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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알카라스의 여름', 불행의 이유는 우리에게 있지 않다
김성찬 2022-11-02

복숭아 농장에서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이리스가 제법 규모가 큰 집으로 들어가면 할아버지를 포함해 부모와 고모들, 청소년기 사촌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 알카라스에 사는 이 대가족의 면면은 여느 농가의 정경과 비슷하다. 아이들은 무료함을 달래려 복숭아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10대 남매 중 오빠는 무표정하게 농가 일을 돕다가 저녁이면 친구들과 댄스파티를 벌이며, 부쩍 화장에 관심을 보이는 언니는 둔덕에서 친구와 요염한 춤을 추거나 이성의 눈길을 끌려고 애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리스의 아버지는 밤이면 복숭아를 훔쳐 먹는 토끼를 사냥하고 묵묵히 복숭아를 수확하며, 어머니는 문이 열린지도 모른 채 시아버지의 흉을 본다.

영화는 부침 없는 한 농가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태평해 보이기만 하는 이리스 가족은 하나같이 마음속에 근심과 불안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다. 지주의 요구로 곧 집을 내놔야 하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부모의 부양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리스의 외로움, 사춘기 어지러운 속내를 간신히 견디는 듯한 10대 남매의 무표정, 끝내 무너져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소름 끼칠 만큼 무심한 자연 풍광과 대비되며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결코 쉬이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어린 이리스부터 노년의 할아버지의 모습은 각자의 삶이 아니라 한 인간의 일생을 비추는 것도 같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그저 인간 삶의 무상함에 공감하기보다 이들이 지닌 근심과 걱정이 토지 소유 증명의 문제와 헐값에 복숭아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듯 자본주의의 비정한 논리가 깊게 관여한다는 점을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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