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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소한 모범답안- <와니와 준하> O.S.T
2001-12-06

성기완의 영화음악

영화 <와니와 준하>는 그 완성도와 상관없이 상당히 모범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드라마의 전개에 긴장감이 떨어지고 때로는 지나치게 손을 가한 것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 없지는 않지만, 멜로와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키려고, 또 그 애니메이션과 등장인물들의 일상을 우회적으로 맞닿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것도 그렇고 장면 장면 신경을 쓴 흔적들이 보이는 것도 그렇다.

젊은 시절에 겪게 되는 뼈아픈 사랑의 고통을 통해 결국은 무언가를 긍정하게 된다는, 일종의 성장영화인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음악은 그 시간축을 한축으로 놓고 미묘한 심리적 움직임들을 다른 한축으로 놓고 움직인다.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앞의 축에서 주로 기능하는 음악들은 ‘선곡된’ 음악들이다. 용돈만 생기면 사 모았다는, 영민의 방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있던 LP들이 과거의 상태로 존재하다가 현재의 심리축으로 넘어오는데, 그건 준하가 영민의 방에서 LP를 트는 순간과 상징적으로 부합한다. 판이 다 돌고 난 다음에 뿍, 뿍, 하고 반복되는 스크레치는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의 심리적 평온 상태에 감정의 스크레치를 내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고교 시절에 와니가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피터, 폴, 앤 매리의 노래 이다. 동화적인 분위기의 의성어들을 반복구에 넣고 있는 이 노래는 아일랜드 민요처럼 ‘과거의 전설’을 운에 맞추어 스토리 텔링하는, 달콤하고 감상적이면서 어딘지 신비스런 분위기이다. 영화의 홍보 문구에 들어 있는 ‘달콤 아릿’하다는 간질간질한 표현에 어울린다. 이 노래는 와니와 영민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관객으로 하여금 아련한 전설 비슷한 것으로 추억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옛날 노래들은 음악 프로듀서인 강민이 선곡했다. 그는 이 노래 이외에도 슈베르트의 왈츠 같은 미묘한 굴곡의 피아노 곡들도 선곡했다. 영화 <편지>의 음악감독을 했었고 <우리들의 천국>이나 <종합병원> 같은 드라마 음악의 O.S.T도 기획했었다.

또다른 한축, 심리적인 축 위에선 주로 피아노를 앞세운 실내악적인 음악들이 활동한다. 슈베르트의 왈츠나 조지 쉬어링이 연주한 와 더불어 메인 스코어를 쓴 김홍집의 담백한 선율이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김홍집은 난장 기획사의 자우림, 황보령 등의 음악을 프로듀스했고 영화 <행복한 장의사>의 음악감독과 O.S.T 프로듀스를 담당한 바 있다. 연극 <불 좀 꺼주세요>에서도 음악을 담당했다. 오랫동안 극음악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면서 지명도를 넓혀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 “음악의 감정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작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맑고 소박한 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수채화 톤의 애니메이션과 더불어 투명한 느낌의 그의 음악은 영화를 제작사쪽에서 내세우듯 ‘순정영화’로 만드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점은, 일차적으로는 최근 한국영화들에 쓰이는 음악들이 예전보다 음악적으로 많이 탄탄해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약간은 왜소하다는 느낌이다. 사용하고 있는 스타일의 구색이 몇 안 된다는 데서 그 왜소함이 비롯한다.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는 피아노, 깡패영화는 강력한 하드코어, 뭐 그런 식이다. ‘안전빵’으로 가는 것도 좋지만 새 스타일을 개척하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좀 맥이 풀린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