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소녀 5명이 세상의 문턱에 발을 디디는 순간의 아픔을 정서적 슬로비디오로 붙든 <고양이를 부탁해>는 조용하면서도 대담한 영화이다. 겉으로는 말도 없고 담담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삶을 향해 도발적으로 몸을 던지고 있는 스무살의 그들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서울 언저리 인천이라는 항구의 막막함을 살아내는, 삶의 언저리에서 막 삶의 늪으로 상륙하고 있는 여자아이들의 현재 진행형을 보여주려 한다. 삶은 그들을 끌어들여 결국은 그들을 다치게 하지만, 아직은 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음악은 국내 최초의 영화음악 전문 프로덕션 ‘M&F’가 디렉팅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플란다스의 개> <킬리만자로> <순애보>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선물> 등 여러 영화에서 섬세한 음악을 선보였던 조성우를 비롯, 김준석, 박기헌, 김상헌 등의 작곡가 그룹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이 프로덕션은 앞으로 주목의 대상이 될 듯하다. M&F는 프로덕션 내에 작곡가 그룹과 프로듀서 그룹, 레코딩 엔지니어 그룹을 두어 영화음악 작업 전체를 총괄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니, 아마도 점차 블록버스터화되어 가는 한국영화의 추세로 볼 때 음악분야에서의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프로덕션을 이끌어갈 집단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음악 공장’이 되어버릴 함정이 도사리고는 있으나 한국 영화음악 제작의 그간의 관행이었던 개인적이고도 수공업적인 성격을 벗어나 큰 스케일의 사운드를 선보이는데는 분명히 한몫할 것이 틀림없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M&F는 영화의 분위기를 읽는 탄탄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신시사이저를 주로 사용하여 만든, 약간은 앰비언트적인 성향을 띤 그들의 일렉트로니카는 한번에 사용되는 사운드의 가짓수를 가능한 한 줄이고 있다. 오토 패닝을 하여 좌우로 한번씩 울리는 효과를 내는 펜더 로즈류의 사운드는 호수에 번져오는 조용한 파문처럼 떨리며 번민에 휩싸인 소녀들의 내면을 담담하게 잡아내고 있다. 또 딜레이 효과를 통해 반복적인 느낌을 부여받은 아르페지오는 영화 내의 진부한 일상을 환상적으로 색칠하면서 동시에 (그 반복성으로 인해) 집중력을 부여한다. 리버브 효과를 통해 멀리서 울리는, 오랫동안 지속하는 스트링 신시사이저의 화음은 그들이 삶의 언저리에서 여전히 부유하는 영혼들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 모든 사운드들은 간결하고 명쾌하게 영화 속에서 기능한다.
M&F가 전체적인 사운드의 톤을 잡아주었다면 주제가를 맡은 친구들인 인디그룹 ‘별’은 소녀들의 내면 그 자체인 노래들을 들려준다. 영화에는 이들이 최근에 낸, 훌륭한 디자인 감각을 뽐내고 있는 자작 앨범에 주요 테마곡으로 실린 노래들이 다시 쓰이고 있다. 디페시 모드나 뉴 오더 같은 영국 신디팝 밴드에게서 영향을 받은 듯한 이들 역시 반복적인 아르페지오 신디를 주축으로 노래를 구성한다. 딜레이와 리버브를 흠씬 먹은 사운드는 마치 별빛처럼 명멸하는데, 절대로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게 저음으로 뇌까리는 톤을 통해 그 반짝임은, 약간의 권태감 속에서, 일말의 불안감 속에서 다가오는 미래를 기다리는 소녀들의 조용한 설레임을 반영하는 듯하다. O.S.T에는 M&F의 음악들과 별의 음악이 함께 실려 있다. 그 둘의 분위기는 약간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드림비트 발매)
성기완/대중음악 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