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지켜본 배우 구교환은 ‘호기심 천국’, 매력적인 사람 구교환은 ‘마흔 넘은 어린이’.
그는 현장에서 자기 느낌대로 날것처럼 연기하는 배우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매컷을 촬영할 때 앞뒤로 붙는 컷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지금 필요한 연기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굉장히 치밀한 연기자다. 아마도 본인이 프로듀서와 감독, 편집까지 참여해본 배우로서 신을 굉장히 입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배우와 스탭들 모두를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동료로 인식하고 그들과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세히 상의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한편 인간 구교환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도 자주 보았다. 이런 면이 구교환이라는 배우가 정신적으로도 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구교환 배우를 <씨네21> 커버에서 볼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하다! 그가 주연한 단편영화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를 보면서 ‘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캥거루에게 구타를 당하고 어린이대공원을 뛰쳐나온 얼룩말 세로처럼 나도 나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손끝에 박힌 가시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괴상발칙한 영혼의 소유자라니. 구교환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익숙함과 반복, 규칙과 예상을 늘 박살내버린다. 구교환이라는 사람도 구교환이라는 배우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처럼, 괴상발칙한 구교환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화면을 장악해버린다. OTT의 홍수를 견뎌내며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뉴시네마의 시대가 도래했다. 구교환은 새로운 영화의 시대가 원하는 진짜 새로운 얼굴이다. 그와의 작업은 그래서 늘 설레고 기다려진다.
“눈물 대신 콧물을 흘리면 어떨까요?” “좋죠, 그렇다면 코를 클로즈업하겠습니다.” 실제로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비슷한 식으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가 툭 던진 농담은 영화의 진심이 되어 진짜 캐릭터를 만든다. 울어야 할 때 차라리 웃어버리는, 그것이 뜬금없는데 말이 되는 캐릭터. 그런데 구교환은 웃는 것도 수가 읽힌다며 “울긴 우는데 코가 우는 건 어떨까요?” 제안한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면 눈물을 흘리다가 웃기도 하고, 특유의 ‘아핳핳끆끆’ 웃음소리를 내면서 어쩐지 쓸쓸한 눈빛을 카메라에 비춘다. 그쯤 되면 난 구교환을 구경한다. 오케이를 외치면 그 순간이 끝나니까. 내가 “근데 콧물은 언제 흘리느냐”고 물으면 “아, 맞다! 콧물. 다시 해볼게요” 하고는 레드벨벳의 노래를 듣고 돌아와 이번에는 땀을 흘리는 배우. <탈주>의 캐릭터는 그렇게 완성되었고 구교환이 만든 결과는 독보적이라 자신한다. <박하경 여행기>는 경우가 달랐다.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어떤 황당한 경계에 서 있는 설정을 세심히 만들어가야 했던 탓에 가볍게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럴 때 구교환은 일절 농담하지 않는다. <박하경 여행기>에서 그가 저 멀리 소실점 끝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와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 테이크만 갈 테니 죽어라 뛰어달라 뻥을 치고 여러 번 테이크를 갔는데, 군말도 없이 테이크마다 성실했다.
그렇게 달려와서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긴 대사를 해냈다. 테이크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대사의 타이밍뿐이었다. 그 타이밍들이 절묘해서 감탄하고 있으면 땀을 뻘뻘 흘리던 그가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머금는다. 이것이 구교환의 마술적 리얼리즘이구나! 한편 하루의 촬영을 끝낸 구교환 배우의 모습은 <탈주> 때나 <박하경 여행기> 때나 똑같다.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한다. “이 장면을 찍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진짜진짜진짜 행복해요”라고 말한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나면 떠나보낸 캐릭터를 그리워하듯 내게 안부를 묻거나 늦은 밤에 문득 연기할 때 자주 들었던 음악을 첨부해서 보낸다. 메시지엔 주로 이렇게 적혀 있다. “함께 듣고 싶은.”
한준희_ <D.P.> 시즌1, 2
구교환은 이미 많은 작품에서 ‘미친 매력’을 보여줬다. <남매의 집>의 라오우, <꿈의 제인>의 제인, <메기>의 성원. 거슬러 올라가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와 <뎀프시롤: 참회록>의 기환과 교환까지…. 그는 항상 신박한 캐릭터들을 압도적으로 묘사해왔다. 그런 그에게 <D.P.> 각본을 전달하고 첫 미팅날이 다가왔을 때 모든 감독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사적으로는 꽤 오래 알고 지냈지만 감독과 배우로 마주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한데 그는 담담하게 “제가 어떤 모습으로 호열이가 되면 좋을까요?”로 첫마디를 시작했다. “아… 호열이는 그냥 본래의 교환이 형 그 자체면 될 것 같습니다.”
구교환 배우가 현장에서 간혹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와, 감동적이다.” 세트에 조명팀이 설치해놓은 수십대의 조명 디자인을 보거나, 허허벌판에 미술팀이 가득 채워넣은 미장센에 들어가 연기를 할 때 구교환은 감동한다, 그리고 좋다고, 감동했다고 스탭들에게 말해준다. 한명의 배우이기도 하지만, 한명의 필름메이커로서 함께하는 동료들을 향한 끈적한 전우애가 있달까.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호열이 형이 보고 싶어진다. 이른 아침 현장에 나와 터덜터덜 동네 한량처럼 현장 주변을 산책하다가 내 앞에 전용 텀블러를 슥 내밀던 교환 형이. “감독님, 자몽 허니 한 모금? 당 충전 해야죠?”
백종열_ <신인류 전쟁: 부활남>
개인적으로 선(善), 악(惡), 광(狂)을 가진 얼굴을 좋아한다. 구교환에게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