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리는 매향리의 옛 지명이다. ‘화음’은 실내악단 이름. 오래되고 따스한 마을. 향을 묻는 마을. 그림 속에 음악이 들리고 음악 속에 그림이 보인다….
소리와 향기와 따스함과 보임.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이 어우러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반도 이남에서 이 말들이 만나는 데 장장 50년하고도 1년이 더 걸렸다. 물론, 전쟁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군 폭격기들이 매향리 앞바다 1.6km 농섬에 연습사격을 개시했다. 그거야 전쟁통이니 어쩔 수 없었겠다.
1954년 미군이 이 지역에 주둔했는데, 그것 또한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웬걸. 1979년, 전쟁 끝난 지 오래고, 미군 철수를 해도 벌써 해야 했을 판에 이곳에 해상 690만평, 해안-육지 38만평의 ‘아시아 최고’ 공군 사격장이 조성된다. 그리고 그 이래, 미 공군기의 사격연습 굉음은, 한마디로 주민들의 ‘귀를 통해 온 정신과 육체를 갈기발기 찢는’ 수준이었다.
주민들의 오랜 투쟁 끝에 2001년 사격장의 ‘인권 침해와 위법’이 법원에서 인정되었으나 한국인을 쥐새끼 보듯 하는 미국의 오만 때문인지, ‘아시아 최고’라는 호칭이 흡족한 역대 당국자들의 자부심 때문인지 사격장 폐쇄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매향리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사실 나는 좀 걱정했었다. 소리에 질린 사람들인데, 아무리 음악이 소리의 예술이라지만…. 그러나 기우였다.
정동 성공회 대성당은 침묵이야말로 가장 경건한 신의 말씀이라는 성당의 미학을 매우 겸손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표현한 구조다. 바린톤 테너 최승원은 간절의 극치, 바리톤 우주호는 광대한 넘침, 소프라노 김인혜는 단아한 처녀성(性)이었고, 실내악단 화음은 그 모든 것을 교직하는, 고단한 생애의 깊은 비단결이었다.
간절과 처녀성이 일상을 성스럽게 만드는 프랑크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를 거쳐 출연자 전원이 함께 부르고 연주한, 느리고 장중한 대단원, 6·25 이후 50년 동안의 생애가 영욕을 벗고 아름다움의 계단으로 다시 쌓여가는 듯한 <고향의 봄>에서 마침내 향을 묻는 오래된 따스함의 ‘음악’이 복원되었다. ‘畵’는,‘畵音’뿐이었는가?
아니다. 이 행사를 주관한 것은 화가 임옥상이다. 공연이 끝나고도 음악은 그가 ‘동원’한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이어졌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