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박은빈의 ‘우영우’를 보여주다…25년 연기 내공의 깊이를
한겨레제휴기사 2022-07-19

[한겨레]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지닌 천재 역할 호평 쏟아져

광고·현대극·시대극 섭렵하며 배우 25년간 성실하게 실력 쌓아

드라마 역사에 남을 캐릭터 호연, 가장 주목받을 배우로 떠올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22년 현재 한국 드라마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배우라면 단연 박은빈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NA)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이 드라마를 이끄는 배우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6년 만 네살 때부터 연예 활동을 시작해 서른 인생의 대부분을 연기에 바친 이 배우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들의 기쁨도 크다.

박은빈이 처음 대중에게 각인된 영상은 광고였다. 2005년 한 보험회사의 시에프(CF)에서 박은빈은 갓 청소년기에 접어든 소녀의 들뜨고 불안한 설렘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었다.

드라마 <청춘시대>의 한 장면. JTBC 제공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한 장면. MBC 제공

드라마 연기로는 2007년 <태왕사신기>에서 신녀 기하의 아역을 맡아 호연하며 눈 맑고 생각 깊은 첫사랑으로 기억되었다. 그 후 시대극부터 현대극, 연극, 영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박은빈은 외유내강한 성격의 기품 있는 소녀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성인이 된 후의 박은빈은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작인 <프로포즈 대작전>(2012)의 함이슬, <구암 허준>(2013)에서 허준의 아내 다희, <비밀의 문>(2014)에서 복합적인 면모의 혜경궁 홍씨 역에 도전하며 연기력을 펼쳤지만, 대중에게는 우아하고 지고지순하며 시련에 강한 여성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배우의 개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미지가 고정될 수도 있는 시점이었다.

드라마 <오늘의 탐정>의 한 장면. KBS 제공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한 장면. SBS 제공

드라마 <청춘시대>의 한 장면. JTBC 제공

이때 연기 인생의 분기점이 된 배역이 <청춘시대>(2016)의 송지원이다. 셰어하우스 벨에포크의 일원이자 학보사 기자인 송지원은 그 전까지 박은빈이 보여준 역의 대척에 있는 인물이었다. 엉뚱하고 입이 걸고 귀신을 본다고 주장하는 송지원은 욕 한마디 입에 담지 못하는 배우 자신의 성격과는 반대지만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깊이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면에서는 닮았다. 대학에서 심리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박은빈은 여러 인터뷰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해보고 싶었다고 밝힐 만큼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고 “곰곰이, 여러 번 생각해보았다”는 말을 자주 쓴다. 송지원의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통찰력은 드라마 <청춘시대> 시즌 1·2의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배우 박은빈의 세계도 넓혔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한 장면. SBS 제공

드라마 <이판사판> 포스터. SBS 제공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박은빈은 <이판사판>(2017)과 <오늘의 탐정>(2018)에서 여전히 당찬 역을 이어간다. 실수도 있었지만 대체로 영리하고 열의가 넘치는 인물들이었다. 다시 그런 이미지가 반복되나 싶을 때, 박은빈은 한발짝 나아가 <스토브리그>(2019)의 최연소 여성 운영팀장 이세영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그는 덩치가 큰 야구선수 역의 배우들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 배우의 가장 큰 장점인 또렷한 발음과 시원한 발성이 돋보이는 배역이었다. 극 중 술집에서 선을 넘는 야구선수의 잔을 빼앗아 벽에 던지며 “선은 네가 넘었어”라고 말할 때의 박력은 널리 회자될 만큼 강렬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SBS 제공

드라마 <청춘시대> 포스터. JTBC 제공

<스토브리그>의 성공 이후 그의 선택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의 채송아였음을 의외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드라마가 잔잔하고 내향적인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래식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대생 간의 공감과 위로, 사랑을 다룬 이 다정한 드라마에서 박은빈은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받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채송아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2020년 <에스비에스>(S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이는 그의 연기철학과도 일치한다. 박은빈이라는 배우의 깊이를 보여주기에 가장 알맞은 배역이었다.

드라마 <연모> 포스터. KBS 제공

드라마 <연모> 포스터. KBS 제공

2021년의 <연모>는 퓨전 역사극의 변주를 시도한 작품이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남장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휘라는 인물은 용맹과 불안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물이었지만, 박은빈은 특유의 힘 있는 딕션과 내면의 에너지로 작은 체구에서 오는 물리적 편견을 극복해냈다. 또한 <연모>는 시청률(12.1%로 종영)이나 넷플릭스 순위(비영어권 글로벌 최고 순위 2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그가 극을 이끄는 무게감이 있는 배우라는 사실을 확고히 굳힌 작품이기도 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SBS 제공

어떤 역도 딱히 더 쉽다 말할 순 없지만, 2019년 이후 그가 해온 모든 배역은 전문지식이나 기술, 체력훈련이 필요했다. 여기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가 더해진다. 장애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인 만큼 절제되고 신중한 재현이 요구되고, 엄청난 대사량과 미묘한 감정 묘사, 세심한 유머까지 소화해내는 역이다. 드라마가 진행 중이기에 평가는 아직 이르지만, 우영우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역사에 깊이 남을 것이며, 이를 연기한 박은빈은 배우로서 다른 차원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벌써 나돌고 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유튜브 화면 갈무리

기억 속에 늘 소녀일 것만 같던 그는 벌써 배우 생활을 한 지 25년이 넘었다. 그동안 50편에 가까운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숫자와 경험, 실력이 비례하지는 않지만, 성실함은 증명된다. 그는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고 열정을 품은 사람만이 성실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보여주는 배우이다. 성실한 사람만이 펼쳐낼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기대한다.

박현주 작가 겸 드라마 평론가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