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시나리오>는 정서경 작가가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에서 쓴 졸업 작품을 수록한 책이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등에서 시나리오 쓰기 워크숍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결국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첫 시나리오’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던 예술학교 학생 정서경이 찾아낸 솔직한 내면에서 출발한 <불쌍한 우리 아기> <대전 일기>는 이후 작가가 만든 캐릭터와 이야기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현재 촬영 중인 디즈니+ 시리즈 <북극성>(출연 강동원, 전지현) 대본 막바지 작업 중인 정서경 작가를 만나 작법서가 알려주지 않는 세계에 대해 들었다.
- 책의 서문에서 학생들에게 시나리오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썼던 첫 번째 시나리오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내가 예술학교를 다닐 때 시나리오과 학생이 5명뿐이라 선생님과 일대일로 수업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단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학생들의 작품을 받고 읽으면서 놀랍게도 그들의 고민은 모두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내가 했던 고민과 내 친구들이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했던 고민과도 같았다. 갓난아기가 뒤집기에 성공하고, 앉고, 잡고 서고, 걷는 발달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시나리오 또한 마찬가지다.
시나리오 쓰기에 따르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첫 번째 시나리오’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래서 내가 썼던 첫 시나리오를 다시 꺼내서 읽어봤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솔직한 시나리오를 썼을까 생각했다. 당시엔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시나리오였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시나리오로 할 수 있는 나에 대한 가장 솔직한 그림을 그린 거였다. 영화화를 목적으로 한 글이 아니다 보니 시나리오와 작가가 맺을 수 있는 관계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글이 나왔다.
- 시나리오를 계속 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첫 시나리오’는 어떤 의미를 갖나.
= 요즘 학생들은 방송작가교육원 같은 곳에서 공모전 당선을 목표로 시나리오를 배우거나 다른 사람들, 제작사에서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 지를 첫 번째 질문으로 놓고 글을 시작할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자신에게 이야기가 왜 필요한지 질문을 따라가야 인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한달 전에 봤던 영화 속 인물과 비슷한 캐릭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쓴 시나리오는 20년 후에 읽어도 당시 작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인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시나리오와 고유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남들이 원치 않을 때도 시나리오를 써서 준비했다가 세상이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평생 딱 한번 있는 기회다. 이를 찾아낸 사람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할 때도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가 어느 비율로 들어가야 하는지 균형점을 찾게 된다.
- 25년 전 시나리오를 가르친 예술학교 선생님과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불쌍한 우리 아기> <대전 일기>에 전한 감상은 어땠나
= 내가 미국을 갔다온 후 갑자기 공부를 너무 잘하게 됐다. 학점이 4.3 정도였는데 1994년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그렇게 높은 학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시나리오 ‘포텐’도 터졌다. (웃음) 우리는 공모전이 아니라 시나리오 쓰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글을 쓰던 학생들이었다. <불쌍한 우리 아기> <대전 일기>는 공모전에서 당선되지 않을 것 같은 시나리오, 자신을 위해 쓴 것 같은 시나리오라서 환영받았다. 선생님은 “드디어 네가 길을 뚫었구나”라고 했다.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을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아하셨다.
- 책의 서문에 등장하는 예술학교 선생님은 아름다움은 ‘진실함’이라고 했다고. ‘진실함’은 실제 사건을 그대로 옮기는 것과는 좀 다른 듯하다. 가령 정서경 작가의 작품은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세계를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불쌍한 우리 아기> <대전 일기>에도 판타지 요소가 녹아 있다.
= 예술학교를 다닐 당시 학생들은 남녀가 술을 마시고 한방에 있을 때 벌어지는 일, 그런 장면을 통해 진실함을 찾고 자기가 누군지 보여주는 작업을 많이 했다. <불쌍한 우리 아기>에도 그 흔적이 있다. 여자의 임신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웃음) 나는 개인적 체험을 직접 쓰는 작가는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진실함의 단서들이 작품에 있었다. <박쥐> 같은 뱀파이어 이야기를 쓸 때는 ‘나는 왜 뱀파이어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뱀파이어처럼 피를 빨고 빨리면서 살아간다. ‘사이보그’가 주인공이라고 설정해야 비로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스토커>의 인디아가 사람들을 살해하는 것처럼 실제 사춘기 소녀들의 마음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웃음) 어떤 이야기든 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다시 쓰여질 수 있고 그게 아니면 생명력 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 최근 몇년 동안 본 작품 중에 작가 입장에서 보기에 ‘쓰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보였던’ 각본은 무엇이었나.
=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 캐릭터며 구성이며 그 이상한 결말이며 모든 게 작가가 누군지 알게 하는 작품이었다. (웃음)
- 여성의 돌봄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아가씨>는 정서경 작가가 실제 삶에서 어머니가 된 후 생긴 변화가 녹아든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쌍한 우리 아기>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었다. <대전 일기>에서도 아이들의 보호자로서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 어둡고 쭈끌쭈끌한 피부를 가진 아기를 안고 있는 꿈을 꿨다. 임신을 하면서 시나리오가 시작되면 다음 신은 어떻게 만들지? 예술학교 학생이 가진 창작 욕구는 다른 사람이 되고픈 강렬한 느낌으로 많이 드러난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신체적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고 간주했던 것 같다. 인간의 발달단계로 바라보자면 엄마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내가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가 된 <변신>처럼 <불쌍한 우리 아기>는 임신을 하며 시작하는 거다. 은희가 회사에서 겪은 일들은 내가 당시 돈을 직접 벌어야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것들, 사회에서 나의 위치라 생각되는 바를 담았다. 실제 이모가 대전에 살고 딸 둘에 아들 하나가 있다. 방학 때 대전에 갔는데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웃음) 만약 이런 사건이 벌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대전 일기>를 썼다.
- 박찬욱 감독도 <불쌍한 우리 아기>와 <대전 일기>를 읽었나.
= 박찬욱 감독이 내가 한예종 졸업을 위해 연출한 단편영화 <전기공들>을 보고 영화진흥위원회에 문의해서 작품을 다 찾아봤다고 하더라. 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두편 다 좋았다고 말씀해주셨다. 감독님은 원래 말이 안되는 부조리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런 작품을 써도 명감독과 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한 거지. 꼭 공모전에 붙지 않아도 된다. (웃음)
- <불쌍한 우리 아기> <대전 일기>를 쓰던 시절, <친절한 금자씨>부터 <헤어질 결심>까지 박찬욱 감독과 함께 협업하던 시절, 그리고 <작은 아씨들> <북극성>을 쓴 최근에 이르기까지 정서경 작가의 경력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 예술학교에 다닐 때는 내가 이야기를 끝까지 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친절한 금자씨>를 쓸 때도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님도 알지 못했거나, 알더라도 완전히 버리기로 결심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웃음) <불쌍한 우리 아기>를 쓸 때처럼 우리는 <친절한 금자씨>의 매 신을 쓰면서 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알아나갔다. 작법서를 참고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해나갔다. <아가씨>를 쓸 때가 되어서야 대중이 이해 가능한 이야기 방식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이야기를 원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어떤 구조로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지 알게 됐다. 더이상 시나리오를 쓰지 못할 것 같아 고민하지 않게 된 것이다. 드라마를 쓰기 시작할 때는 박찬욱 감독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웃음) 감독님이 앞으로 읽어볼 일이 없고 어쩌면 보지도 않을 것 같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 <친절한 금자씨>를 한신 한신 쓰면서 배운 것처럼 <마더> <작은 아씨들> <북극성> 모두 한부 한부 쓰면서 배워나가고 있다. 16부작을 쓰다가 12부작을, 또 9부작이 될지 10부작이 될지 알 수 없는 본격 장르물을 쓰면서 또 다른 작법을 배워나간다.
- 최근 <씨네21>과 자문단이 선정한 차세대 영화인 50명을 호명하는 특집에서 고민 끝에 ‘작가’는 제외됐다. 차세대 시나리오작가를 5명 이상 호명할 수 없는 것 자체가 현 한국영화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 지금 충무로에 시나리오작가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가르치는 곳도 없다. 시나리오 교육은 한 인간이 인격과 삶을 위해 연마하기에 너무 좋은 기술이다. 이야기는 문법과 같아서 수많은 이야기를 접하며 문법을 익히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때 문법 수용체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어내고픈 욕망과 기술이 있다. 다만 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줄 장소와 시간이 부족하다.
- 이는 분명히 한국영화의 위기와도 연결된다.= 예전에 세대 불평등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영화계의 현실을 많이 떠올렸다.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 르네상스라고 하는 시기에서 시작된 그늘이 있는 걸까. 한국영화계에서 예산이 높은 영화는 모두 60년대생 감독들이 연출한다. 그 아래 세대에는 자기 목소리를 낸 영화를 만들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다. 그렇게 70년대생은 하나의 세대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60년대생 연출부와 조감독을 하기에는 동떨어져 있는, 80~90년대생으로부터 어쩌면 한국영화가 새로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학교에 가보면 70%가 여학생, <북극성> 현장에 가봐도 촬영, 조명부 스태프 절반이 여자다. 이들 세대는 예전과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