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충무로 다이어리
국민영화?
2002-06-05

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m

지난 5월27일, <취화선>이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는 핫뉴스가 날아왔다. 그날 하루종일 온 매스컴이 수상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했다. 다음날엔 온 지면 매체가 엄청난 면을 할애하며 임권택 감독과 그의 영화인생에 대해 소개했다. 또 그 다음날엔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취화선>팀 소개와 기자회견 내용이 다뤄졌다. 그야말로, 그 한주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선전한 한국 축구대표팀과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이야기로 채워진 셈이다.

영화계에서 밥 먹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초미의 관심은, <취화선>이 다시 ‘칸영화제 특수’를 잡아 흥행바람을 몰고올 것이냐이다.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워낙 젊은 관객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요즘 영화 흥행경향이 가볍고, 빠르고,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추세여서 그닥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현재 <취화선>은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월요일 오후부터 관객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28일엔 심지어 어떤 극장에선 두배 이상의 관객이 들기 시작하더니만, 29일에도 역시 상승세를 보였다. 배급사에선 주말부터 개봉관 수를 대폭 늘릴 방침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관심이 언제까지, 어떻게 이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10여년 전 <서편제>의 ‘역전 신화’가 다시 이어질지, 다시 영화계에서 밥먹는 사람들과 내기를 걸 판이다. 개봉 당시, 단성사 한관에서 개봉 첫날 2천여명이 들어 제작사를 절망시켰다가, 당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었던 대통령의 관람 이후,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문화’의 변방, ‘대중문화’의 언저리에 존재했던 한국영화가 종합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더니, 급기야 2천여명이 3천명, 심지어 전회 매진으로 역전되며 국민영화로 등극했던 그때 시절이 있었다.

기억하건대, <쉬리>는 99년 설 연후에 개봉되어 나름대로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모 종합일간지에서, 연휴 성적을 들어 <타이타닉>의 초반 성적을 눌렀다는 뉴스를 전하자 <타이타닉>을 ‘누를 수 있는’ 한국영화로 자리매김하면서 폭발적 흥행장세를 기록했다.

다음해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개봉에 맞춰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져 바람을 타더니만, 추석 연휴 흥행성적이 <쉬리>와 비교되면서 다시 또 국민영화 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다. ‘며칠간 몇명 돌파’식 뉴스와, 영화흥행을 100m 달리기 기록 경신식으로 이슈화하는 마케팅은 <친구>로 이어져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고보면, ‘국민영화’가 되려면 시대적 이슈를 만들어내거나, 만들어지는 데 동승하는 억센 운도 영화의 질적 완성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매스컴의 리뷰나 평론가의 평이나 별점엔 놀라울 만큼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 대중, 한국영화 관객이 아직도 사회, 문화적 ‘이슈’엔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이번 <취화선>의 관객 상승을 통해 확인된 셈이다. 한 문장으로 똑 떨어지는 재미있고 명확한 주제와 소재의 이른바 ‘하이 컨셉’ 영화와 스타의 등장, 코미디, 액션, 멜로가 혼성 변주된 영화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요즈음 고전적인, 그리고 의미있는 이슈 메이커 <취화선>이 작금의 흥행동향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 더 지켜볼 일이다.

베켄바우어와 차범근이 선수생활을 끝낸 이후로, 더이상 ‘축구’에 관심이 없는 나는 요즘 빨간색만 봐도 ‘또 월드컵 얘기야’ 하며 지레 심드렁해진다. 책상에 앉아 <취화선>의 관객 상승 그래프나 그려볼 참이다. 실로, ‘월드컵’과 ‘칸영화제’의 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