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흥건하고 눈물도 가끔 있는 <피도 눈물도 없이>는 류승완 감독의 첫 본격 장편영화이다. 돈가방의 행방과 함께 얽히고 설키는 남녀 배우들의 처절한 액션이 펼쳐지는 이 영화의 음악은 한재권이 맡았다. 그는 지난번에 <킬러들의 수다>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류승완 감독과 <다찌마와 Lee>에서도 호흡을 같이했다. 이번 영화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느낌은 ‘거친 맛’이다. 극장에 설치된 5.1 채널 스피커의 상황에서는 조금 지나치게 거칠게 들리지만 나름대로 맛이 있다. 한재권은 거칠게 샘플링된 드럼 루프와 트립합적인 노이즈를 아래위로 배치한다. 그 사이에서, B급 형사물에 자주 쓰이는 애시드 재즈풍의 펑키한 리프가 샌드위치되고 있다. 그 리프는 중저음부에서 때리듯 울리는, 강하고도 단순한 피아노에 의해 고집스럽게 반복된다.
한재권은 <킬러들의 수다>에서 누이르에서 오페라의 느낌까지를 다양하게 아우르는 음악을 선보였던 반면 이번에는 B급 누아르의 느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좀더 집중적이고, 일관성 있는 흐름이 발견된다. 어떻게 하든 다 장단점이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 방향으로 집중되는 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스타일이 확립되어가는 단계에 있는 영화들에는 시야를 넓게 펼치기보다 올곳이 파들어가 건더기를 건지는 게 더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음악 프로듀싱은 <정사> <미술관 옆 동물원> <간첩 리철진> <송어> 등에서 실력을 보여준 이영호가 담당. O.S.T에는 영화에 쓰였던 오리지널 스코어와 몇곡의 선곡된 노래들이 들어 있다. 블러의 <Song2>, 그리고 황보령의 노래 두곡이 보인다. <선악과> <sunshine> 모두 그녀의 지난번 앨범 <태양륜>에 수록되어 있다. 황보령은 <클럽 버터플라이>의 O.S.T에도 두어곡 수록하여 이미 영화음악 팬들에게 낯설지 않은 인디 뮤지션이다. 상실감에 젖어 있는 내면적이고도 서정적인 톤을 갖춘 황보령의 노래는 이 영화에서는 특히 후반부의 분위기에 잘 붙는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확립된 스타일이 없다. 어느 장르건 아직은 실험단계고 모방단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인디’, 즉 독립영화의 감수성이 장편이 되면 B급 액션의 어법을 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생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디적인 센스나 문제의식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의 B급은 짤없이 까대고 깨부수지만 역시 주변부의 쓰레기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고 있다. 사람들은 인디를 너무 어렵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때로 인디는 쓸데없이 들어간 ‘어깨 힘’을 빼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류승완이 그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라 할 만하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