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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령’ 이해영 감독,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왜 기록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했다"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23-01-19

유령이란 제목은 중의적인 표현인 것 같다. 유령이 되고자 하는 스파이인 동시에 유령이 되어버린, 기억되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게 보일 여지도 있다. 일단 이야기가 크게 바뀐 까닭에 원작의 ‘풍성’이란 제목을 살릴 수는 없었다. 제목을 크게 고민하진 않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유령’이란 단어를 떠올렸고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쉬운 표현이라서 좋았다. “언제나 있었고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극중 대사에도 몇 차례 언급되는 것처럼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왜 기록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조금 더 그럴듯한 답이 필요했다. 점조직으로 움직여 서로가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독립운동가들이라면 말이 될 것 같았다. 흑색단은 1930년대 ‘상하이 육삼정 의거’를 일으킨 흑색공포단이라는 독립운동집단을 모티브로 했다. 의열단 외에도 존재했던 많은 독립운동 단체를 기억하고 싶었다. 물론 흑색공포단은 아나키스트 단체였기에 모티브만 따왔다.

스파이의 접선 장소가 영화관이고, 암호 전달 방식이 영화 포스터라는 점이 재미있다.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의 <상하이 익스프레스>(1932)의 이미지를 쓰고 싶었다. 정확히는 내가 생각한 박차경의 이미지가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이미지와 닮았다.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얼굴을 커다란 포스터 간판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포스터를 활용한 건 여러 의미를 장황한 설명 없이 한컷의 이미지로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다양한 의미로 즐겨주셨으면 한다.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영화는 <장화홍련전>(1924)이다. <유령>의 전체적인 주제는 물론 결말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제작, 감독, 배우, 스탭 모두 순수 조선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영화라는 의미에서 골랐다.

사소한 설정이나 디테일로 메시지를 전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가령 책 안에 단서를 숨겨놓는데, 하필이면 숨겨두는 페이지에 소설 <변신>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원래는 아무 개성 없는, 수많은 책 중 하나에 감춰두는 거였다. 그런데 같은 페이지라는 걸 표시해줄 이미지가 필요했기에 그림을 고르다보니 그게 들어갔다. 스파이의 진정한 정체라는 식으로 의미를 읽으려면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적극적인 상징으로 썼다고 말하기엔 너무 부끄럽고. 그냥 <변신>이라는 소설을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디테일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황금관, 절벽 위의 고급 호텔 등 공간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화려한 색감의 낭만적인 시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일제강점기라는 시공간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있을까.

=황금정이라고 불리던 그 길은 지금의 을지로 일대인데 번화가의 화려한 면모가 있다. 다만 그 땅의 화려함은 우리의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인들을 위한 화려함이다. 빼앗긴 땅에 씌워진 착취의 결과물이랄까. 그 밑에 유령처럼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셈이다. 그 격차와 간극을 좀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최대한 반짝이고 화려하게 가져가고 싶었다. 호텔의 경우, 수많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을 압도하는 최신의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공간이다. 화려하고 서구적인데 한편으로는 긴장되고 불안해지는 공간이랄까. 절벽 위라 탈출이 불가능한 숨 막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풍광이 누군가에는 감옥 같은 풍경이 될 수도 있다. 이면에 숨겨진 폭력성과 어두운 면모와의 대비를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런 공간이 마지막에 다 부서지고 파괴될 때 얻어지는 묘한 충족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거꾸로 부서져야 하기 때문에 더 화려할 필요가 있었다.

여성간의 연대에서 출발하여 연대로 끝난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브로맨스를 대체할 만한 백합물의 요소도 보인다.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일단 어떤 식으로든 이걸 명시하고 싶진 않았다. 모니터 시사를 했을 때 관객의 해석도 다양하게 나왔는데 나는 다양한 반응 자체로 충분히 의도가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남녀 파트너로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암묵적인 위계 같은 걸 일단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관계라는 건 늘 복잡할 수밖에 없고, 복잡한 면모는 복잡한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어떤 식으로든 박차경을 비롯한 캐릭터들이 쉽게 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령>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당부의 팁을 전한다면.

=유령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영화가 아니다. 머리를 써야 하는 무거운 영화로 오해할까 겁이 난다. 매우 단순하고 그저 보이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영화적인 쾌감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시대나 장르에 대한 고민 없이 마음 편하게 극장에 오셔서 부담 없이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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