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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배우 김대건, '묘연하고 비밀스러운'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2-08-17

배우 김대건은 2015년 단편영화 <캐치볼>을 시작으로 이야기 심연에 숨은 감정을 정면으로 응시해왔다. 그는 미스터리물과 단연 가까워 보인다. 10년 전 자신을 유괴했던 범인을 다시 마주한 민구의 애수(<호흡>)를, 정체를 숨긴 채 진실을 묵시한 거북이의 은밀함(<왓쳐>)을, 학대 사실을 폭로하는 증인 진우의 단호함(<닥터로이어>)을 체화하며 다음 챕터를 여는 열쇠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살다 보면 마음속에 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잔여물이 남기 마련이다. 연기는 그 모든 것을 밖으로 배출해내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직면하도록 한다.” 연기가 자신에게 남긴 것을 설명하는 그를 보며 <파로호>의 호승이 배우 김대건에게 남긴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 <파로호>의 호승은 “남이 지어준 이름은 버리고 산 지 오래됐어요”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한다. 개인사를 알 수 없는 인물에 어떻게 접근했나.

= 시나리오에도 호승의 전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자칫하면 인물을 분위기로 접근할 것 같았다. 사실 배우로서 그런 방식은 걱정이 앞선다. 인물의 말과 행동에 나만의 타당성을 부여하지 못하면 뜬구름 잡는 방식으로 연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 호승을 신 같은 존재로 접근하려 했다. 도우(이중옥)가 사회적 사슬에 묶여 심리적 억압을 강하게 받는 인물이라면, 호승은 그 사슬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도우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도와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조금씩 이해가기 시작했다.

- 호승은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신세지고는 못 산다더니 점퍼를 선물 받았다고 도우를 덜컥 끌어안고,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우악스럽게 웃어 공포감을 준다.

= 내가 출연한 작품을 잘 보는 편이다. 모든 연기가 나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니터링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파로호>는 그 과정이 유독 힘들었다. 호승은 나와 너무 많이 다르다. 호승과의 교집합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기괴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어쨌든 제3자의 눈에 비친 호승은 이상한 사람이다. 타인의 호의에도 “이거 버리는 거 주는 거예요?”라고 마뜩잖게 대답한다든지, 갑자기 껴안는다든지. 나는 그런 부분을 철저히 호승의 입장에서 바라보려 했다. 이상하게 보일지언정 도우의 경직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을 던지는 거라고 유연하게 접근했다.

- 스릴러 장르인 만큼, 범인이라고 완전히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의심을 거둘 수도 없는 영점 조절에 굉장히 신경 쓴 것 같다.

= 그게 가장 고민이 됐다. 그런데 호승이 범인인지 아닌지 너무 골몰하면 나조차 그 진위 여부에 갇힐 것 같았다. 그래서 호승이 범인으로 지목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자유롭게 임했다. 임상수 감독님은 디렉팅이 굉장히 디테일해서 촬영 전 배우의 몸짓과 시선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다만 호승에게만 유독 열어놓는 편이었다. 현장에서도 항상 촬영 직전에 “자유롭게 하세요, 자유롭게!”라고 외쳤다. 그 말이 호승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 4부작 단막극 <미쓰리는 알고 있다>에서는 의문의 죽음을 밝혀내고, OCN 스릴러 드라마 <왓쳐>에서는 마지막 반전의 열쇠가 되었다. 심리극과 가까워 보인다.

= 감독님들이 내 얼굴을 그런 반전을 가진 인물로 바라봐주시는 것 같다. 밋밋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쌍꺼풀이 없어 매서워 보이기도 한다. 이런 요소가 비밀을 감춘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배우로서 감사한 일이다. 또 스릴러 심리극만의 재미가 있다.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미묘한 서사를 준비하고 탐구할 때 즐거움이 크다.

-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새초롬한 첫사랑 역할도 잘 그려냈다.

=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품마다 공들여야 하는 노력의 방향이 모두 다르다. 그런데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작품 분위기부터 내가 연기한 영수까지 모두 무해하고 MSG라곤 조금도 첨가되지 않은 말간 느낌이었다. 무언가 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아도 내 안의 것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 어릴 적부터 육상 선수로 활약하고 비보잉을 배우는 등 몸을 써본 경험이 많다. 그 시간이 연기하는 데 어떤 영양분이 되었나.

= 지금까지 액션 신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데 MBC 드라마 <닥터로이어>에서 건물을 뛰어넘으며 역동적으로 싸우는 장면을 촬영해야 했다. 액션스쿨에서 고난도 동작을 익혔는데 그 과정에서 어릴 적 육상과 스피드스케이팅, 비보잉을 배웠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몸으로 합을 맞추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결과물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처음 연기를 배울 땐 이런 경험이 오히려 방해가 됐다. 연기는 감정의 본질을 고민하고 자연스럽게 체화해야 하는데 자꾸 몸으로 과장해서 드러내려 했다. 그래서 연기 선생님으로부터 “네가 춤을 춰서 그렇게 손을 쓰는구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뒤로 감정을 가꿔나가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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