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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2세의 추락사 범인은 빈민 투숙객?
2002-05-31

그룹 U2의 보컬 보노가 공동 각본을 맡고 빔 벤더스가 감독을 맡은 <밀리언 달러 호텔>(2001)은 누추하고 보잘데 없는 사람들이 펼치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우화다.

새벽녘 화려한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뒷골목 ‘밀리언 달러 호텔’ 간판 앞을 한 사나이가 달려가는 첫 장면이 쓸쓸한 목소리의 주제가 <더 퍼스트 타임>에 실려 스크린을 압도한다. 한때 명성 높았지만, 이젠 갈 곳 없는 부랑아 같은 장기 투숙객들만이 머무는 이곳에서 한 사나이가 떨어져 숨진다. 그가 사실은 언론 재벌의 아들이었음이 밝혀지고 수사를 위해 미국 연방수사관이 호텔을 찾는다. 모자란 듯 보이지만 더없이 맑은 톰톰, 창녀처럼 보이지만 아픈 과거 때문에 세상과 문을 닫고 책에 중독된 엘로이즈, 자신을 비틀스의 숨겨진 다섯번째 멤버라고 주장하는 딕시, 깨끗한 영혼의 인디언 제로니모 등이 용의자다. 언론이 선정 경쟁을 벌이며 숨진 재벌 아들을 ‘빈민 속으로 들어간 위대한 예술가’로 탈바꿈시키고, 투숙객들은 이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려 한다. <밀리언 달러 호텔>의 기본 뼈대는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물이지만, 감독은 스릴러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하나같이 정신이 삐딱한 등장인물들은 “삶은 마법과 아름다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비뚤어진 세상을 향해 말하고자 하는 우화 속 주인공들로 꾸민다. 물론 벤더스 감독이 〈베를린 천사의 시〉나 〈이 세상 끝까지〉를 통해 말하려 했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가 군데군데 뿜어내는 분위기는 매력적이다. 특히 투숙객들이 모두 모여 떠드는 장면보다 화려한 도시로 난 조그만 창문 밑에서 톰톰(제러미 데이비스)과 엘로이즈(밀라 요보비치)가 순수한 사랑을 나눌때 영화는 더욱 빛난다. 복합적인 성격의 역을 해낸 멜 깁슨의 연기도 평소와 다른 모습이다. 무엇보다 벤더스 감독과 <이 세상 끝까지>에서 음악작업을 함께 했던 U2의 보노는 자신이 원래 아이디어를 낸 이 영화에서 최고의 음악을 선사한다. 31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