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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뒤, 애완용 로봇과 산책을
2001-10-11

<큐빅스>

요 근래 가장 많은 언론의 세례를 받고 있는 국산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큐빅스>(Cubix).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일이다. 당시 대원C&A와 시네픽스는 로봇 모형 몇개를 두고 고심하고 있었다. <지구용사 벡터맨>에 이어, 두 회사가 함께할 새로운 프로젝트에 등장시킬 로봇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로봇이 바로 지금의 ‘큐빅스’다. 사실 큐빅스가 돋보인 것은 당연했다. 알록달록한 주사위를 연상시키는 몸체의 로봇이라니, 인류를 수호하는 존재의 위엄과 권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러나 큐빅스의 독창성은 함께 서 있는 다른 로봇들을 ‘식상하게’ 만들었고, 타깃층에 어필하는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어렵지 않게 주인공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

<큐빅스>는 2040년 버블타운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26부작 TV시리즈다. 비교적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일까. 인간과 인간, 로봇과 로봇, 그리고 인간과 로봇의 따스한 교감을 보여주는 <큐빅스>는 미래를 그린 작품치고는 현실과 느낌이 매우 가깝다. 주무대인 버블타운은 야자수 늘어선 미국 할리우드의 거리와 흡사하고, 등장인물의 복장 역시 요즘과 비슷하다. 외관상 어딘가 달라보이는 집들도 구조적으로는 변함없다. 흔히 묘사하는 것처럼 차가운 미래 이미지도 아니다.

인간과 로봇의 교감이 핵심이라지만 <A.I.>나 <바이센테니얼맨>과 같이 수준높은 인공지능이 실용화된 것도 아니다. 요리와 청소, 서빙을 전문으로 하는 단순기능직 로봇이 있는가 하면 정보수집과 불량로봇폐기를 담당하는 고등로봇이 있다. 이들은 인간과 감정을 나누지는 못한다. 단지 소통할 뿐이다. 인간에게 감정을 호소하는 건 애완용 로봇 정도. 이들 역시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지만 어쨌든 인간에게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래서일까. 버블타운에 사는 어린이라면 ‘만만치 않은 가격일 게 분명한’ 로봇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게 필수다. 그러나 이곳으로 막 이사온 주인공 하늘이에게는 로봇도 없고, 금전적인 여유도 없다. 때마침 눈에 띄는 큐빅스. 고물로 방치되어 있던 큐빅스는 하늘이가 36시간을 매달려 수리한 덕택에 기적처럼 움직인다. 주사위 같은 몸체의 이 로봇은 놀랍게도 자신의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전해온다.

비결은 바로 큐빅스에 내재된 외계의 에너지이다.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을 완성하는 그 ‘마지막 숨결’은 인간이 아닌 미지의 존재가 불어넣는다는 설정인데, 이 에너지 의 정체를 둘러싼 갈등이 <큐빅스>를 끌어간다.

<화이널 판타지>나 <슈렉>에 비하면 훨씬 적은 랜더 팜(Render Farm: 3차원의 입체감을 2차원 평면에 표현하기 위해 색채와 음영을 입혀나가는 과정) 수에도 불구하고 <큐빅스>는 아동용 SF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 독특한 색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해냈다. 3D 영상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방용석 감독이 자존심을 걸고 만들었다는 배경음악도 놓치기 아깝다. <큐빅스>는 2000년 한국 최초로 미국의 공중파 방송 채널인 키즈워너브러더스와 방영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 8월11일부터 미국에서 매주 토요일, 이른바 황금시간대라는 오전 10시30분에 방영되는 성과를 거뒀다. 어쩌면 우리는 미래를 너무 엄숙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제나 오늘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일 텐데 말이다. <큐빅스>가 그리는 사십년 뒤는 일상적이고 따스하다. 여전히 제멋대로인 권력자와 소외된 존재가 등장하지만 말이다. 너무 환상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큐빅스>의 세계처럼, 우리의 미래도 그랬으면 좋겠다. 상상해보건대 나이 칠십 즈음에는 애완용 로봇과 담소하며 산책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때는 애니메이션 잡지가 몇개나 될까.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