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내리쬐는 작은 마을, 알카라스
매 여름마다 복숭아를 수확하기 위해
3대째 모이는 솔레 가족은 찬란한 계절을 누린다
탐스러운 복숭아처럼 영글어가는 가족의 이야기
그 해 여름의 복숭아는 저마다의 기억으로 자란다
more
매 여름마다 복숭아를 수확하기 위해
3대째 모이는 솔레 가족은 찬란한 계절을 누린다
탐스러운 복숭아처럼 영글어가는 가족의 이야기
그 해 여름의 복숭아는 저마다의 기억으로 자란다
포토 (12)
동영상 (2)
네티즌 리뷰 (3명 참여)
리뷰 남기기-
egyption112023-02-08 17:32:217여름이란 계절은 다시 오겠지만 그들에게 언제나 선물 같았던 알카라의 복숭아 농장은...대기업에 맞선 솔레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안타까움...신고
-
1838033862022-12-16 10:16:257착취 사회에 저항하며 찬란한 자연을 노래하는 연대의 풍경.신고
-
thrill52022-11-12 22:21:4710야생과 인생의 경계를 구분짓는 것 중 하나가 식량 생산 능력이다. 야생more 신고
동물에 비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못한 체형과 체력 대신 야생 동물들이
생존 방식으로 취하는 목초지 탐색과 사냥의 위험성을 식량 생산으로
최소화 하는 게 인간들의 능력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들의 능력은 인간들
스스로 천시하고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을 향해 기득권들은 경멸의 눈초리를
쏴붙이기 일쑤였다. 기득권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식량을
농부들이 지옥 같은 고생을 통해 생산해 냈어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노골적인
신분제 시대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흙에서 생산하는 이들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건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니다.
인권 개념이 등장하고 식량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돼도 역시나 새로이
등장한 천민자본주의는 과거 기득권의 얼굴을 하고 농부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그들의 고생을 배신하며 착취하는데 골몰한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평화롭게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3대 집안이 농지에서 몇
달안에 쫓겨나야 하는 처지를 묘사한 작품이다. 쫓겨나야 하는 이유는
지주의 아들이 농사를 짓던 솔레 집안과 토지 거래를 계약한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 당신 내들은 내 땅을 내가 맘대로 할
것이니 나가라는 일방적인 착취를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 프랑코 정권하에서 지주의 신변을 보호해준 대가로 토지를 부쳐
복숭아 농사를 수 십년 간이나 지어 오다가 얄궃은 계약서라는 종이 한 장이
없어 그 지주의 아들이 일방적으로 토지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하겠다며 몇
달 안에 3대에 걸쳐 생존의 기반이 된 복숭아밭에서 나가라는 퇴거 명령은
자본주의가 행사하는 최악의 모습 중 하나다.
이런 모습은 작품에 등장하는 솔레 집안이 처한 위기만이 아니다. 근방
농장에서 모인 노인들이 마을 찻집에 모여 마실 나온 듯 포커 게임을 하다가
대화를 나누는 데 땅을 빼앗기다 시피 헐값에 넘겼다는 게 화제거 된다. 그런
말을 들은 작품의 주인공 어른은 표정이 굳어진다. 아울러 복숭아 농사를
고생하면서 지었어도 천민자본주의는 농부들의 고생을 착취하듯 정당한
가격으로 농부들의 고생을 보상하기는커녕 정가의 반값만 받으려는 행태로
인해 엄청난 위기에 처해있으며 이들이 하는 시위의 양상도 국내에서
농부들이 가끔 재배한 작물을 길거리에 깔아 뭉개는 것과 똑같이 자신들이
수확한 복숭아를 길바닥에 쏟아 트랙터로 깔아 뭉갠다.
한창 공부할 십 대 아들은 자기 딴에는 아버지를 돕겠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그런 아들한테 책이나 더 보라고 핀잔을 주고 돈을 마련하려 대마를
자기의 고모부랑 몰래 심었다가 아버지한테 걸려서 태워버리는 고통도
당한다.
배경이 스페인의 농촌일 뿐 한국이나 스페인의 농촌 두 군데 모두 현대
사회에서 농부, 농촌 사회를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는 전혀 다를 게 없다.
분명 그들의 고생으로 배불리 먹고 생존과 생계를 이어가는 데도
농업이라는 일 자체가 고되고 힘들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경멸의 대상이
되는 건 인간이라는 동물이 왜 존재 자체가 모순인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농업을 하는 이들을 단순히 도시에서 문제 풀이에만 익숙한 인간들이 그
문제 풀이를 못해 몸이 고생하는 농부가 됐다고 단정짓는 관점이나 농부를
비롯한 힘들게 식량 생산을 하는 이들과 극한 조건에서 노동하는 이들을
‘노동자’가 아닌 ‘노예’로 바라보는 관점이 아직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암울한 배경에서도 아이들은 말 그대로 해 맑게 논다. 어른들의 걱정이
뭐가 됐던지 간에 굳이 장난감이 없어도 성차 없이 노는 모습은 어린이들의
전형이다. 물론 그 도가 지나쳐서 남의 밭에 들어가 수확물을 망쳐 놓는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이 순수함을 잃고 적대적이 되어
가는 건 사회가 그만큼 순수보다는 ‘계산’을 내세우는 근본적인 삭막함을
이루는 세태가 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친환경을 표방하지만 태양 전지판은 농촌의 근간인 생산력이 있는 땅에서
식량 생산을 멈추게 하며 솔레 집안의 복숭아 밭을 빼앗은 지주 아들의
천민자본주의적 관점이 투영된 사물이다. 자부심까지는 모르겠으나 평생
수확과 그 수확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온 농부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전지판 관리자가 되라고 하는 건 착취와
동시에 자신들의 질서 안에서 그냥 고분고분 노예나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농촌을 배경으로 솔레 집안에서 수확하는 복숭아는 먹음직스럽고
풍요의 기쁨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 예쁜 모습인 황도가
조림을 위해 가족들이 병에 복숭아를 담는 순간 굴삭기가 복숭아나무를
무쇠 삽으로 내리찍는 모습에서는 눈물 없는 슬픔이 엄습하며 가족들이 그
모습을 일제히 바라보는 순간 영국의 영원한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영향 마저
떠올랐다.
농부들의 생산이 천민자본주의로만 바라봤을 때 ‘돈’이 안된다고 하지만
‘돈’보다도 이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인간들의 우매함으로 인한
자신들의 목숨을 스스로 옭아매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돈’은
교환가치지만 ‘식량’은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수상내역
-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금곰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