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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의 궁합을 맞춘다
2001-03-26

<클럽 버터플라이> 영화음악 최완희

1968년생·추계예술대 작곡가 졸업,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졸업·드라마 SBS <결혼>,

KBS <거짓말> <슬픈 유혹> <바보 같은 사랑> <푸른 안개>, MBC <> <레디 고> <여자를 말한다> <해바라기> <사랑>

쏟아지는 빗속, 회사 후배에게 강간당하는 여자는 저항하다가 손을 꼭 쥔다. “내 몸 속에 있는 전구가 불을 켠 느낌”을 갖게

된 순간이란다. 논란이 될 만한 이 장면은 좌우를 오가는 카메라와 그 속도에 맞춰 빨라지고 느려지는 음악으로 인해 홀연한 아름다움을 띤다.

비판을 받아야야 할 장면에서 드라마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하는 음악, 그것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클럽 버터플라이>의 영화음악을 맡은

최완희씨는 에로틱한 영화에는 색소폰 등이 들어가는 흐느적거리는 음악이 적당하다는 통념 대신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다. 에로틱한 장면에 장중하게

깔리는 ‘음악이 시선을 빼앗도록’ 했다. 지금 오른손이 무엇을 하고 왼손이 무엇을 한다는 장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한 행위를 하는구나”라고

음악에 파도를 맡기다보면 아차싶게 흥분돼 있는, 그런 음악을 바랐던 것이었다. 때로는 호흡만 남겨두고, 음악은 개입을 자제하기도 했다.

혁과 경 부부가 엉킨 감정을 풀러 놀러간 곳의 장면이 그 한 예. 호흡만 있는 신을 겪고 나면 그들의 부부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이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최완희씨는 <클럽 버터플라이>가 영화음악 데뷔작이다. 8년 동안 <결혼> <레디 고> <해바라기> <거짓말> <바보 같은

사랑> 등의 텔레비전 드라마 음악을 해오면서 꼼꼼하게 음악을 다듬을 수 있는 영화음악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러다 처음 맡게 된 탓일까,

손해를 감수하고 예산을 초과하는 일을 벌였다. 러시아로 날아가서 오케스트라에 영화음악 연주를 맡기는 ‘무모한’ 짓을 한 것이다. 심포니

오케스트라 글로발리스(GLOBALIS)는 80명 규모로 <시티 오브 조이>나 <러브 오브 시베리아> 등 지금까지 450여편의 영화음악을

연주한 영화음악 전문 오케스트라다. 최완희씨의 러시아 시절 은사이기도 한 볼쇼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크리미아가 지휘를 맡았다. <클럽

버터플라이>에는 전설적인 탱고의 거장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동생이자 유명 아코디언 연주자인 헥터 피아졸라의 연주도 포함돼 있다. 이 역시

그의 ‘무모함’이 작동한 결과다. 송년음악회에 참석한 그를 알아보고 이러이러한 영화의 음악을 녹음하고 있는데 시간이 되면 녹음실로 오시라고

말했는데, 이 당돌한 초대에 응한 피아졸라가 연주까지 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그 대가는 하룻밤을 넘기는 보드카 술시중.

궁하면 통한다. 유행을 겨냥한 외국음악 스코어는 한곡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기특한 O.S.T는 ‘궁함’의 결과다. 외국곡을

삽입하면 지불해야 할 로열티는 영화음악 예산에 버금가는 액수였다. 그래서 카페에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황보령의 신곡 <우주>로 채웠을 만큼

삽입곡들은 모두 창작곡이다. 최완희씨는 영화음악은 꼼꼼하게, 빈틈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일할 맛이 난다고 한다. 촬영이 모두 끝난 뒤 의뢰받은

작업. 러시아 체류기간 한달을 빼면 며칠 남지 않은 기간은 분명 동분서주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짧은 동안에도, 의욕이 앞섰던 초짜 영화음악가는

또 한번의 무모함을 발휘했다. 연주 녹음을 위해 러시아로 떠나기 전, 신시사이저로 음악을 입힌 비디오 편집본을 만들어 영화감독과 함께 보며

의견을 나누었다. 음악을 건네주고 그냥 입히기만 하는 관행 대신 영화와 음악의 궁합을 한번 더 생각하자고 선택한 방법이다. 러시아에서는

필름을 보면서 연주를 했다. 지휘자는 영상을 보면서 완급을 조절하고 연주자는 지휘자와 필름을 함께 보면서 음악을 연주했으니 베테랑들이 아니라면

NG없이 소화하기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음악이 되었다. 유죄든 무죄든 그게 영화음악 아닌가.

글 구둘래/ 객원기자 anyone@cartoonp.com

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