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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 직진하는 영화는 나를 닮았다, ‘시민덕희’ 박영주 감독
이유채 2024-01-25

- <시민덕희>를 보자마자 영화가 “추진력 좋은” 주인공 덕희(라미란)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덕희는 영화 시작 5분 만에 보이스 피싱을 당한다.

= 내가 워낙 경주마 같은 스타일이기도 하고 본론부터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웃음) 전사나 플래시백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평범한 시민이 보이스 피싱 총책을 잡는 과정, 덕희가 움직이는 동선 자체에서 큰 에너지가 나올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퀀스가 바뀔 때마다 영화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길 바라면서 편집에 특히 신경 썼다.

- 귀에 콕 박히는 직설적인 대사들도 인상적이었다.

=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란 생각이 들 때 대사 하나가 모든 걸 해결해줄 때가 있다. “세상에 더러운 돈, 깨끗한 돈이 어디 있어?” “남는 장사 했잖아” 같은 총책(이무생)의 대사들을 쓰고 나서야 이 사람이 정말 돈밖에 모르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한국에서의 덕희의 추적과 중국 칭다오에서 보이스 피싱 조직에 붙잡힌 재민(공명)의 탈출기가 교차편집으로 전개된다.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전자일 거라는 걱정은 없었는지.

= 일상적인 한국과 이질적인 칭다오의 룩 차이가 확실히 보는 재미를 줄 것 같았고 서로 다른 톤을 가진 이야기들이 각각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 의미로 교차편집 구성은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확신이 있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어려운 일이더라. 예컨대 초반에 중국 칭다오 시퀀스를 언제 처음 등장시킬 것인지부터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매번 “조금만 더, 아니, 조금 더 뒤에!”를 외치며, 관객을 새롭게 집중시키고 이야기를 환기해줄 수 있는 적당한 타이밍을 찾는 게 일이었다.

- 잘 알려졌듯 2016년 김성자씨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 시나리오 집필 당시 무엇을 살리고 어떤 상상력을 가미했나.

=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이 우리가 시민 영웅이라고 부르는 분들의 멋있는 점이지 않나. 그 부분을 김성자씨가 가지고 있어 그분의 사연이 마음에 들었고 위안이 됐다. 보이스 피싱을 당한 중년 여성이 보이스 피싱 조직의 제보를 받고 경찰이 총책을 잡는 데 기여한다는 건 실화다. 쉽게 저버릴 수 없고, 충분히 누군가의 전 재산이 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해서 피해액은 3200만원 그대로 갔다. 봉림과 숙자와 같은 주변 캐릭터, 어린 자식과의 관계,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설정, 그 밖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새로 다 만들었다. 실화대로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상황도 구상해봤는데 피해자가 자존감을 회복해나간다는 이야기의 힘이 다소 떨어지더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성격의 덕희라면 중국으로 가는 게 무리가 아닐 거라 여기면서 영화적 재미가 분명하고 임팩트 있는 해외 에피소드를 풀어보고자 했다.

- 덕희가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짧은 시퀀스는 어떻게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 <시민덕희>를 준비하며 봤던 책에서 이 문장을 잊을 수 없다. ‘보이스 피싱 범죄가 악질인 이유는 단순히 돈을 뺏기 때문이 아니라 절실한 사람들에게 절망을 주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 피해자들이 “그러게, 어쩌다 당했어” 하는 주변의 눈초리에 얼마나 자신을 자책하고 힘들어하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흔한지를 짧게라도 보여줌으로써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었다.

- 이메일 제목일 뿐이긴 하지만, 덕희가 안일하게 대응했던 박 형사(박병은)에게서 ‘미안합니다’라는 사과를 받아낸다. 경찰에게서 그 말을 듣고 싶어 할 많은 피해자를 생각하면 간단히 넘길 수 없는 신이다.

= 그렇게라도 경찰이 미안하다고 말해주길 원했다. 박 형사는 내가 바라는 경찰을 담은 캐릭터였다.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면 인정하고, 제대로 도와주고 좋은 쪽으로 바뀌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어른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 있는데 미안할 땐 미안하다고, 고마울 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인 것 같더라. 나중에 박 형사는 덕희에게 고맙다는 말도 한다.

- 희망 스코어로 천만 관객을 얘기하고 있다고. 그만큼 폭력 수위를 조금 낮춰 12세이상관람가로 가고 싶다는 고민도 했을 것 같은데.

= 전혀. 폭력 수위가 높다는 얘기에 놀란 쪽이다. 이 정도면 꽤 약한 편 아닌가. (웃음) 원래는 욕도 더 많았다. 보이스 피싱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정말 무섭고 위협적인 범죄라는 걸 눈에 딱 보이게끔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최소한 지금 정도의 폭력 신이 들어가야 했다.

- 2013년 <소녀 배달부>를 시작으로 단편 작업을 주로 하다가 2019년에 첫 장편작 <선희와 슬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시민덕희>라는 첫 상업 장편을 연출했다. <시민덕희> 현장으로 출퇴근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 행복하다. 상업영화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를 잡은 거니까. 베테랑 스탭들과 영화 하나를 두고 다 같이 고민하고, 나라는 사람은 생각하지 못할 아이디어들이 모여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걸 느낄 때, 영화란 이렇게 같이 만들어나가는 거라는 걸 실감했다.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나도 그런 작품을 빨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막 뛴다. 그런 이야기 중 하나가 인생 영화인 <빌리 엘리어트>이고. 요즘 내 안에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야기를 뮤지컬 가족 드라마로 풀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트리트먼트까지 썼다. 갈 길이 멀지만 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으니 조만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박영주 감독이 뽑은 <시민덕희>의 명대사

“쉬면 뭐 해, 일해야지.”

총책을 검거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덕희가 하는 말이다. 관객이 많이들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엄청난 일을 겪은 뒤에도 덕희는 변함없이 꿋꿋하고 용감하게 살아갈 텐데 그런 그의 미래를 한번에 설명할 수 있는 대사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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