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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민도 슬픔도, 인생의 재료 삼아 맛있게 요리하기, '말아'
조현나 2022-08-24

어수선한 식탁과 밀린 빨랫거리들.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 주리(심달기)가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할 찰나, 부동산 중개업자가 주리네 문을 두드린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중개업자는 ‘엄마가 집을 내놓았는데 몰랐냐’고 반문한다. 엄마 영심(정은경)은 주리에게 ‘편찮으신 할머니에게 가 있는 동안 자신의 김밥집을 운영해달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리의 집을 팔아버리겠다고 말한다. 장을 봐 재료를 준비하고 서툴게나마 김밥 마는 연습을 하며 주리는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할 준비를 한다. 전염병의 유행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주리가 엄마의 김밥집으로 출퇴근을 하며 조금씩 과거의 일상을 되찾는다. 우연찮게 교통카드를 두고 온 취준생 이원(우효원)을 도와주면서 변한 일상을 공유할 새로운 인연 또한 생긴다.

<말아>는 곽민승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팬데믹 시대의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웅덩이처럼 집에 혼자 고여 있던 주리가 일을 시작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소소한 행복을 되찾아가는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특별할 것 없는 루틴이 삶을 영위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새삼 깨닫고,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에 비춰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는 주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직관적인 제목과 마찬가지로 주리의 일상을 사족 없이 명쾌하게 그려나가는 점 또한 영화가 지닌 장점이다.

원톱 주연인 심달기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듯, 담백한 영화의 스토리에 자신의 독특한 리듬을 더해 극의 분위기를 형성해나간다. <말아>의 유쾌한 톤은 심달기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람의 언덕> <윤희에게> <내가 죽던 날> 등에 출연한 정은경은 심달기의 곁을 지키며 엄마 영심을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김밥집을 방문하는 다양한 손님들을 통해 변주를 꾀하는 점도 부각할 만하다. 특히 취준생 이원 역의 우효원은 매력적인 페이스가 눈에 띄는 신예 배우로, 심달기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연기를 능숙하게 펼친다. 곽민승 감독은 전작 웹 시리즈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에서 함께한 정준영 음악감독, 김진형 촬영감독과 <말아>에서 다시 한번 합을 맞췄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헬로우 고스트> <써니> <평양성> <부러진 화살> 등에 참여했던 정준영 음악감독은 <말아>의 경쾌한 분위기를 오롯이 선율에 담았다. <흩어진 밤> <아워 미드나잇>의 촬영을 담당했던 김진형 촬영감독은 주리와 주변 관계들, 사물들을 화면에 감각적으로 담아낸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문,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장편 부문에 초청됐다.

“나 일 구하고 있어 엄마 때문에. 이제 엄마한테 손 안 벌리고 싶어서. 그니까 가게 계속 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가게를 내놓으려 한다는 엄마에게 주리가 하는 말. 엄마 대신 ‘신나라 김밥’을 운영한 짧은 시간 동안, 철없던 주리는 눈에 띄게 훌쩍 자라 있었다.)

CHECK POINT

<리틀 포레스트>(2018)

매일 같은 시간 김밥 가게로 출퇴근하는 주리의 모습은 현실에 치여 고향으로 내려간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김태리)을 떠오르게 한다. 직접 일군 채소와 과일로 손수 음식을 지어먹으며 안정을 찾는 혜원은 마찬가지로 김밥을 말며 일상을 회복하는 주리와 닮았다.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건 스스로를 짧게나마 돌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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