뉴스에 따르면 오늘 하루 전국적으로 장외 응원에 나선 사람이 200만명이라고 했다. 헬기로 찍은 응원 장면을 보며 200만명이라는 인파의 규모에 놀랄 뿐이었다. 1987년 6·10항쟁은 물론이고 내가 봤던 어떤 장외 집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지난 두 경기 때도 만만치 않았지만 포르투갈전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단순히 사람 수가 아니라 결집도를 따진다면 ‘3·1운동 이래 처음 있는 사건’이라는 누군가의 비유가 그럴 듯하게 들렸다. 전국 거리 곳곳의 그 많은 사람들을 비춰주던 TV에서 진행자가 “전국적으로 200만명이 장외 응원을 벌였고…” 하는 이야기를 듣곤, 혼잣말로 “저 많은 사람들이 겨우 200만명이라면, 400만명이면 어느 정도야”라고 했다. 불쑥 400만명이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진 것은 ‘<집으로…>의 관객 수 400만명’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이 정도가 200만명밖에 안 되는데, 돈내고 시간내서 제 발로 극장에 찾아가 영화를 본 사람이 400만명이라면…. 시쳇말로 ‘허걱’ 소리가 절로 나온다. 상업적 전략에 입각한 엄청난 미디어 공세에 사실상 국책사업인 양 정부가 변죽을 울렸던 월드컵경기에 물려든 인원보다, 영화 한편이 끌어당긴 인원이 더 많다는 게 선뜻 실감이 나지 않는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이 ‘초대박’ 흥행을 하면서 언젠가부터 관객 수 몇백만명을 쉽게 이야기하게 되었지만, 사실 따지고보면 몇백만명씩 본 영화는 말 그대로 가뭄에 난 콩처럼 드문 일이다. 수년 전 <투캅스>가, <서편제>가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떠들썩했던 시절, 관객 수 100만명은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신의 경지라느니, 전무후무한 기록이라니 했던 체감 수치가 훨씬 현실적이었던 셈이다. 그러고보면 영화 만드는 일이, 그것도 몇백만명이 보는 영화를 만든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몇백만명씩 동원한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갖게 됐다는 것과, 축구경기 장외 응원 인원보다 더 많은 관객이 보는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게 한국 축구가 포르투갈을 이긴 데 대한 썩 어울리지 않는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