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싸이더스, 어디로 가나?
싸이더스의 경우, 오히려 플레너스의 출범과 싸이더스의 분할을 계기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차승재 대표가 박병무 플레너스 대표와 담판을 지어, 회사의 지분율 변경과 자유로운 투자처 선택 등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가 <지구를 지켜라> 등에 투자한다는 소식이 플레너스의 출범 발표와 거의 동시에 전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차승재 대표는 지난해부터 제기됐던 “싸이더스가 로커스홀딩스 안에서 밀리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극단적인 경우엔 아예 집을 버리고 뛰쳐나오겠다”는 계획을 내비쳐왔다. 업계는 이같은 차 대표의 배수진 승부에 플레너스가 일단 양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싸이더스는 향후 배급 파트너에 관해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싸이더스가 계획중인 작품의 수가 워낙 많고, 이중에는 제작비 규모가 상당한 프로젝트도 다수인 탓에 중소 규모의 배급사와의 제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CJ와의 장기적인 제휴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무사>를 비롯, <킬리만자로>, 우노필름 시절의 <행복한 장의사> 등 싸이더스와 CJ가 협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새로운 파트너로 떠오르는 CJ
물론 이미 주요 파트너 명필름과 함께 나름의 성과를 거둬왔으며, 올해 들어 한국영화에 다각적인 투자를 진행해온 CJ로서는 싸이더스의 라인업이 부담이 될 수 있다. 때문에 현재 싸이더스는 CJ에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요구하는 반면, CJ는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CJ가 안정적인 파트너십 대신, 일부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투자·배급을 하겠다는 입장을 굳힌다면, 싸이더스는 다른 파트너를 찾아나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싸이더스 정도 규모의 제작사를 받아줄 만한 투자·배급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싸이더스는 독립적인 노선을 채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싸이더스는 몇편의 영화를 한데 묶어 패키지로 투자받는 형식을 취하는 전략을 취하게 될 것이다. 명필름처럼 자체적인 투자조합을 결성해 독자적인 자본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요즘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도 몇 가지 상징적인 변화가 느껴진다. 그동안 영상사업부가 자리했던 곳과는 별도의 층에 있던 차 대표의 사무실이 예전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이는 싸이더스의 분할로 영화에만 주력하게 됐다는 상황 변화나 독자적으로 사업을 꾸려야 하는데 따른 예산 감축의 측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동안 프로젝트를 신경쓰기보다는 기업 경영에 더욱 몰두하던 차 대표가 다시 일선에 복귀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의 최근 대부분의 일과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준비중인 프로젝트를 점검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또 우노필름 시절 이후 처음으로 프로듀서 역할을 자임했다는 사실 또한 눈길을 끈다. 그동안 펼쳐왔던 해외 합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본과 함께 작업할 <역도산>과 중국에서 촬영될 <낙화유수>를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한때 한번쯤 찾을까 말까 했던 자사 작품의 촬영장 나들이도 잦아졌다. 최근 크랭크인한 <지구를 지켜라>의 경우에는 테스트 촬영에도 모습을 보일 정도다. 이같은 차 대표의 ‘변신’은 싸이더스 안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의건 타의건 차 대표가 매니지먼트나 음반 등 다른 사업분야에 신경을 쏟는 대신 영화에 힘을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싸이더스 입장에서는 힘을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비교적 좋은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도 싸이더스의 새로운 출발에 은근한 힘을 불어넣고 있다.
튜브의 독립 선언
튜브엔터테인먼트의 반전은 더욱 극적이다. 튜브가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 것은 거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집으로…>의 흥행 성공이었다. 이 덕분에 현금 흐름에 여유를 얻은 튜브는 진행중이던 CJ와의 인수 협상을 중단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튜브의 인수를 포기한 것은 CJ로서도 나쁜 결정은 아닌 셈이다. 애초 CJ가 바란 점이 기업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튜브가 투자, 제작관리해온 대형 프로젝트를 배급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결국 CJ는 이미 튜브에 투자한 150억원을 통해 <위 워 솔저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내츄럴시티> <튜브>의 배급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튜브로서도 얻은 것은 확실했다. 우선 CJ의 투자자금은 각 영화가 개봉된 뒤 정산할 때까지 상환하지 않아도 돼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을 수 있게 됐다는 점. 한때 씁쓸한 포기 결정을 내렸던 배급업에도 다시 뛰어들 여력을 얻게 됐다는 사실 또한 튜브의 주요한 이익이다. 이들 대형영화를 CJ가 배급하게 됨으로써, 튜브는 그때까지 조직을 정비하고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었기 때문이다.
CJ 인수 결렬, 배급업 지진출 준비
사실, 현재로선 배급업 재진출에 대한 튜브의 입장은 조심스럽다. 김승범 대표도 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하는 대신, “머지않아 구체적인 상이 공개될 것”이라는 정도로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튜브의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튜브가 배급사업에 다시 들어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 중으로 몇편의 일본영화를 시작으로 튜브가 배급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물론 튜브가 배급업으로 재진출하기 위해 나아가는 길에는 온갖 험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튜브를 무릎꿇게 한 자금. <집으로…>로 확보되는 70억원 정도의 현금도 거의 무한하다 할 만큼의 물량이 투입돼야 하는 최근 배급 전선에서는 실탄으로 사용하기에 부족하기 그지없는 규모다. 배급력을 결정짓는 라인업 또한 넘어야 할 과제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빅4’ 프로젝트를 모두 CJ에 넘겨버린 현재, 단 한편이라도 블록버스터를 확보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이외에도 자체적인 극장 라인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나 지난해 배급 포기 결정 이후 구조조정한 배급 관련 인력을 확보하는 문제 등도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이다. 또 지난해부터 삼성벤처, 동양, 유니코리아, CJ와 투자, 인수 협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기업의 신용도 역시 튜브의 발목을 붙잡을 만한 요소다.
튜브의 한 관계자는, 배급업에 다시 진출하게 될 것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금에 관해서는, 현재 한 창투사와 100억원 규모의 투자조합 설립에 관해 협의중이며,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투자함으로써 자금난을 해소할 생각이다. 즉, 이전처럼 초대형 프로젝트에 전액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부분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부담을 줄이겠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300억원에서 350억원의 자금 정도면 배급시장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라인업 문제는 자회사인 튜브픽처스를 강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1년에 10편 내외를 배급한다고 봤을 때, 우선 황우현 이사를 튜브픽처스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여기서 제작된 2∼3편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다. 한국영화 3∼4편을 다른 파트너들로부터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또 외화 3∼4편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까지 확보해놓아 라인업은 문제가 없다는 것. 한편, 극장은 궁극적으로 라인업이 해결해줄 것이고, 인력은 배급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꾸려나간다는 계획이라는 것.
충무로의 구도, 어떻게 바뀔 것인가
물론 적과 아의 구분이 따로 없으며 안팎의 상황에 따라 세력구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충무로의 환경을 고려할 때, 싸이더스와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노선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싸이더스가 확보하고 있는 감독들의 면면이나 기획·제작역량, 차승재 대표의 파워 등과 튜브의 블록버스터 분야에 관한 노하우, 과감한 투자 전략, 김승범 대표의 투자 수완 등은 어떤 식으로든 힘으로 전화해 충무로에서 발휘되리라는 점이다. 결국 양자가 어떤 전선에 서게 되건, 머지않아 ‘전세’는 바뀌어나갈 것이다. 충무로는 늘 움직인다. 문석 ssoony@hani.co.kr
▶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1)
▶ `중대결단` 앞둔 싸이더스와 튜브, 충무로의 지반이 들썩인다(2)
▶ 싸이더스, 튜브 출범이후 제작된 영화와 차기 영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