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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작들의 장점만 가져왔다, <파묘> 장재현 감독
이우빈 사진 오계옥 2024-01-12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한국 오컬트 영화의 신기원을 적립했던 장재현 감독이 풍수지리와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한 <파묘>로 돌아온다. 여러 종교적 색채를 뒤섞으며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적용해온 장재현 감독 고유의 인장이 다시금 두드러진다.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당인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기묘한 묘를 파헤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늘 그래왔듯 장재현 감독은 1년 동안 실제 장의사와 함께 일하며 파묘와 이장에 몸담는 등 철저한 사전 조사와 고증을 거쳤다.

- <파묘>의 기획은 어디에서 시작됐나.

= 어렸을 때 살던 시골 동네에서 100년 넘은 무덤을 이장하는 걸 본 적 있다. 묘를 팔 때 나오는 흙의 색깔과 냄새, 작업하기 전에 제사를 지내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이장하는 이유도 몰랐지만,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무서우면서 궁금하고 심장이 콩닥거렸다. 그 이후부터 관에 대한 페티시가 생겼다. (웃음) 장의사를 하던 친구 집에 가서 관에 누워 있던 적도 있다. 그런 경험과 취향에서 <파묘>를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자료 수집을 한 뒤에 이야기를 만들었다.

- 자료 조사는 어떻게 진행했나.

= 1년 동안 장의사, 풍수사, 무속인들과 함께 일하여 이장 작업을 하고 다녔다. 장의사는 내 인력을 공짜로 쓸 수 있으니 좋고 나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장례지도사 자격증도 거의 땄다. 실습만 몇 시간 더 채우면 수료하는데 영화 찍느라고 아직 못했다.

- 직접 묘를 파본 소감은.

= 어느 날은 새벽에 갑자기 진안까지 가서 무덤을 판 적이 있다. 옆에 공장을 짓는데 수로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묫자리로 물이 들어오는 탓이었다. 급하게 관을 꺼내고 열어서 깨끗하게 태우는 일련의 과정에서 무언가를 완전히 없앤다는, 숨겨져 있던 과거를 들춘다는 것에서 정말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발에 오래된 티눈이 있는데 ‘파내야지, 파내야지’ 생각만 하다가 정말 곪아 터져서 파내는 듯 무언가를 치유한다는 느낌이었고 이런 감각을 영화에 담으려 했다.

- 주인공 상덕은 풍수사다. 풍수사에 대한 조사는 어땠나.

= 풍수지리를 보통 미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지질학, 민속지학, 미생물학을 기반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작업이다. 집을 짓는 걸 양택, 사람이 묻히는 걸 은택이라고 해서 풍수사마다 전문 분야도 다르고 커다란 학회도 조직돼 있다. 학회 내에서도 토지, 산, 도심 개발 등 학파가 다양하다.

- 상덕 역시 <검은 사제들>의 김 신부(김윤석), <사바하>의 박 목사(이정재) 같은 전문가 캐릭터로 등장한다.

= 내가 좀 게을러서 그런가 보다. (웃음) 주인공이 전문가면 여타 설명 없이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있으니 효율적이다. <파묘>를 호러영화로 찍진 않았지만, 호러의 색채를 갖곤 있다. 보통 호러영화에선 귀신들에게 당하는 피해자가 자주 등장해야 하는데 난 예전부터 그런 방식이 재미없더라. 영환 도사가 나오는 <강시선생> 시리즈나 <반 헬싱> 같은 작품을 더 좋아했다. 귀신 입장에선 가해자들인 캐릭터들이 나와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영근이 상덕 옆에서 코미디의 밸런스를 잡아주는지 궁금하다.

= 최근 영화를 보면 그런 식의 티키타카에 일종의 강박이 있는 것 같은데, <파묘>엔 특별한 서사적 목적 없이 재미로만 소비하는 대사를 넣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직업적 특징을 배우고 서로의 성향을 살리는 대사 외에 최대한 절제했다.

- 무당인 화림, 봉길은 상덕, 영근과 어떤 관계인가.

= 맡은 분야가 아예 다르다 보니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배우는 구도는 아니고 종종 대립하면서 협업하는 모양새에 가깝다. 각자의 분야에서 사건을 진행하며 거의 반반 정도의 분량을 교차하게 된다. <검은 사제들>이 캐릭터 위주로 가느라 서사가 다소 빈약했고 <사바하>는 서사가 너무 무거워서 캐릭터들이 손해 보는 느낌이 있었다. 이번엔 그 중간의 균형을 딱 잡아서 전작들의 장점만 가져 오려 했다. <사바하>의 헤롯왕 이야기, 사천왕 이야기 같은 다소 어려운 배경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쭉쭉 나갈 수 있게 썼다. 각본을 쓸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극장, 영화의 미래에 여러 이야기가 나올 때 나도 자주 극장에 가면서 고민했다. 관객들이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체험적이고 직관적인, 순수하게 재밌고 오락적인 영화를 만들자라는 결론을 냈다.

- 화림과 봉길이 돈 때문에 파묘에 집착한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상덕은 화림, 봉길의 금전적 동기에 반대하는 것인지.

= 오히려 상덕이 더 심하다. (웃음) 그 돈 받고는 이렇게 위험한 일 못하겠다는 거지. 다 프로들이다. 돈을 받은 만큼 일하는 자세가 더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만나는 분들도 그런 직업인 분들이다.

- <사바하>를 찍을 땐 소포모어 징크스를 꽤 우려했다고. 세 번째 장편을 만드는 마음가짐은.

= 기술적으로 어려운 장면이 많았다. 웬만하면 CG를 지양하면서 배경과 물체를 실제로 찍으려고 했다. 최대한 세트를 짓지 않고 힘들게 찍었고, 혼령 사진 같은 것도 실제 배우가 6시간 동안 분장한 뒤에 일부러 흐릿하게 찍곤 했다. 오컬트 장르는 현실 판타지에 가깝다. 촬영이 힘들더라도 관객들이 실제 같은 느낌을 받고 배우들 역시 실물 배경이나 소품을 보면서 연기에 임하도록 했다.

- 오컬트 색채가 짙었던 전작들과 다르게 접근한 연출 의도가 있다면.

= 전작들을 찍을 때 내 한계를 느꼈다. 장면 하나하나를 멋지게 만들고 연기를 멋지게 담는 것에만 집중하니 영화가 단조로워졌다. 관객들은 극장에서 장면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영화의 어떤 기운을 느낀다. 그래서 <파묘>에선 장면에 대한 집착을 아예 배제했다. 편집으로 여러 장면이 이어지고 교차할 때 느껴지는, <황해> <아수라>에서 느꼈던 어떤 기운 혹은 에너지, 기세를 담고 싶었다. 한컷 한컷이 다소 투박할 순 있다. 카메라 초점이 잘 안 맞아도 이상한 느낌이 찾아오면 그 컷을 썼다.

<파묘>의 이 장면

“<파묘>에선 극장이란 환경에서 접할 수 있는 극도의 긴장감, 낯선 것이 등장했을 때의 실감을 최대화하려 했다. 지금 직접 얘기할 순 없지만, 영화 후반부에 정말 예상치도 못한 ‘낯선 것들’이 등장한다. 관객들이 그것들에게 굉장히 불편한 긴장감과 생경함을 느끼길 바란다.”

제작 쇼박스, 파인타운 프로덕션 / 감독 장재현 / 출연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 배급 쇼박스 / 개봉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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