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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 영화를 글로 배웠습니다
송경원 2024-04-19

결국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이번주 언론시사가 열린 <범죄도시4> <챌린저스> <여행자의 필요>를 한편도 보지 못했다. 영화기자의 고난이 보기 싫은 영화도 굳이 확인해야 하는 거였다면 편집장의 업보는 거의 모든 시사에 참석하기 어려운 일정에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예전에는 기사 작성이란 공식적인 핑계가 있었지만 회의 지옥에 파묻힌 요즘,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언론시사는 아무래도 업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개봉 후 늦더라도 놓치지 않고 챙겨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기를 재운 뒤 (정당한 명분과 함께) 심야극장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최근 허락된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문제는 데스킹을 하면서 아직 못 본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분석까지 글로 먼저 접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영화를 글로 읽는 중이다.

본질적으로 영화는 글로 옮겨질 수 없다고 믿는다. 어떤 명문장을 동원해도, 설사 논문 한권 분량의 문자를 동원한다 해도 영화 속 한 장면조차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영화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와 글은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행위다. 영화보다 훨씬 아름답고 깊이 있는, 영화를 넘어서는 글은 가능해도 영화와 완전히 일치하는 글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영화 글쓰기는 자신의 원천인 영화에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한없이 가까워지고자 하지만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영화도, 영화 글쓰기도 독자적인 매혹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오히려 불일치야말로 창작의 심장이다. 만약 영화와 글이 완전히 일치할 수 있다면 모방에 불과할 것이다. 예정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한없이 다가가려는, 그 욕망과 에너지가 의미와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한다. 요컨대 글로 보는 영화가 훨씬 풍성하고 재미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반드시 영화를 보고 그에 따른 글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영화 글쓰기로 밥벌이하면서도 ‘영화 글은 결국 영화의 부속물’이란 무의식을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 요즘은 강제로 글을 먼저 읽다 보니 또 다른 즐거움을 새삼 마주하는 중이다. 10년 넘게 영화에 대한 글을 써왔지만 요즘처럼 영화 글 읽기의 즐거움을 실감한 적이 없다. 영화보다 글을 먼저 읽고 나니 흐릿했던 통념의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먼저 알고 나니 전엔 몰랐던 흥미로운 샛길도 보인다.

이번호에 실린 홍상수 감독의 신작 <여행자의 필요>를 다룬 기획은 홍상수를 몰랐던 이들에게 좋은 안내 지도가 될 것이다.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겐 네발자전거처럼 유용한 보조장치 역할을 해줄 거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영화와 무관하게 온전히 이 글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생경함,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영화로 세상을 배웠다고 해서 그게 가짜일 리 없다. 같은 맥락에서 때론 글로 먼저 영화를 접하는 게 풍성한 논의의 장을 열어줄 씨앗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주엔 글로 유튜브를 배우는 중이다. 유튜브는 얄팍하리란 편견에 휘뚜루마뚜루 감상해왔는데 의외로 깊고 흥미진진하다. 역시, 읽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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