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 들어간 노래들을 통해 사람들의 귀에 특유의 차분한 느낌을 남겼던 ‘별’이 두 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두 번째 앨범이라기보다는 두 번째 ‘사운드/그래픽 복합체’를. 제목은 <너와 나의 20세기>. 내성적인 테크노라고나 할까.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인파 계열의 미니멀한 신시사이저 소리와 샘플링되어 반복되는 소음, 전화 목소리처럼 필터 처리된, 멀리서 들리는 남자의 속삭임을 연상시키는 보컬이 어우러진 그 노래들은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확실히 우리가 기다리던 소리의 하나였다. 내성적이며 남들 귀찮게 떠들지도 않고 굉장히 개인주의적이며 도시적인 아이들, 어른들이 보기엔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 못지않게 못되게 구는 아이들의 소리 말이다. 이 소리들의 공감대는 그런 식으로, 주류 문화판의 기대나 관심과 전혀 상관없이, 약간은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조용하지만 굳건하게 형성된다. 별의 차분하고 영롱한 전자 사운드에서는 어떤 ‘독한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들은 꼭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몇 트랙을 제외하면,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도 그리 듣기가 쉬운 음악들은 아니다. ‘듣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데에는, 통상 두 방향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너무 복잡할 때, 다른 하나는 너무 단순할 때. 별의 음악은 후자에 가깝다. 유행하는 가요를 들어봐라. 적당히 ‘복잡하다’. 그래서 듣기가 쉽다. 반면 단순한 음악은, 좋든 나쁘든 간에 약간은 그 지루함을 견뎌야 의미가 살아온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을 일정하게 훈련시키는 음악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소음에 잔향을 입혀 매우 미니멀하게 반복시키는 별의 앰비언트 사운드 역시 그렇다.
그러나 그 소리들이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들의 사운드와 뗄 수 없는 사운드 바깥의 요소가 있음을 안다. 그것은 바로 ‘그래픽 디자인’이다. 월간 <뱀파이어>라 명명된, 그러니까 일종의 잡지 속에 이들의 CD는 들어 있다. 세련되고 미니멀한 기호들, 아주 세심하게 골라지고 배열된 타이포, 흩어져 있는 것 같지만 빈틈없는, 뜻은 묘하게 지워진 사진들, 그것들이 사운드를 감싸고 있다. 사운드를 다루는 방식에는 거칠다 싶은 구석이 있어도 이들이 그래픽을 다루는 기술은 프로페셔널하다. 시각적인 것들이 사운드의 배경이 아니라 차라리 사운드가 그것들의 배경이다. 곡명들도 매우 그래픽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80845 , 80845 등으로 이름 붙여진 열개의 노래들은 시각적인 기호라는 봉지에 담긴 사운드 과자의 부스러기들 같다.
그 잡지를 뒤적이며, 모호하게 흐르는 이들의 앰비언트 사운드를 음미하면 우리는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상황’ 속에 있게 된다. 그것이 앰비언트의 본질이기도 하다. 하긴 별의 정체성 자체가 조금은 모호하다. 사람들은 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밴드라는 어휘를 쓴다. 별의 정체는, 정확하게 말하면 신비스러운 것은 아니다. 대신 그래픽적으로 변환되어 있다. 별은 그러한 변환 속에 자신과 사운드를 집어넣고 있다. 이 대목에서 정체성은, 확실히 별 의미가 없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