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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흰색과 미색의 차이. 그 엷은 틈새에서 발견한 영화의 가능성 '베르히만 아일랜드'
김예솔비 2022-08-03

발트해의 작은 섬 포뢰는 시네아스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장소다. 20세기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 태어나고 여생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베리만을 선망하는 영화감독 커플인 크리스(비키 크립스)와 토니(팀 로스)는 각자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포뢰섬을 방문한다. 두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베리만의 존재감이 진득하게 닿아 있다. 숙소 옆에는 베리만 영화를 35mm 필름으로 관람할 수 있는 작은 상영관이 있고, 두 사람이 쓰는 침실은 베리만의 <결혼의 풍경>에 등장했던 바로 그 방이다. 창작의 영감을 종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완전한 풍경을 바라보며 크리스는 아름다움과 동시에 미묘한 압박감을 느낀다. “너무 평온하고 완벽해서 숨이 다 막혀.” 반면 토니는 자신의 작업을 순탄하게 해내며 크리스에게 위안이 되지 못한다. 결국 크리스는 정해진 길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섬을 배회하면서 미처 쓰지 못했던 시나리오의 빈자리를 완성하려 하고, 그녀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영화 속 영화’로 현현한다.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두개의 구조를 가진 영화다. 영화 속 영화는 크리스와 닮은 듯 다른 에이미(미아 바시코프스카)라는 인물이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뢰섬을 방문한 사흘간을 그리고 있다. 섬에서 만난 전 연인 조지프(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와 에이미 사이의 출렁이는 균형이 크리스가 가진 불안과 느슨하게 공명한다. 크리스와 에이미 모두 극중에서 영화감독으로 등장하기에 두 사람의 면모는 감독인 미아 한센뢰베의 자전적 요소와도 겹쳐 보인다. 베리만이 왜 빛과 행복에 관한 영화를 만들지 않았는지 한탄하는 크리스의 반문은 감독 자신의 염원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 본연의 심연에 대한 혹독한 영화를 만들었던 베리만과 달리 미아 한센뢰베는 영화 속에서 픽션과 현실을 부드럽게 교차시키며 가능한 빛의 순간을 모색한다. 전작인 <다가오는 것들>에 이어 사건들간의 설명할 수 없는 관계, 연인 사이의 섬세하고 교묘한 심리적 긴장을 시적으로 포획해낸다.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관람을 위해 베리만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정교한 지식을 그다지 요하지 않는다. 미아 한센뢰베는 베리만의 영화가 가진 형식과 주제를 섣불리 인용하기보다, 베리만을 향한 시네필리아적 정서가 세계의 전체인 장소를 그리고, 그 안에 발을 들인 사람의 내적인 반응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영화는 위대한 영화감독의 장력이 한 여성 창작가의 내면에 일으키는 파문을 응시한다. 창작의 통증 속에서 긴 방황을 마무리 지으려는, 찬란한 종결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마음의 온기가 영화 끝에 남는다.

“사랑하니까. 이유는 모르겠어. 그게 문제야”(크리스는 베리만의 영화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럼에도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베리만에 대한 사랑을 탐문하는 과정은 그녀가 자신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경로와도 같다.)

CHECK POINT

<오마주>(2021)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 역시 앞선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게 되는 이의 여정을 그린다. 영화감독 지완(이정은)은 한국의 두 번째 여성감독이었던 홍은원의 60년대 영화를 복원하는 일을 의뢰받는다.

연이은 흥행 실패와 아내이자 엄마로서 살림을 돌보지 않는다는 압박으로 슬럼프에 빠져 있던 지완은 영화의 유실된 필름을 찾고 파편들을 이어 붙이며 자신의 희망까지 복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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