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의 영화를 내놓은 감독 지완(이정은)은 미래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다. 신작 <유령인간>의 성적이 좋지 못하고, 오랜 기간 함께한 프로듀서가 앞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 선언해서다. 아내이자 엄마인 그의 입장도 녹록지만은 않다. 아들은 틈만 나면 밥 먹고 싶다 칭얼대고, 남편은 꿈을 좇는 아내와 결혼하면 외롭다 투덜댄다. 그런 지완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든다.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재원의 <여판사> 필름을 복원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 것이다. 1960년대에 제작된 <여판사> 필름은 검열로 군데군데 잘리고, 일부 음성은 유실되었다. 지완은 영화의 사라진 조각을 찾기 위해 홍재원 감독의 흔적을 좇기 시작한다. 홍 감독의 딸로부터 시나리오 원본을 구하고, 홍 감독과 영화계에 투신했던 이들을 만나 회고를 전해 듣는다. 지완은 홍 감독의 발자취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영화와 여성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분투하던 그의 모습으로부터 자신의 현재를 투영해본다.
신수원 감독은 2011년 <레인보우>를 발표하고 두 번째 영화를 만들지 고민하던 무렵 홍은원 감독에 대해 알게 됐다. 1960년대 남성 일색의 영화 현장에서 15년여를 활동하다 마침내 메가폰을 잡은 홍은원 감독의 궤적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이를 영화 제작의 동력으로 삼았다. ‘찬란한 시절을 보낸 여성 필름 메이커들은 왜 사라졌을까’라는 질문이 시나리오 집필에 거름이 된 이유. 신수원 감독은 자전적 이야기를 내러티브의 골조로 삼고, 홍은원 감독의 생애를 각색한 홍재원 감독의 서사 그리고 홍 감독의 뒤를 좇으며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는 지완의 시점을 겹쳐놓음으로써 한국 여성감독의 초상을 그린다.
신수원과 지완, 홍은원과 홍재원의 목소리는 실재와 재현을 넘나들며 교차한다. 이제 더이상 무엇이 실재이고 각색된 내용인지 중요치 않다. 그보다 1960년대와 2020년대 사이 거대한 시간의 파고를 건너 전해지는 진심에 귀 기울여야 할 차례다. 과거이며 현재이고, 너이며 나인 존재들이 시간을 건너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과정이 다정하게 펼쳐진다. <오마주>는 자칫 지완의 시점으로 경도될 수 있는 내러티브에 추리물 성격을 더하면서 균형을 잡았다. 지완의 곁을 떠도는 그림자는 누구인지, 홍 감독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완은 <여판사>의 필름을 구할 수 있을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틈틈이 끼어드는 환상적인 미장센은 여성감독들의 낙관적인 미래를 은유적으로 비춘다. 극의 주역이자 매개자 역을 충실히 수행하는 이정은의 담담한 연기 역시 영화의 완성에 큰 몫을 해낸다.
"환갑은커녕 오십도 못돼서 내게는 한뼘의 공간도 없어진 현장이 되었어. 홍일점 여감독, 빛 좋은 개살구. 내가 그곳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오마주> 중 홍재원 감독의 내레이션)
CHECK POINT
<레인보우>(2011)
<오마주>의 지완은 <레인보우>의 지완과 연결돼 있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지완은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고쳐 쓴다. 그러나 5년이 넘도록 입봉은 요원하고, 엄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가족과는 줄곧 부딪힌다. 첫 영화를 만드는 순간부터 끝없는 불안과 맞서는 여성감독의 고립된 서사는 <오마주>에 이르러 연대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