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스, 정류장>의 음악은 루시드 폴이 맡았다. 처음에 ‘미선이’라는 인디밴드의 리더로 출발한 조윤석은 밴드가 군대문제로 일시적으로 와해되고 나서 솔로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루시드 폴’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얻었다. 지난해 발매된 루시드 폴의 데뷔음반은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멜로디로 풀어냄으로써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때의 개성이 이 O.S.T 음반에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
그의 음악은 한편으로 ‘어떤날’ 같은 밴드로부터 이어져오는 서정적인 포크음악에 맥이 닿아 있다. 내성적인 보컬 스타일과 자기토로 형식의 가사, 그리고 텐션 노트를 짚으면서 굴곡있게 이어지는 아르페지오 기타가 그의 음악을 지탱하는 중심 요소들이다. 루시드 폴은 거기에 트립합, 브릿팝 등의 서구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리듬 패턴과 노이즈들을 가미하면서 그 특유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Everything but the Girl’과 같은 일렉트로니카 그룹의 서정적인 측면을 루시드 폴은 적극적으로 참고하고 있다. 트립합 리듬을 약간 밝은 분위기로 칠하고 거기에 어쿠스틱 기타의 부드러운 스트로크가 가미되면 루시드 폴만의 어떤 색채에 다다른다.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가 소속된 라디오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녹음 엔지니어도 함께하고 있는 고기모가 필요했다. 그는 샘플된 드럼 사운드가 포크적인 발상의 선율 패턴과 충돌하지 않고 잘 결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큰 스튜디오가 아니라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말이다.
이번 사운드트랙 앨범에서는 라디오 레이블에 소속된 다른 뮤지션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스웨터의 여자 보컬리스트 이아립이 메인 보컬을 맡아준 트랙도 있다. 악기의 사용도 좀더 풍부해졌다. 미선이 때 들려주었던 록적인 분위기도 섞여 있다. 그러나 기타 노이즈를 쓰더라도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서정성은 그리 변하지 않는다. 약간은 중산층적인 나른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의 스타일은 때로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의 가사 속에 숨겨진 ‘아픔’ 같은 것들이 나르시스트적인 자기 고백으로 비칠 때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갖는 잠재력은 매우 크다. 인디 신에서 도출된 음악의 어떤 부분이 ‘대안가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앞으로를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떨어졌을 때,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소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와 동화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최선이겠으나 그게 그리 쉽지 않은 것은, 주변에 감독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영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주문과 입방아 속에서, 그리고 영화의 내러티브가 주는 압력에 못 이겨 음악가는 사라지고 익명의 O.S.T만 남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의 음악을 맡은 루시드 폴은 한편의 영화음악을 자기 스타일로 채색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우선은 열일곱 소녀와 서른둘 아저씨의 사랑이야기라는 멜로드라마가 그의 스타일과 잘 맞았다. 영화음악가의 캐스팅도, 배우의 캐스팅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