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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거장의 필치는 건재했다, 올해의 해외영화 총평, 6위부터 10위까지의 영화들
임수연 2023-12-22

<당나귀 EO>

영화란 무엇인가. 이 케케묵은 질문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는 사유가 파생될 수 있다. 올해는 산업적·미학적 의미에서 영화의 정의와 역사를 만들어온 거장들의 신작이 각자의 매체론과 실천을 선보였다. 1위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으로 만든 자전적 영화인 동시에 영화의 윤리성을 돌아보는 진솔한 자성이 담겨 있다. 2위 <어파이어>를 연출한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뉴 저먼 시네마 이후 독일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한 이름이다. 3위 <이니셰린의 밴시>는 극작가 출신의 영화감독 마틴 맥도나가 그의 연출력으로 도달한 새로운 정점이다. 다른 각본가의 인장이 뚜렷한 시나리오를 선택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5위를 차지했다. 이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로 분류되는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4위를 차지한 것은 상징적이다.

6위 <당나귀 EO>는 “요지경 같은 인간 세상을 오로지 당나귀 시점 하나에 의지해 대자연의 경이로움 속으로 이끌며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와 같은 거장 혹은 노장 혹은 장인만이 닿을 수 있는 경지”(허남웅)를 보여준다. “비인간의 시선으로 세상의 끝까지 종주하며 숏의 관습적 규칙을 무너뜨리는”(김예솔비) <당나귀 EO>는 “인간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미래에서 온 영화의 편지”(김소희)처럼 보인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첫 서부극 <플라워 킬링 문>은 7위에 안착했다.

“최근작에서 이어지는 미국 백인 남성의 자성이라는 주제가 강렬하게 표현”(듀나)된 이 영화는 “죄인의 역설적 내면을 성실하게 찢고 꿰매는 솜씨”(이보라)를 보여준다. “역사가 불러일으키는 정념 자체에 집중한 각본”(남선우)을 쓴 에릭 로스의 성취 또한 돋보인다.8위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회화, 사진, 연극, 혹은 그림책 등 매체의 경계를 허물고 그곳에 그어진 선에 도전”(홍수정)한 작품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들이 환기하는 멜랑콜리”(소은성)를 시각화하고 “영화(픽션)에서 바깥의 문제를 환기하는, 드물게 근사하고 감동적인 드라마”(이보라)라는 점에서 “최근 10년간 웨스 앤더슨과 불화했던 이들도 기꺼이 화해할 만한 기념비적 역작”(정재현)일 것이다.

<플라워 킬링 문>

“논픽션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픽션”(김소희)을 보여준 9위 <메모리아>는 “모든 감각을 기울여 골똘히 보고 듣게 하는 확장의 영화”(이유채)다. “<메모리아>의 사운드는 그 자체로는 설명될 수 없는, 미스터리로만 파악되는 고고학적 총체로 기능하는 감각이다. 우리의 기억에는 구멍이 나 있고, 우리는 그 구멍 사이로 무엇이 빠져나갔는지 모른다.”(김예솔비)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이란 이름에서 예상되는 아트하우스영화일 뿐만 아니라, “의외로 치밀한 추리와 서스펜스를 통해 진행되는 아주 재미있는 SF영화”(듀나)라는 점도 흥미롭다.

10위 <애프터썬>은 “영화는 카메라가 담아낸 것을 보는 매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이현경) 하며 “기억과 감정을 더듬는 영화의 모범 사례”(홍수정)를 보여줬다. “이미지는 단순하되 거기서 뽑아내는 감정의 정체는 복합적”(허남웅)인 덕에 “<애프터썬>은 관객을 스크린 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로”(이자연) 전위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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