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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2001-03-09

아주 특별한 전령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O.S.T / 록 레코드 발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착하고 순진한 영화다. 그런데 그게 좀 지나쳤던지 관객도 너무 순진하게 취급하고 있는 느낌이다. 뒤로 갈수록 더욱 그런 인상인데, 그래서 흥미진진할 뻔했던 내러티브가 후반부에서는 좀 지리멸렬해진다. 점점 가지를 쳐 나가게 돼 있는 ‘사랑나누기’(pay it forward)라는 것이 구조의 축이다. 사랑나누기의 첫 기점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 기점을 역으로 추적해 들어가는 기자를 등장시킨 이중구조를 취하고 있으므로 나중에 그 둘이 만나게 되어 있다. 사랑나누기를 시작한 중 1년생 아이도, 그것을 추적하는 기자도, 또 그 전개와 역추적을 바라보는 관객도 각기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가능성’의 지점들을 모색한다. 그 가능성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음악을 맡은 토머스 뉴먼은 이미 <아메리칸 뷰티>에서 어떤 사람인지 설명한 적이 있다. 거기에 추가하자면 그는 1994년에 <쇼생크 탈출> <작은 아씨들>을 동시에 아카데미 후보로 올린 적이 있는 관록을 자랑한다. 그 밖에도 <에린 브로코비치> <조 블랙의 사랑> <여인의 향기> 등 많은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다. 그는 한 마디로 비범한 영화음악적 재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테마에서 그 점이 드러난다. 바로 이 영화의 구조적 열쇠인 ‘호기심’을 포인트로 삼아 번뜩이는 기지가 담긴 음악을 펼치고 있다.

테마의 제목은 ‘가능성’(possibility)이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사회 선생님(케빈 스페이시)은 첫 시간에 중1짜리 학생들에게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것은 그대로 숙제가 된다. 학생 중 하나인 주인공은 세상이 ‘엿같다’고 생각하는 아이이다. 그는 정말 세상이 바뀔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바로 그때 이 테마가 나온다. 테마에서, 우선은 이국적인 느낌의 멜로디 라인을 연주하는 악기 선택이 흥미롭다. 마림바풍의 신디(혹은 마림바) 연주가 이국적인 멜로디에 잘 맞는다. 아주 퍼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드라이하지도 않은 그 울림은 멍멍한 듯 청아한 듯, 관객에게 ‘알쏭달쏭’하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리듬의 배치 역시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적절하다. 잘게 쪼갠 리듬과 마림바가 얼굴을 가렸다가 내밀었다가 하듯 서로 튀어나오며 주고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호기심어린 도입부의 멜로디가 스릴러처럼 음산하지도 않다. 튀어나오며 주고받는 재미난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영화가 위트있게 진행될 것임을 암시받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전체적으로 단조면서도 완전 5도를 중심으로 화음을 짠 것도 호기심어린 대목이다. 마이너의 베이스 위에서 전개되는 완전 5도, 혹은 장조의 느낌 때문에 이 호기심은 세상 엿같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것이면서 동시에 건강한 것이 된다.

이 정도면 영화의 전개를 거의 압축하고 있는 훌륭한 2분30초짜리 전령이다. 만일 이 장면에서 음악이 없었다고 치자. 그러면 아이는 그저 달리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혹은 다른 음악이 나왔다고 치자. 예를 들어 시골길을 자전거 타고 달리는 기분 좋은 느낌을 강조하는 음악 같은 거. 시원한 도입부를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할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하기 쉽다. 우선 시원하게 때리고 보자는 식으로 감독이 요구하게 되면 그 때부터 일은 힘들어진다. 앞에서 제대로 치고 나오지 못하니까 그 다음부터 이리 꼬고 저리 꼬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범한 영화음악이 되고 만다.

테마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영화다. 이 테마는 중간에 한번 더 반복된다. ‘사랑나누기’를 추적하는 기자가 차를 타고 길을 가는 장면에서. 그리하여 소년의 호기심과 기자의 호기심이 결국에는 같은 종류의 것이 되리라는 걸 관객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지레짐작하게 된다. 테마 자체가 복선의 일부이다. 아이구, 오늘은 테마 얘기하다 끝나버리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