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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임 씬
2001-03-24

프랑스의 투캅스, 일상 속으로

2000년, 감독 프레데리크 쇤되르퍼 출연 샤를 베르링 장르 스릴러(엠브이넷)

프랑스 영화적이라는 말이 있다. 이렇다할 정의는 없지만, 또 누구나 공감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긴, 나라마다 저마다의 독특한 영화적 아우라가 있게 마련이지만, 유독 프랑스영화에선 그것이 강조되는 편이다. 이를테면 한없이 숙연하고 무거운 분위기라거나 사소한 일상조차도 다르게 해석해내는 시선과 행위의 차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러한 감성들에 특별한 비교우위를 두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이러한 프랑스영화의 묘한 감성이 이채로운 재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리고 <크라임 씬>은 바로 그러한 감성으로 무장한 프랑스영화이다.

프랑스의 한 외곽도시에서 17번째 연쇄살인이 발생한다.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년의 나이가 짐스러워보이는 고메즈 형사와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둔 파비앙 형사가 투입된다. 이 영화 <크라임 씬>의 형식적 외관은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는 스릴러 장르이지만, 정작 영화의 관심은 장르적 사건이나 컨벤션들을 스쳐지나간다. <양들의 침묵>과 같은 할리우드 장르영화에서 흔히 목격되는 가해자와 해결자 사이의 정교한 두뇌게임이나 강한 흡입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심리적 긴장감도 이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르적 구조의 허술함이 연출력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감독은 애초부터 관객을 연쇄살인의 사건현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두명의 형사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삶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영화는 연쇄살인의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복잡한 살인의 정황과 해결의 단초들이 아무런 연관성 없이 제시되는 대신 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두명의 형사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노년의 고메즈 형사는 새삼스레 자신이 가족과 일에서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며 낙담하더니 불쑥 돌연사해 버린다. 예기치 않게 동료를 잃은 파비앙 형사의 일상은 그래서 더욱 허탈해진다. 그러더니 사건은 뜬금없이 해결되어버리고, 범인의 살해동기조차 별 설득력이 없다. 그런데 <크라임 씬>의 매력은 바로 그런 데 있다. 장르적 재미를 기대한다면 여지없이 배반당한 느낌을 가질 테지만, 대신 삶에 지친 두명의 형사의 일상을 쫓아가는 또다른 긴장감이 영화엔 존재한다. 게다가 그 호흡을 영화의 후반부까지 밀고가는 연출력 역시 탁월한 편이다. 이것은 차라리 최근 <크림슨 리버>로 자신의 영화적 이력을 백보 후퇴시킨 마티외 카소비츠의 전략보다 더 현명해 보이기까지 하다.

정지연/ 영화평론가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