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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열 개의 우물> 김미례 감독
김소미 사진 백종헌 2024-11-08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김미례 감독이 1970~80년대 노동, 빈민, 탁아운동을 하던 지역 여성 활동가들의 삶에 진입했다. <열 개의 우물>은 인천 만석동과 십정동을 중심으로 빈곤과 파업 속에서 서로를 지켰던 여성들의 기억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다. 의미의 강박을 내려놓은 자리에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와 감정의 조각들을 새겨넣은 이 작품을 통과하고 나면, 짐짓 무상한 수다체로 회고된 기억들이 저마다 진동하는 듯한 오랜 여진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때, 그곳에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여성들로부터 김미례 감독은 “자기 삶의 터전에서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 사회의 토대를 지탱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읽는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호기로운 구호가 아니라, 나뭇잎이 조용히 흔들리는 풍경의 일부처럼 유유히 스민다.

- 운동가로서의 대의보다는 개인의 삶, 그 안에서 의미화되기 어려운 감정과 경험이 수수한 대화들 속에 수렴되어 있다. <열 개의 우물>을 제작할 때 대상 인물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했나.

과거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의식을 쌓아갔다면 어느 순간 내 삶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변혁을 꿈꾼 시기도 있었지만 세상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 어쩌면 나이가 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 이유다.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때로 사회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는데 그 속의 개별적 삶에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과 함께 내 삶을 한번 되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1970~80년대에 열렬히 운동해온 사람들이 지나온 자기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운동의 토대 안에서 지금의 삶이 꾸려졌을 텐데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돌아다니면서 쓸쓸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다만 중요한 건, 과거의 사건을 계기로 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해낸 사람들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높고 단단한 자존감을 확인했다. 그걸 기반으로 살아가는 힘을 계속해서 얻는다는 것도.

- 김현숙, 안순애, 홍미영, 유효순 등, 서로가 서로를 소개하면서 진술이 이어지는 과정이 그대로 담긴다. 개별 인터뷰이들을 취재한 결과물만을 조합하지 않고, 연결의 궤적 자체에 주목한 까닭이 있다면.

<외박>(2009, 대형마트 여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차별에 맞서 펼친 510일간의 매장 점거 파업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편집자) 때도 느낀 건데 여성들의 관계는 대단히 수평적이고, 서로를 잇는 힘이 강하다. <열 개의 우물> 취재를 결심하고 처음 김현숙씨를 만났을 때 십정동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좀 들려달라고 하니까 “내 얘기가 뭐 중요해,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 소개해줄게” 하고서 충북 음성으로 옮긴 안순애씨를 연결해줬고 안순애씨는 또 “나같은 사람한테 들을 얘기가 뭐 있다고 먼길을 와” 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길 들려주고는 “정말 아끼는 후배들이 있는데 걔네들을 찍어야 한다”고 진천에 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소개해줬다. <외박>도 <열 개의 우물>도 조직화된 운동의 모습을 분명 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더욱 주목하고 싶은 면모는 그들을 움직이는 힘이 반드시 대의만은 아니라는 것. 더 솔직하게는 ‘내 옆의 비정규직 친구가 무고하게 잘리는데, 힘들어하는 그 애와 같이 있어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다. ‘혼자 나가면 힘들 테니 같이 나가주자’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안에 어떤 활력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열 개의 우물>도 그런 힘 속에서 만들어졌다.

- 카메라 앞에서 혼자 답하던 각각의 인물들이 그들끼리 모여 대화하고 시시콜콜한 수다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진심이 있다고 해야 할까.

한명 한명씩 연결하다보니 이럴 거면 그냥 한번 모이자 식이 된 거지. (웃음) 그분들도 결국은 나를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가 뭐라도 더 얘기해주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멀찍이 빠져서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보통 초반에는 이 작품을 위해서, 혹은 이 주제를 위해서 꼭 필요할 것 같은 이야기가 지나간다. 그 안에도 물론 진실된 것들이 있지만 나는 좀더 기다려보기를 택한다. 그러다보면 카메라 안팎의 모두가 정말로 편안해지는 순간이 온다. 이건 일대일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처음에 정색하고 하는 이야기보다는 촬영이 다 끝날 때쯤 주고받는 시시한 한두 마디에서 진짜 관계가 시작될 때가 있다. 어떤 면에서는 여성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과 맞물린 부분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말, 혹은 수다의 형태 속에서 정말 중요한 일상의 문제들,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말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 <열 개의 우물>이라는 타이틀이 영화가 시작되고 45분 무렵에 떠오른다. 늦게 배치한 이유가 있다면.

맨앞에 두려고 하니까 우물에 얽힌 의미가 선입견처럼 작용할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와서 이리저리 서로를 연결해가고 수다를 떠는 와중에 타이틀이 뜨면, 마치 서로 손잡고 있는 것 같은 타이포그래피의 이미지가 훨씬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까 싶었다. 우물의 역사에 집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을 통해 서로 연결을 이뤄가는 이야기라는 점이 감각의 차원에서도 받아들여졌으면 했다.

- 처음 <열 개의 우물> 카메라를 켠 날을 기억하나.

누구한테 처음 정식으로 카메라를 댔을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아마도 안순애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물론 첫 만남부터 카메라를 설치한 것은 아니고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만남에서 모종 심는다고 오라고 해서 갔다가, 밭일하고 나와서 쭉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그때 처음 아주 중요한 말들을 꺼내시는 거다. “그러니까 이 사회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말이야… 철저하게 계급사회야. 나같은 사람들은 평생 이렇게 살고, 그때 당시에 인천에서 노동 해방이니 어쩌니 하면서 왔던 학생운동하던 인간들은 지금 다 지 살길 찾아서 잘 살잖아.”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 카메라를 처음 켰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영화에는 쓰지 않았지만 그걸 기반으로 안순애씨의 이야기를 따라가보자고 방향을 잡았다.

-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열 개의 우물> 등 여러 사람의 여정을 좇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김미례라는 연출자가 꾸리는 실질적인 행장의 면면, 취재부터 편집에 이르는 작업 프로세스의 세부도 궁금하다.

백팩 안에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딱 꾸려진 여행 도구, 배터리와 테이프를 비롯한 카메라 장비가 항상 들어 있다. 그렇게 배낭 하나, 커다란 카메라 가방 하나, 등산화를 싣고 다닌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할 때는 특히 늘 이렇게 기동성을 중시한 행장을 꾸렸다. 보통 촬영을 하기 전에 최소 6개월 정도 제작 PD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기간이 있다. 나 스스로 상대를 어느 정도 이해할 때까지 그들의 말을 청취하면서 녹음하고 녹취를 풀어서 습득하는 시기를 거친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러 또 한번 다녀오기도 하고. 그렇게 관계 맺는 시간을 쌓다보면 어느 순간 이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도 좋겠다 싶은 때가 온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가 먼저 부르기도 한다. <열 개의 우물>을 찍을 때는 어디를 가나 인물들이 자연 풍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박홍열 촬영감독이 그 지점을 훌륭하게 이미지화해주었다.

- 1970년대 유신 정권을 통과하는 당시의 노동운동 현장이라든가, 동일방직 파업사태의 풍경 등 아카이브 푸티지들을 다룰 때 신경 쓴 부분은.

일단 1970~80년대 달동네의 가난, 빈곤을 목격하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에도 최소한의 역사적 정보는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팩트이자 역사로서. 또 하나는 이 운동에 결부된 이들의 계층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필요하겠다고 봤다. 같은 운동 현장에 공장 노동자도 있고 정치권 활동가도 있고, 또 어젯밤 나이트클럽에서 열심히 놀다온 사람도 있다. 그 사회적 맥락을 다 보여주자니 <열 개의 우물>의 큰 방향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았고,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스케치로서 접근했다.

- 빈곤과 파업의 역사를 관통했던 여성 개인들이 지금 중요하게 회고하는 감정 중에는 놀랍게도 행복의 자리도 크다.

늘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안순애 선생조차 “그 시절이 뭐가 좋아” 하면서도 그 시절 이야기만 한다. 유효순 선생도 민들레 공부방에서 4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책임지면서 엄마들하고 같이 나누고 도모하며 살아온 세월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감은 과거를 미화하고 얻어낸 감성 같은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든 가운데도 서로 나누며 살 수 있었다는 진실에 대한 기억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 돌봄과 연결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대의 의제에 대한 대답으로서도 <열 개의 우물>이 시의적절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지금 잃고 있거나 아니면 다시 주목해야 하는 것들을 돌아볼 수 있다면 나로서도 기쁨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이들처럼 살아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 당시에는 생존을 위해 당연했고 그것이 의미적으로 중요한 줄도 몰랐을 것이다. 밥 있으면 나눠 먹고, 생계로 힘들어 애 봐줄 사람이 없을 때 우리 애 봐달라고 하고 나갈 수 있었던 때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런 이웃, 그런 마을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서로를 소중히 바라보는 마음, 따뜻함의 영역이다.

- 싱어송라이터 회기동 단편선이 참여했는데.

박홍열 촬영감독이 성미산 이웃을 연결해줬다. 처음 가편본을 보내고 나서 만나기도 전에 노래 한곡이 먼저 도착했다. 본인이 음악 작업을 하든 안 하든 <열 개의 우물> 속 여성들을 위해 선물로 전하고 싶다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어떻게 이 정도로 정서가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싶은 곡이었다. 예산과 컨셉에 맞춰 혼자서 작곡, 노래, 기타 연주까지 하면서 음악을 완성해주었다. 음악에까지 이웃의 손길이 닿은 영화인 셈이다.

- 자체 배급과 홍보, 마케팅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화진흥위원회 개봉지원사업에선 모두 떨어졌다.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것 자체에 우선 의미를 두고 있다. 산업의 현실이란 게 돈을 들인 만큼 영화가 알려지고 극장에도 그만큼 온다라는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 영화 역시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연결들로, 큰돈 들이지 않고, 작지만 꾸준히 오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커뮤니티 시네마, 그리고 작은 영화관을 통해 끊임없이 조금씩 연결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을 준비하면서 한정된 예산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고민을 깊게 했다. 박홍열 촬영감독과 의논한 것은 담론을 만드는 데 집중하자는 거였다. 소책자를 만든 이유도 그래서다. 우리가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더 많이, 더 자세히 공유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기자, 평론가, 연구자들의 비평을 싣고 출연자들의 글도 실었다. 안순애 선생은 직접 손글씨로 긴 글을 써서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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