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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제 팀을 위한 희생을 멈춰야 할 때, 과거의 영광을 반복하려는 MCU, 타개책은?
김철홍(평론가) 2023-11-24

<더 마블스>

언젠가부터 MCU의 신작을 관람할 때마다 (큰 의미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은근히 공을 들여 살펴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마블 스튜디오의 로고가 등장하는 인트로다. 몇번의 변주가 있긴 했지만, 2016년 <닥터 스트레인지>를 기점으로 MCU의 인트로는 동일한 포맷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MCU를 빛낸 수많은 히어로들의 순간순간이 빠르게 전환되며 3D 형태의 ‘Marvel Studios’라는 글자를 이룩하는 것이다. 히어로들이 활약한 장면들의 축적이 마블이라는 거대 스튜디오를 세웠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의미 부여하기에 제격인 인트로다.이는 한때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마블&시네마’ 논쟁과 관련해서도 하나의 단서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대체 마블 영화가 다른 영화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 다른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큰 감동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에서 얻었으니 된 것 아니냐는 반문들이 많았지만, <엔드게임>은 분명 다른 영화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던 게 사실이다.

<엔드게임>은 단순한 3시간짜리 영화가 아니라, 11년 동안 개봉된 22편의 영화의 총합이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마틴 스코세이지처럼) 반칙이라며 사람들에게 소리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이것이 시네마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말하며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마블 스튜디오의 인트로를 떠올려보라. 마블은 새로운 사가를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전 사가의 영웅들에게 무대의 오프닝을 맡기고 있다. 과거의 업적을 통해 어드밴티지를 챙기려는 욕망이 여기에 서려 있다. 영화에 해당되지도 않는 장면을 두고 괜한 꼬투리를 잡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몇 신작에서 그 욕망이 오프닝뿐만이 아닌 영화 전체에서 느껴질 때, 그 인트로마저 예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전 영화들을 통해 지금 보고 있는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하는 반칙 같은 연출 행위는 <엔드게임>에서 일단은 한번 멈췄어야 했다.

팀에 대한 과도한 집착

<로키> 시즌2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잠깐 로키처럼 시간을 되돌려보자. 아, 참고로 로키는 얼마 전 완결이 난 <로키> 시즌2의 끝에서 ‘타임 슬립’ 능력을 얻게 된다. 이렇게 된 마당에 더이상 스포일러를 조심하고 싶지는 않다. 반면 마블은 정말로 멀티버스를 건드리는 것을 조심했어야 한다. 그나마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때 그럴 수 있었던 건 마블의 또 한번의 ‘이전 영화’들을 활용한 역대급 반칙쇼 덕분이었기는 하다. 쉽게 말해 토비 맥과이어의 공이 컸다.) 그러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에 이르자, 이 세계는 직관적으론 이해가 어려운 구경거리가 되어버렸다. 너무도 쉽게 멀티버스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를 보며 관객은 혼돈에 빠진다. 그곳에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를 구해줄 이전 영화의 히어로를 기다려보지만, 새 페이즈 영화들에는 아직까진 <엔드게임>과 같은 명쾌한 답안이 제시되는 순간이 없었다.

마블이 멀티버스를 다루기로 선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또 다른 캐시카우인 엑스맨 유니버스를 MCU에 어떻게든 끼워넣기 위함으로 보이며, 둘째는 물론 빌런의 존재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와 관련해선 복잡한 판권을 둘러싼 영화 외적인 얘기가 얽혀 있다고 하니 넘어가고, 내부 서사의 관점에서만 얘기해보겠다. MCU가 또 한번의 <엔드게임>급 엔딩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강력한 빌런의 존재다. 역설적이지만 빌런이 강력해야 어벤져스는 다시 한번 ‘어셈블’할 수 있다. MCU의 핵심은 어벤져스라는 ‘팀’인데, 난다 긴다 하는 슈퍼히어로들이 개성을 죽인 채 힘을 합쳐야만 하는 동기는, 엄청나게 강력한 적의 등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무려 다른 유니버스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능력을 가진 빌런 캉은, 타노스의 뒤를 이은 최종 빌런이 되기에 적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멀티버스는 핵심 문제가 아니다. 설령 마블이 관객들에게 멀티버스를 완전히 이해시켰다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히어로들이 ‘팀’이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합당한 설명이다. 말하자면 위기를 막기 위해 팀이 있어야 하지, 팀이 만들어내는 볼거리를 전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억지로 위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엔드게임>까지는 그 순서를 잘 지켰던 마블이 거꾸로 가고 있다. 혹은 <엔드게임>까지는 그 욕망을 잘 포장했던 마블이 연이어 포장에 실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패의 근원엔 마블의 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있다.

최근작인 <더 마블스>는 아예 그 욕망을 포장하는 것을 포기한 상품이다. 캡틴 마블을 포함한 세 인물은 서로 공간이 뒤바뀌는 운명에 처해 아무튼 함께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녀 히어로인 미즈 마블은 계속해서 본인을 포함한 일행들을 팀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 결과 세 히어로는 100분이라는 최단 시간만에 ‘더 마블스’라는 팀이 되고, 개개인은 각자의 개성을 발휘할 기회를 잃게 된다.

마블이 팀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그게 그들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시네마의 정의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지금 보는 영화의 감동이 과거의 팀, 과거의 다른 영화로부터 온 것이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까진 납득할 수 있다. 그건 모든 ‘프랜차이즈 시리즈 영화’의 욕망이기도 하다. 얼마 전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또는 <탑건: 매버릭>도 전작이 이룬 업적의 후광이 덧씌워져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은 순서다. 시네마를 지키지 않는 것은 괜찮지만, 순서를 지키지 않는 건 나쁘다. 한편의 새 영화가 풍성하게 느껴지기 위해 시리즈-팀-스튜디오가 있는 건 환영하지만, 미래 시리즈-팀-스튜디오를 위해 영화 한편을 희생시키는 순서는 나쁘다. 마블이 가장 먼저 타임 슬립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순서다.

또 다른 시작의 희망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MCU의 현 상황을 따져볼수록,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MCU를 놓지 않은 관객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예전 영화를 다시 돌려보며 팀과 개인 사이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하던 히어로들을 그리워하거나(혹은 그들의 귀환을 기도하거나), 계속해서 공개되는 떨떠름한 신작들 사이에서 작은 희망의 단서를 찾는 수밖에 없다. 내가 희망을 찾은 곳은 <로키>시즌2의 마지막 6화에서다. 앞서 말했듯 로키는 이곳에서 타임 슬립 능력을 얻게 된다. 정확히는 그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5화가 끝이 나는데, 그 후 이어지는 6화의 인트로가 꽤나 의미심장하다. 6화 인트로는 서두에서 서술한 ‘Marvel Studios’ 인트로를 끝에서부터 처음으로 거꾸로 재생시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웅(들)-스튜디오 순서였던 영상이 스튜디오-영웅(들)으로 바뀐다. ‘개개인 히어로의 축적이 곧 스튜디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던 영상이 역재생되자 완전히 다른 감상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이내 이어지는 신에서 로키는 시간을 돌리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뱉는다. “우리는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 마블이 앞으로 뭔가를 다르게 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이 시점에, 나에게 희망을 주는 히어로가 아이러니하게도 ‘팀’과 가장 거리가 멀었던 존재라는 것 역시 상징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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