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헤어스타일을 한 노재원 배우가 스튜디오를 찾았다. 차기작 때문에 머리를 길렀다는 그는 <오징어 게임> 시즌2에 캐스팅되는 등 현재 주목받는 배우 중 하나다.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환자 서완으로, <D. P.> 시즌2의 수사관 최현도로 존재감을 드러낸 뒤 <세기말의 사랑>과 함께 2024년의 문을 열었다. 노재원이 연기한 도영은 회삿돈을 횡령하는 정직 테크의 사원이다. 그를 짝사랑하던 영미(이유영)가 몰래 횡령금을 메워주는데, 횡령 사유가 아내 유진(임선우)을 위해서였다는 게 뒤늦게 밝혀진다.

연출을 맡은 임선애 감독과의 인연은 서울독립영화제2021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1위를 수상했을 무렵 시작됐다. “윤단비 감독님의 소개로 연락이 닿았다. 내가 출연한 단편들을 좋게 보셨고 작업 중인 시나리오를 나중에 보내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에 정말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다.” 그렇게 만난 <세기말의 사랑> 속 도영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인물”이었다. “나를 너무 좋게 봐주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신의 삶에서 유진을 최우선으로 두는 이타적인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공금횡령이란 방법을 택한 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관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는데 ‘도영이는 그만큼 조건 없는 사랑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라. ‘네가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떠올려봐.’ 그때 감이 왔다.” 자신을 사랑하는 두 여자, 영미와 유진 사이에 있는 도영의 심정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영미를 대하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횡령 사실을 알면서도 왜 말을 하지 않는지 궁금하고 두려우니까. 그럼에도 나름 살가움을 표시하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네곤 한다. 영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모를 것 같아서 그 사실을 최대한 배제하고 연기했다.” 반대로 유진에 대한 도영의 마음은 수시로 상기했다. “영미와 있을 때에도 유진을 떠올리며 ‘대관람차를 같이 타볼 걸 그랬나봐요’라고 말하지 않나. 그만큼 유진에 대한 도영의 사랑은 남다르다. 이 작품이 나의 첫 로맨스물이나 다름없어서 도영이 유진에게 껌을 직접 먹여주는 순간 등을 찍을 때 색다른 설렘으로 다가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기말의 사랑>을 보며 노재원은 “나에게 저런 얼굴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걸 감내하는 도영을 표현하기엔 내가 너무 얕다고 느꼈는데 그걸 해낸 뒤로는 내게도 도영과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배우로서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나를 애정하는 창작자가 있다는 것만큼 배우로서 행복한 일이 없더라.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자마자 감독님에게 ‘다음 작품도 꼭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엄청 좋아하시더라. (웃음) 그땐 더 나를 쏟아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