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오해하려 들지 않는 한, <유령>이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말은 농담으로 넘겨들을 일이다. 몇몇 실증적 역사의 지표들, 조선총독부 건물, 남산의 신사, 황군 군복과 일본어,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33년과 비슷한 시기에 (하지만 정확하게는 1932년에) 조선에서 개봉했던, <상하이 익스프레스>를 홍보하는 영화관의 대형 간판 이미지 등이 일반적으로 훈련된 관객의 기억을 자극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여기에서 상기된 과거는 역사를 구성하는 시간의 한 단면이 아닌, 집단의 기억으로부터 몇 가지 요소들을 추출하고 새롭게 배치하여 만들어낸 추상적인 시간이다. 고증에 대한 열망과 그것의 오류에 대한 지적, 또는 인위적인 시간으로 인해 발생한 영화의 빈틈을 뛰어넘어 역사와 성급하게 대화하려는 시도가 때로는 영화에 대한 논의를 위태롭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가 마크 페로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과거를 다룬 영화의 이미지들이 지나간 역사에 대해 말해주기보다 그 영화가 만들어졌던 당대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이야기했다.
‘밀실’에 대하여
바로 이 점에서 <유령>의 중심 공간인 ‘밀실’, 벼랑 위의 호텔은 당대의 어떤 징후로 보인다.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들이 이 호텔에 모이고 나서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의 일장 연설이 끝나갈 즈음이면, 앞선 기나긴 오프닝이 온통 영화의 진행을 위한 구실에 불과했음을 알게 될 수밖에 없다. 인물들이 선별된 이유의 모호함과 비교해 그들이 모이도록 만든 공간의 특징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시대의 표지들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는, 국적도 시대도 가늠하기 힘든 양식의 호텔은, 거기에 억류된 영화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상상된 과거 속에 고립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고립의 전략은 <유령>만이 갖는 특이점이 아니다. 이를테면, 조직 내 스파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 <헌트>의 경우 역시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임을 지시하는 온갖 재현 대상들과 특히 사냥 목표인 독재자 전두환의 도상적 재현, 그리고 아웅산 테러를 암시하는 주된 사건이 있음에도, 그 재현 체계는 총과 폭탄, 살인, 암호, 기밀문서, 추격, 의심과 배신 등과 같은 장르 표지들에 의해 곧 무력해진다. 이 영화에서 그려진 80년대는 이미 역사화되고 유형화되어 있어 더이상의 기억 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자리를 장르적인 시도에 내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남은 80년대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관객에게 호소할 수 있는 원한 감정뿐이다. <밀정>이나 <암살> 등 <유령>의 전사라고 할 수 있는 영화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원한 감정에의 호소는, 그러므로 일종의 알리바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관심사라고 생각되지 않는, 스스로 역사라고 이름 붙인 어떠한 영역으로부터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를 얻어내려 한다.
<유령> 또한 마찬가지다. 1930년대에 실제로 활동했던 아나키스트 단체 ‘흑색공포단’이나 그들의 ‘상하이 육삼정 의거’를 언급하는 것은 이 영화에 접근하는 데 있어 숨은그림찾기 정도의 부질없는 일이 된다. 다시, 무국적의 무색무취한 공간인 벼랑 위의 호텔로 돌아가면 이러한 사정은 분명해진다. 이 고립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기억이 아닌 영화 장르의 기억이다. 추리물이라고 알려진 원작 소설의 영향 아래 있는 부분 이외에 단연 눈에 띄는 참조점이 있다면, 그것은 앞선 오프닝에서 사운드와 이미지가 직접 인용되기까지 했던 조셉 폰 스턴버그의 영화 <상하이 익스프레스>다. 중국 내전을 배경으로 스파이들이 암호를 통해 교신하고 열차에 타고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의 정체가 문제시되는 이 영화가, <유령>의 첩보물적 성격은 물론이고 한명씩 차례로 불려 들어가게 되는 심문 또는 고문 장면의 참고 대상이었음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주지하는 바와 같이 <유령>의 장르적 성격은 변전한다. 정무총감의 직속 비서 유리코(박소담)가 갑작스럽게 흑색공포단 소속의 첩자인 (오프닝에서부터 정체가 드러난 박차경(이하늬)에 이은 두 번째) 유령으로서 정체를 직접 드러내는 것을 기점으로 영화는 본론으로 들어가며 총을 든 두 여자의 활극이 펼쳐진다. 이들이 가까스로 호텔을 탈출한 뒤에 총독부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설경구)가 파놓은 함정인 또 다른 밀실로까지 이어지는 액션 장면들은, 그것이 갱스터영화 장르의 변용으로서 오우삼의 영화들로 대표되는 홍콩 누아르와, 또한 여기에 영향을 끼친 스파게티 웨스턴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드러낸다.
그러나 역사와 마찬가지로, 장르 또한 세계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영화학자 배리 랭퍼드는, 예를 들어 고전적인 장르로서의 갱스터영화에서 구현되는 서사 패러다임과 전형적인 인물들이 20세기 초반의 대도시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의 경험으로부터 추출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대량생산 체제인 스튜디오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에도, 갱스터영화는 다른 전통적인 장르들과 마찬가지로 60, 70년대의 장르 수정주의 시기를 거치며 변화된 제작 환경과 새로운 관객의 요구에 따른 갱신을 거듭했다. 거칠게 말하면, 갱스터영화 장르의 약호와 관습은 대공황의 사회,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신경증, 아메리칸드림의 파산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시대의 어떤 국면들로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화 <유령>에서 지배적인 장르 기억은 퇴행적이다. 박차경과 유리코가 함께 조선총독을 암살하려 시도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걸친 슈트와 중절모, 그리고 손에 든 기관총의 이미지는 그것이 갱스터영화의 가장 익숙한 장르 도상이라는 사실 이외에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두명의 여자가 그려져 있는 <장화홍련전>의 포스터와 같은 사족이 이 이미지에 몽타주된 것은 그래서 이해할 만하다. 역사의 기억에 접근하지 못한 이미지는 세계와 관계 맺지 못하고 자신만을 반복해서 가리킨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의 삽화
다만 한 가지, 이 영화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몽타주가 있다. 박차경이 <상하이 익스프레스>의 관람 티켓을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책갈피에 끼워 숨겨놓으려 할 때, 그 한쪽 페이지에는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이 그려진 삽화가 있다. 여기에서 이 몽타주가 <유령>의 퇴행하는 장르 기억을 중단시킬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리일까.
<상하이 익스프레스> 이전 무성영화 시기의 스턴버그가, (최초의 갱스터영화 중 하나인 <스카페이스>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벤 헥트와 함께 만든 <언더월드>는 갱스터영화의 전사로서 이야기된다. 그리고 최초의 범죄영화 중 하나인 이 영화의 전사로서, 장뤽 고다르는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최초의 미국영화로 언급한다. ‘뱀파이어’라는 범죄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 이 시리즈 영화에서 변신은 가장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