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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비닐하우스’,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그려내는 웰메이드 스릴러
김신 2023-07-26

버려진 비닐하우스에 머무는 돌봄 노동자 문정(김서형)은 종종 자신의 뺨을 후려갈긴다. 왜 그는 이런 기행을 벌이는 걸까. 무채색의 고요에 감싸인 서사에 발작적인 소음을 불어넣는 이 자해 행위의 원인은 오래지 않아 명확해진다.

문정이 돌봄 노동을 하며 마주치는 존재는 문정의 선의와 헌신을 감사 대신 불가해한 행동으로 되돌려주는 요령부득의 타자이며, 노동과 일상에서 겪는 소외를 공동체의 차원에서 해결할 가능성도 요원해 보인다. 불모에 처한 구조적 조건을 문제시할 도덕적 자의식도 소진된 상황에서, 문정은 여전히 몸을 일으켜 오늘을 살아야만 한다. 소년원에서 출소를 앞둔 아들과 동거할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택지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며 감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결여를 개의치 않고 지속되는 악몽 같은 현재를 견디기 위한 가학적인 자기암시의 몸짓일 뿐이다.

이솔희 감독의 <비닐하우스>는 더 나은 대안과 연대를 도모하는 선택지를 마련하지 않겠다는 듯, 대화와 사건의 흐름을 급작스럽게 절단해 보이며 비정한 세계의 질서를 구조화한다. 탈출 불가능성을 기정사실로 전제하는 이 영화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충실하게 해명하기보다는 스릴러적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이며 종종 가학적인 뉘앙스를 빚는다. 하지만 인물이 겪는 고통의 스펙터클에 방점을 두는 대신, 그들이 고통에 직면하기 직전까지의 과정만을 취사선택해 비추는 이솔희 감독은 사회학적 주제를 소모적으로 조명한다는 혐의를 효과적으로 벗어난다. 안소요를 비롯한 배우들이 탁월한 호연으로 구축한 상담소 장면은 영화가 인물이 처한 심경을 구조적으로 감각화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 또한 인상 깊게 예시한다.

<비닐하우스>는 여러 측면에서 반가운 작품이다. 탁월한 영화란 소재의 자극성과 장르의 문법에 함몰되는 안이함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담아낼지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주관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고 있는 신예의 탄생을 증거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돌봄 노동이라는 시의적인 사안을 다루면서도 여러 인물이 취하는 비극적 선택의 불가피성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비닐하우스>라는 조감도는 쉽게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관객의 기대를 영민하게 배반하는 장르적 터치도 숙련된 경지에 도달해 있다. 한국영화의 미래에 기대할 수 있을 역량을 지닌 재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선연하게 증명해내는 신예의 출현이다.

"순남씨 이제 어른이잖아. 도망치지 말고 해결을 좀 해봐요."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으로 거듭날 수 없는 존재에게 문정이 건네는 말. 비정한 가르침을 전하는 한마디 말이 또 하나의 비극적 결단을 배태한다.

CHECK POINT

<아무르> 감독 미하엘 하네케, 2012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가 공개되었을 당시, 치매에 걸린 부인을 죽이는 남편의 선택은 첨예한 윤리적 논쟁을 촉발했다. 이것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옹호하는 기만적 수사학인가, 아니면 생명을 관리되는 대상으로 축소시킨 세계의 질서가 누락한 급진적인 윤리의 표명인가. <비닐하우스>와 비슷한 각도에서 돌봄 노동과 존엄사를 조명하는 이 작품을 다시 꺼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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