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허쉬> 제프 로브, 짐 리, 스콧 윌리엄스 외 / 세미콜론 펴냄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 조지 프랫 외 / 세미콜론 펴냄
공전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배트맨> 시리즈 신작 <다크 나이트>의 개봉을 앞두고 DC 코믹스와 정식 계약을 맺은 <배트맨> 원작 만화가 출간되었다. 첫선을 보인 작품은 <배트맨: 허쉬>와 <배트맨: 악마의 십자가> 두편. <배트맨> 만화가 약 70년 전인 1939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인기리에 연재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오랜 역사 속에 다층적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로 대단히 다른 성격의 두 작품이 동시에 선보였다는 사실은 자못 시선을 끈다. 재미동포 아티스트 짐 리가 참여하였고, 미국에서 출간 뒤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허쉬>는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왔던 <배트맨> 스토리 중에서도, 초창기의 원류였던 미스터리 활극 요소를 현대적으로 멋지게 되살린 작품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치밀한 계획으로 배트맨을 곤경에 빠트린다. 그는 갖은 위기를 넘기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고, 캣우먼과는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로맨스에 빠진다.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악당)이 등장할 뿐, <허쉬>는 기본적으로 탐정인 배트맨의 모험과 내적인 고뇌를 그린 하드보일드 스릴러이다. 그러면서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미지의 적- 그 정체는 ‘쉿’(허쉬)!- 이 킬러 크록, 조커, 리들러, 포이즌 아이비 등 배트맨의 숙적들을 조종한다는 설정 때문에 한 이야기에서도 여러 악당들과의 격돌이 연출되며, 그의 조력자인 앨프리드와 제임스 고든은 물론, 나이트윙, 로빈, 오라클, 슈퍼맨도 출연하는 등 전편에 걸쳐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속도감있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올 컬러로 인쇄된 화려하고 세부 묘사가 풍부한 그림은 영화와는 또 다른 재미와 흥분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악마의 십자가>는 공포영화를 방불케 하는 섬뜩한 컷들, 베트남전과 흑마술을 결합한 중심 줄거리가 몽환적인 그림과 어우러지면서 독특하고 실험적인 느낌을 낸다. 개인전을 열기도 했던 화가 출신인 조지 프랫은 일반적인 미국 만화의 그림체 대신 강한 회화풍의 그림으로 과거의 끔찍한 저주가 부활하여 구현한 현재의 악몽을 생생하게 빚어낸다. <허쉬>에 비해 아티스트의 개성이 더욱 강조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두 작품은 그동안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배트맨을 접해왔던 팬들에게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세미콜론은 이제 한국에서도 익숙한 이름이 된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등 후속 작품을 계속 출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