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과 늦은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 생전 처음으로 ‘내 차’를 갖게 되었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무척 많이 부르고 다녔는데, 내 서른 즈음은 학생운동과의 이별, 학문 세계로의 본격적 진입, 그리고 자동차였던 셈이다.
전국 구석구석으로 차를 몰고 다니면서 내 서른 즈음은 상당한 ‘시선 전환’을 겪었다. 주유소에 걸린 휘발유 가격표가 그 어떤 물가지표보다 중요해졌다. 차가 오는 걸 도무지 신경 쓰지 않는 골목길의 행인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고, 주차할 곳과 못할 곳(정확히 말하자면 주차 위반 딱지를 떼일 곳과 떼이지 않을 곳)을 가리는 눈이 발달했으며, 차기 시장이나 대통령은 교통 정체를 해결할 사람을 뽑겠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하고 다녔다. 그냥저냥 괜찮게 보았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새삼 희대의 명작으로 재평가됐다.
이런 전환은 내게 여러 가지 숙고의 주제를 남겼다. 평범한 이들의 삶을 살피는 작가, 기자, 정치인들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야 한다는 통찰에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인구의 상당수가 자가용을 갖게 된 현실을 ‘평범함’에서 배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건 마치 결혼과 자녀 출산 경험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과 같은 고위급에 선출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부분적으로는 그럴듯한 배제의 논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나 스스로의 이런 변화를 자연스레 후자의 관점에서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도, 크게 시선이 바뀌는 경험이 이어졌다. 유학을 하면서, 외국(혹은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을 바라보는 눈과 모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히 바뀌었다. 결혼한 이후 한동안 아이가 없었던 나는 요즘 말로 하면 ‘딩크족’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다가, 귀국 직후 아이를 갖게 되면서, 유모차는 엄청나게 고급이 되었지만 유모차에는 도무지 친화적이지 않은 이 발전된 나라의 모순을 보았다. 노키즈존이 왜 근본적으로 차별에 해당하는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역설하다가 냉소와 비난 세례도 받았다. 스스로 자영업자가 된다면 또 바뀌게 될까 고민도 했다. 물론 그 각각의 자리에 섰을 때, 그 시점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기억’이라는 게 있고, 역지사지라는 인간의 사고능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전혀 다른 위치에 서보니 상당히 달리 보이는 것을 체감하며 그때마다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을 따름이다.
우리는 체험을 거치지 않고서도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존재이나, 체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공감적 앎에 도달할 수 없도록 지어진 존재이다. 권력이나 지위는, 좁지만 강력한 공간이자 이동수단인 자동차와도 같은 것이다. 그 운전대를 쥔 자들이 보여주는 잔혹한 질주를 보며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시선 전환’의 순간이 찾아올까? ‘어떤’에 대한 답을 나는 갖고 있지 않지만, ‘언제’에 대해서만큼은 그간의 체험과 관찰을 통해 알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